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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Dec 25. 2023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29

경기장 안으로 





1년 중 캘거리에서 가장 수익이 많이 발생하는 10일 답게 도시 곳곳에서는 수많은 이벤트와 공연이 열렸다. 라티노 페스티벌, EDM 파티, 컨트리 뮤직 공연 등, 딱히 스탬피드와 연관성이 없더라도 수많은 비즈니스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이곳을 방문한 유동인구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애를 썼다. 그와 같이 이 기간이 처음이었던 사람들 입장에서도 30분 남짓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크기의 공원 안쪽에 약간의 지루함을 느낄 때쯤 잠시 눈을 돌릴 만한 것들이 필요했기에 조금은 비싸게 느껴졌던 모든 가격들에도 애써 모른 척하며 한창 달궈진 여름을 계속해서 즐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이목을 집중시킨 이벤트는 바로 메인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로데오 경기와 나이트 쇼였다. 당연하게도 평일과 주말의 티켓값은 상당한 차이가 났는데, 그렇다고 해서 가장 낮은 가격의 좌석이라 할지라도 이걸 제 값에 보는 것은 조금 과하다는 생각에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던 중, 한 좌석이 재판매 형식으로 자리 대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나와 있어 남자는 고민 없이 결제를 했다. 정가를 주고 사야 했던 나이트 쇼 티켓을 구매할 때는 마우스를 잡고 있던 손이 약간 떨리기도 했지만, 이번이 아니면 영영 볼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결국 파란색 불이 들어와 있던 하나의 시트를 본인의 손으로 빨간색 불로 전환시켰다.







다음 날 그는 오후 1시 즈음 느지막이 공원 안쪽으로 들어와 곧바로 스타디움으로 들어섰다.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해 있던 그의 좌석 주변은 이미 관중들로 들어차 있었고, Excuse me를 외치며 자신에게 배정된 번호를 찾아 자리에 앉았다. 전경을 담기에는 부족함 없었던 위치. 당일에 구매가 가능했던 스탠딩 티켓으로 경기를 관람할까도 살짝 고민을 했지만(이런 고민이 들 만큼 티켓의 가격은 상당히 저렴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들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펜스가 높아 보여 구경을 하는 데 그리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은 본인의 두 눈이 아래쪽으로 향하게 되면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아는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지만 경기 방식들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고, 틈틈이 대형 스크린에서 설명을 해 주었기에 관람을 하는 데 있어 크게 불편한 점은 느끼지 못했다. 사실 이런 가이드가 없더라도 워낙 게임들이 다 원초적이어서 한두 번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도 쉽게 이해가 가능했다. 많은 사람들이 '로데오'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소 위에 올라타 얼마나 오랫동안 좋은 자세로 버티는지에 대해 겨루는 경기와 더불어 수많은 선수들이 선보인 마초적인 모습들은 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 됐다.







모든 경기들이 마무리되고 그와 사람들은 한꺼번에 쏟아지듯 스타디움을 빠져나왔다. 나이트 쇼가 시작하기까지는 아직 서너 시간 정도가 남아있어서 그는 딱히 눈에 띄는 것도 없겠다, 이른 저녁을 먹으러 공원을 벗어났다. 셋째 날 사 먹었던 거대한 양파 튀김이 보이는 것에 비해 너무 실망스러웠던 게 그를 밖으로 나가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와 더불어 밖에서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대부분이었던 데다가 후덥지근한 상황에서 뜨거운 음식을 불편한 자세로 먹는 것은 더더욱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너무 유난 떠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만 현지인들 마저도 같은 연유들로 투덜댈 정도였으니.. 주머니 사정이 그들보다 가벼웠던 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타협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돌아와 남자는 스타디움 계단을 올랐다. 아까와는 정확히 반대 선상에 있던 좌석에 앉자마자 곧바로 MC가 마이크를 입에 대고 진행을 하기 시작했다.




"좋은 저녁입니다 여러분. 전날에 비가 그렇게 왔는데도 캘거리의 스모그는 떠날 생각을 않는군요. 하지만 건강에 이상이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하네요. 그러니 오늘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올해로 100주년이 되었다는 마차 달리기 시합이 먼저 관중들 앞에 모습을 비췄다. 쇼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부터 입장을 시켜서 의아했었는데, 알고 보니 2시간 동안 선행되는 이벤트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그였다. 시원하게 달리는 말들을 보며 약간의 쾌감이 느껴지면서도 반대로 너무 동물들을 학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안쓰러움이 동시에 들었다. 경기 중 갑자기 난입해서 자신의 신념을 다른 이에게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을까?라는 의문부호가 떠오를 정도로 자극적이었던 2시간의 레이스가 진행되면서 경기장 안팎은 조금씩 어둑어둑해져 갔다. 







9시 반 정도 되어 경기장이 정리됨과 동시에 한편에 미리 설치되어 있던 스테이지가 중앙으로 옮겨졌다. 이날은 유명한 가수들이 나와 공연을 하지 않고 단체 군무나 관객들의 흥을 돋울만한 서커스 쇼 위주로 구성되었다.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터지는 폭죽놀이가 그에겐 진정한 메인이벤트였지만 1시간가량 진행된 퍼포먼스와 드론 쇼 또한 충분히 매력적이어서 그는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가며 그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비록 불꽃이 터져 흐트러지는 장면이 천장에 가려 최종적으로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았던 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폐장이 되기까지 30분도 채 남지 않았던 스탬피드 공원이었지만 사람들은 밖으로 빠져나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유독 하루가 길게 느껴졌던 남자는 곧바로 출구로 향했고, 다운타운 중심지 쪽에 가까워 지자 택시를 불렀다. 그보다도 더 피로에 절어있는 것처럼 보였던 택시기사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그에게 물었다.




"스탬피드 어때?"



"나쁘지 않아.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스탬피드가 될 것 같거든. 그래서 최대한 즐기려 노력 중이야."



"나도 이 나라에 처음 왔을 때 갔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더라. 한 번이면 충분하지 뭐. 놀이기구 타는 거 좋아하면 또 다를지도 모르겠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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