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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예 Jan 22. 2016

소르본 철학 교수님의 철학이야기

철학이란 무엇일까? 막연한 궁금증을 갖고 있던 중에 우연히 인터넷상에서 소르본 대학의 미셸 퓌에슈 철학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이미 한국에 <나는, 오늘도> 철학 시리즈 9권을 출간하였고, 과학적 분석으로 철학에 접근하는 과학철학자로서 프랑스에서도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 인사였다. 나는 평소 알고 싶었던 프랑스의 철학 교육에 대한 질문을 매개로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며 퓌에슈 교수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프랑스인을 말할 때 지성을 빼 놓을 수가 없는데, 그것은 프랑스인들이 어릴 때부터 철학을 배워서 주관적인 사고와 사유를 키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한 프랑스의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교수님의 책을 읽고 이렇게 용기내어 메일을 보냅니다. 꼭 만나주세요~!!!"


"오케이. 소르본느 17번가 소르본 누벨대학교 입구에서 12월 1일 월요일 오후 4시 반에 만나요."

즉시, 그리고 아주 간결한 답변이 돌아왔다.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일찌감치 클루니 라 소르본 역에 도착했다. 소르본 역을 포함하여 소르본 대학이 위치해있는 이 지역을 라탱지구라고 부르는데, 이 곳은 800년 전통의 대학가로 골목마다 고풍스런 서점들이 늘어서 있어 학구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시간에 좀 여유가 있어서 서점과 상점들을 한가롭게 거닐다가 드디어, 소르본 대학교 입구에 다다랐다. 추운 날씨 속에서 웬지 어느 영화에서 본 듯한 대학 캠퍼스와 오버랩되며 입구를 오가는 학생들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는데, 교수님이 갑자기 나타나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우리는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고, 그는 앞장서서 친절하게 나를 안내했다. 전에도 파리에 오면 늘 소르본 대학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그 때마다 경비인이 출입을 통제하여 들어가지 못했다고 하자, "대학을 보고자 하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 통제하게 되었다."고 전하는 교수님의 말을 들으며, 나는 대학 내부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교수님, 책을 보면서 참 따뜻했어요. 어떻게 이렇게 예쁜 생각을 갖게 되셨어요?

그냥 조금 생각을 했을 뿐이에요. 책을 쓴 건 어떤 내용, 가치관 혹은 진실을 전달하려고 한 의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조금 더 생각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 것이죠.


올 해 프랑스 철학 대입시험 문제인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살고있나?" (Vivons-nous pour etre heureux?)  에 대한 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문제를 듣기만해도 제가 지금껏 살아온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지금 행복한지 고민하게 되는 문제인 것 같아요 하하하

이 문제는 보편적인 바칼로레아 주제이죠. 전 사실 행복에 관심이 별로 없어요.

사랑한다는 말만하고 전혀 아무것도 안하면 안되는 것 처럼, 행복도 느껴야 되는 것이지 말로 하는게 아니에요. 이건 좋은 질문이 아니에요. 내가 지금 행복한지 대답하기도 어렵고 사람을 매우 불안하고 걱정스럽게 만들죠. 행복하려면 뭘 가져야하지? 돈이 더 많아야하나? 더 젊어야하나? 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면서.. 행복해지는 방법, 방식이 따로 있는게 아니에요.


신을 믿으시나요?

모든 종교가 전쟁을 일으켜 이 세상과 인간을 아프게 하죠. 인간과 자연을 단순히 사랑하는건 어떨까요? 다른 사람들을 해치치 않는다는 조건하에는 종교를 가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교수님도 고민이 있으신가요?

고민이 엄청 많죠. 인간에 고통을 유발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요.

또 내 수업이 어땠는지 책이 잘 팔릴지 걱정하지만, 숨쉬는 것과 같이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잘 대처하는 습관을 들여 괜찮아요. 최근에 심각한 병을 앓았는데 그 시간을 통해 내 내면이 더욱 풍부해졌죠. 스스로 긍정적인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단련해야 돼요.


고등학교때 부터 철학을 배우는것이 프랑스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나요?

아무런 영향도 못 끼쳐요.

학교라는 지배 아래에 숙제나 시험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하기 싫어하는게 당연하죠. 또 학교에서 배우는건 데카르트나 플라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철학자의 사유를 따라가는 데에 그치기 때문에 사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되죠. 그저 지겹고 의무적인 공부밖에 안되는 거에요. 예를 들어 아까 언급했던 대입 시험 문제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살고있나?"에서 선생님들이 기대하는 답변은 본인의 의견이 아닌 철학자의 철학과 이론이죠.


교수님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저에게는 무슨 신조, 무슨 주의가 없어요. 그 반대말은 풍부한 지식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열린 마음으로 답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발휘되어야 하는거죠.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면 무언가를 얻게 되고 우린 대답을 하게되죠.

대답에 따라서 그 대화가 다른 형태로 새롭게 진전되고 전개되는 것 처럼 삶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삶을 선택할 순 없지만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지 선택할 수 있어요.

그래서 삶과의 대화가 무척 중요하죠. 그 대화가 좋은 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흐억. 단 한 질문도 내가 예상한 답변이 아니었다. 얼마나 내가 틀에 박힌 사고를 하고 있었던것인지..

교수님과 인터뷰를 하고 보니 철학은 원래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삶을 잘 들여다보고, 삶을 잘 가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인 것 같다.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바꾸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각의 전환'을 통해서도 올 수 있음을 깨닫는다. 철학과 종교 그리고 행복이라는 어려운 명제에 대하여 교수님은 단순하면서도 실질적인 답변을 주셨는데, 그것은 우리의 생각에 머물러 있었던 개념을 쉽게 정리하고 표현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 교육이 매우 깊이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교수님의 말씀처럼 고3 때부터 시작하는 철학 수업의 의미와 중요도가 비록 미미할지 모르나, 철학을 배우고 시험 보는 것 자체가 인문적인 가치를 존중하고 프랑스인의 사고를 더욱 깊고 넓히게 해주는 기초적인 지렛대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바로 프랑스의 힘이 아닐까!


인터뷰 내내 조곤조곤 설명해주시고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교수님의 모습이 그의 책의 문구처럼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지혜의 보고로 다가왔다.  


"가치가 있는 것은 시간이나 인생의 질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의 질을 의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충만하게 사는 길이다. 이렇게 매 순간 깨어 있는 삶이야말로 가장 충만하고 능동적인 삶, 삶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삶일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대학교 내부 안내를 해주셨는데, 중세기의 삶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고전적인 조명과 장식들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수업하고 있는 강당을 교수님과 빼꼼히 훔쳐보기도 하고, 학생증이 없으면 절대 출입이 불가능한 중앙도서관도 나를 한국에서 온 특별한 손님이라고 과잉선전하여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러한 교수님의 은밀한 친절과 특별한 배려로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본 후, 교수님과 이별의 커피를 마시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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