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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Dec 25. 2023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26

Who The Fuxx Are U?





토요일 아침을 맞이한 그에게는 2가지의 선택지가 놓여 있었다. 이전에 하이킹을 같이 갔던 친구들과 함께 인도 홀리 이벤트에 가서 사진을 찍는 것과, 혼자서 이전에 가 보았던 서쪽의 큰 공원을 다시 둘러보는 것. 서로 상반된 계획들에 며칠 전부터 꽤나 고민을 했었지만 무차별적으로 페인트 파우더를 뿌리는 축제의 특징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 그는 결국 혼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카메라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들을 애지중지해 가며 오래 쓰는 게 버릇처럼 배어있는 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캘거리에 막 도착해서 왔을 때에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있었던 곳이었지만, 6월에 다시 찾은 공원은 맑은 하늘과 함께 도처가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지대가 높은 곳으로 갈수록 바람이 조금 세게 불긴 했으나 적당히 시원한 정도로 느껴졌다. 자전거를 타거나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와 주말 오전을 즐기는 가족들을 마주치며 끊임없이 보행로를 따라 걸었던 남자는 중간에 자그맣게 나 있던 샛길로 빠져 엉켜있던 수풀 속을 헤집으며 점점 깊숙이 들어갔다.



잠시 뒤 덩그러니 놓여 있던 부식된 자동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이곳을 온라인 지도에 등록했는지는 몰라도 그 덕분에 쉽게 찾아낸 남자는 사실 그 당시에도 이 차량을 찍으러 왔었지만 겨울철에 노출값이 잘못 계산되는 바람에 이 날 다시 걸음을 하게 됐다. 레퍼런스로 보았던 사진과 최대한 비슷한 느낌이 들게끔 여러 구도에서 시도를 했지만 빛이 나무들 때문에 여러 개로 갈라져서 들어오는 게 여전히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온통 흰 것만 보일 때 보다 피사체와 배경이 뚜렷했던 점을 위안 삼아 몇 장의 사진들을 건진 뒤 그는 자리를 옮겼다.



정상에 발도장을 찍은 뒤 남자는 돌아가는 열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다운타운에 들어서기까지 한 정거장이 남아있었던 때, 밖에서 쿵쿵대는 베이스 소리가 들렸다. 호기심에 근처에서 내려 역 맞은편으로 건너가 기다랗게 늘어서 있던 줄 뒤에 선 그는 펜스 안쪽에서 커다란 스피커로부터 나오는 음악과 함께 맥주를 들이켜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대충 봤을 때는 어떤 단체가 장소를 대관해서 프라이빗 파티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입구 앞에서 티켓을 검사하고 있던 두 남자로부터 설명을 듣고서야 그 궁금증이 완전히 풀렸다. 




"EDM 페스티벌이야! 티켓값은 16달러고, 밤 10시까지 진행하니까 이따가 와도 돼!" 



"그냥 지금 들어갈게. 카드결제 되지?" 







이런 분위기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남자였지만 한번 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에 바로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손목에 찍힌 도장과 함께 건네받은 이어 플러그를 가지고 입장한 그는 생각보다 컸던 음악소리에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잠시 물러나 있었다. "이 분위기 쉽지 않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 직전이었는데 갑자기 멀대같이 큰 장발의 남자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본인의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그를 데려갔다. 분명 처음 본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자연스럽게 너스레를 떨며 다가오는지.. 남자는 참 이해가 안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색한 분위기를 단번에 깰 수 있게 도와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 x나 멀리서도 왔네. 이곳에 온 기념으로 내가 한 잔 살게." 



눈치껏 받아 들었던 맥주 한 캔을 손에 쥐고 그는 청문회 하듯 한꺼번에 쏟아지는 질문들에 답변을 하느라 맛볼 잠깐의 틈조차 없었다. 이제는 하도 들어서 귀에 피가 날 정도였던 북한 이야기부터, K-POP, 너도 게임 잘하냐 등,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이곳 사람들이 현재 그의 모국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알아채는 게 가능했다. 그래도 나름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여 년 전 고등학교 때 교환학생 신분으로 간 미국에서는 6.25 전쟁이 메인 메뉴였던 것에 비하면.







이런 와중에도 그의 목에 걸려있는 카메라 때문에 사진 좀 찍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어딜 가나 자주 있는 일이어서 그는 이제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인 채로 그들의 스마트폰과 함께 번갈아 가며 버튼을 누르기를 반복했다.




"혹시 오늘 우리 팀 좀 도와줄 수 있니? 수당은 없어도 나중에 sns에 따로 네 사진을 홍보해 줄게."



잠시 텐트 아래 설치된 의자에 앉아 쉬고 있을 때 한 덩치 큰 남자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행사 미디어 팀을 총괄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하필 이 날 사진 쪽 인원이 부족해서 급하게 추가 인원을 구하고 있었던 것. 이미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하고 얼굴을 튼 입장에서 안 될 것도 없겠다 싶었던 남자는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에 다시 몸을 일으켜 사람들 틈 사이로 끼어들었다. 







한 친구가 그에게 말했다. 너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고. 멀리 떨어져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찍는 것보다 너처럼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자연스럽게 장면들을 담는 게 훨씬 보기 좋다고. 그가 따로 이런 부분을 알아달라고 호소를 하지는 않았지만 한 명이라도 이런 방식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남자는 괜스레 기분이 몽글몽글 해졌다. "사진이 별로다 싶으면 피사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십시오."라는 말은 과연 정답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계속해서 찾고 있던 그였지만, 적어도 약 4개월 간의 시간 동안 그가 내린 결론은 "90% 동의함."이었다. 







해가 저물고 행사가 마무리될 시간에 가까워졌지만 사람들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티켓을 팔고 있던 직원들은 서서히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고, 남자 또한 이 정도면 됐겠다 싶어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언제까지 넘겨줘야 해?"



"일주일 안으로만 주면 될 것 같은데? 부담스러웠을 텐데 응해줘서 고마워. 나중에 다른 행사 있으면 그때 또 연락 줄게."



흘러나오고 있던 곡이 마무리가 되고 나서 그는 아까 명함을 건네준 친구에게 인사를 건넨 뒤 행사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내렸던 역에서 다시 열차를 기다리던 중에 옆 벤치에 앉아있던 중년의 부부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약간의 찌푸린 표정으로 고개를 행사장 쪽으로 기웃거리고 있었다.




열차에 몸을 실은 남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잡고 있던 긴장이 풀린 듯했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거대한 울림을 벗어나 다시 일상의 소음으로 돌아오니 조금은 심심한 느낌마저 들었다. 수요일까지 우산과 함께 빗방울 모양이 표시되어 있는 날씨 예보를 본 남자는 화요일까지 모든 작업을 끝내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알람을 꺼 놓은 sns 단체방에는 페인트 가루를 뒤집어쓴 채로 찍혀있던 친구들의 사진이 몇 시간 전에 올라와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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