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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Dec 25. 2023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27

캐나다 데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캘거리 스탬피드로 인해 이미 도시는 한껏 들떠있었지만, 먼저 있을 캐나다 데이 행사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했다. 캘거리에 오기 전,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달 전 까지도 이 날에 대해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남자는 친구들과 밥을 먹다가 우연히 그들이 찍었던 작년 사진들을 보고 나서야 이게 보통 큰 행사가 아니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이때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집에서 호스트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TV 화면으로나마 그 분위기를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토요일에 잡힌 기념일이었다 하더라도 이른 오전부터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지는 않았다. 곳곳에서 간이 천막들이 설치되고 있었고, 현지인이 아닌 관광객들만이 구경을 나온 시간. 여러 구역에 나누어져 진행되는 행사들 대부분이 11시 넘어 시작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남자는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아 다시 한번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친구들을 소환했다. 무선 이어폰 배터리가 바닥이 날 때까지 열심히 게임 속에서 지지고 볶던 그들의 화면을 지켜보며 시간을 때우다 보니 이제는 다시 움직여야 될 때라고 생각이 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돌려맸다.







부스에서 나누어 주는 작은 깃발과 더불어 행사장 주변은 온통 캐나다 국기가 들어간 아이템들 천지였다. 다시금 이 나라가 진정한 다문화 국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빨간 단풍이 그려진 상징 아래에는 수많은 문화들이 각 텐트마다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이런 고유한 특징이 있어요!" 라기보다는 "우리는 없는 게 없어요!"라고 하면 알맞은 설명이 되지 않을까? 이런 이미지를 애써 숨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듯이 나타내는 모습 또한 눈여겨볼 점이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약간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의 기억 속 '국가기념일'에 해당하는 날들은 대부분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행사들로만 여겨져 왔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그의 고정관념과는 정 반대로, 하나의 축제처럼 이 날을 즐기고 있었다. 국가별로 역사가 모두 다르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수십 년 동안 TV 속에서 보았던 태극기 앞에서 복장을 갖추고 묵념을 하는 그림이 그에게 더 익숙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캘거리의 날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흐려져 갔다. 어떤 수로든 늦은 밤 불꽃을 쏘아 올릴 때까지 버텨보려 했지만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는 집으로 되돌아갔다.




"?? 왜 벌써 들어와? 불꽃놀이까지 찍고 온다며?"



"너무 추워서요. 씻고 옷 갈아입은 다음에 다시 나갈 거예요."



식빵 몇 조각에 잼까지 발라먹고 나서 다시 메인 스테이지가 설치되어 있던 장소로 돌아온 남자는 잠시 카메라를 손에서 떼고 공연을 관람했다. 이제는 오늘이 캐나다 데이인지, 아니면 이걸 빌미로 그냥 파티를 벌이고 싶었던 건지 헷갈렸지만, 이제는 이런 분위기가 엄청나게 낯설 게만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음악과 비트에 맞춰서 같이 사람들과 팔을 흔들어 재꼈다. 



9시 30분이 되자 MC가 마이크를 들고 스테이지로 올라왔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진행 멘트들을 날리며 다음 공연 준비를 위해 시간을 벌고 있었는데, 추위에 사람들이 일찍이 자리를 뜨는 것이 계속 신경 쓰였는지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무대를 내려갔다.




"여러분! 모두 11시에 불꽃놀이가 시작되는 거 알고 계시죠? 올해는 비용을 배로 써서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날이 많이 춥지만 우리 같이 잘 버텨봐요!"







11시가 되기 10여분 전,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2명의 DJ와 EDM 음악이 흘러나오는 중에 갑자기 스테이지에서 폭죽이 쏘아져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뭔가 타이밍이 어긋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이게 다 얼마냐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친 듯이 쏟아붓고 나서 공연이 막을 내렸고, 줄어든 조명의 밝기를 등진 채로 모두 추위로부터 도망치듯 주차장 쪽으로 각자 걸음을 옮겼다. 




"이상하다.. 왜 여기서 쐈지? 스탬피드 공원 안에서 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라는 의문을 가지며 역 입구에 도착하자 다시 펑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카메라로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진 거리에서 빛나는 불꽃을 보자 저게 본식이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어쩔 수 없이 두 눈으로나마 잠시 그 모습을 난간에 기대어 지켜봤다. 고대했던 대로 하루가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다가오는 10여 일 내내 이와 비슷한 그림을 볼 예정이었기에 그렇게까지 아쉬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던 그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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