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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윤 Dec 25. 2023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28

캘거리 스탬피드 : Intro






"내일 퍼레이드 보러 갈 거지?" 


"네. 근데 조금 더 일찍 나가려고요. 사람들 행사 준비하는 것부터 찍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 난 항상 이 시기가 되면 올해가 벌써 이만큼이나 흘렀구나 하고 체감이 되더라. 나도 시간 되면 잠깐 구경하러 나갈 듯 해. 만날 수 있으면 거기서 보자." 




조금 이른 듯 느껴졌던 오전 6시에 일어난 그는 7시가 거의 다 되어서 문 밖을 나섰다. 9시부터 시작되는 스케줄에 맞추어 그 언저리쯤에만 도착하면 되겠지 싶었지만, sns 메신저에 같이 등록되어 있던 여러 친구들이 매 해 겪으면서 축적한 경험들을 공유해 준 덕분에 캐나다 데이 때와 같이 해가 완전히 떠오르기 전부터 그는 하루를 시작했다. 







아무리 1년 중 가장 큰 축제라고 하더라도 설마 본인처럼 이 시간부터 움직이겠나 싶은 생각을 가지고 열차에 발을 디뎠는데, 이게 웬 걸,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카우보이 모자와 청바지, 그리고 가죽 부츠를 신은 채로 들어서 있었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 눈치껏 그들과 같이 시청 역에 내려서 대기 중이었던 경찰과 안내원들에게 몇 번 길을 물어보며 찾아가는 사이에도 퍼레이드 루트 주변에는 미리 자리를 잡고 있는 인파들로 바글바글했다. 



도심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캘거리 특성상 대부분의 이벤트들은 거진 다운타운 양 끝에 위치한 공원에서 벌어졌다. 캘거리 타워와 같은 라인을 쓰고, 수도 없이 자주 왕래한 작은 동네와 연결되어 있던 곳에서 각 팀들은 저마다의 콘셉트를 가지고 퍼레이드 준비에 한창이었다. 시간이 많은 듯 적게 남아있어서 교대로 옆에서 무료로 나누어 주는 간단한 아침식사를 받기 위해 서 있는 줄을 보고 일단 배부터 채우자는 생각에 그 또한 아직까지 남아있던 약간의 쌀쌀함에 몸을 떨어가며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주차장 쪽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꺼내든 그. "이 사람들 이거 하루아침에 준비한 게 아니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다양한 아이템들이 꾸며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 날을 위해 일반적인 평일을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이런 큰 행사가 시작되는 날에 안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렵겠지만 남자가 캘거리에 도착한 이후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유쾌해 보였고, 소위 말하는 '업' 된 분위기를 가장 많이 풍기는 듯했다. 



본식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그는 슬슬 장소를 바꿔 이들이 잠시 뒤 군중들을 지나칠 곳으로 몸을 옮겼다. 친구들이 계속해서 어디 위치에 있다고 메시지들을 남겼지만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이들을 찾는 것은 시간 낭비일 것 같아 오늘은 혼자 움직이고자 했다. 빈자리 아무 데나 자리하면 될 줄 알았는데 지정석으로 되어 있는 곳들이 워낙 많아 타워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사거리 앞쪽까지 밀려난 그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이곳에 못을 박았다. 







이윽고 9시가 되면서부터 행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몇 가지 퍼포먼스와 함께 자잘한 폭죽들이 쏘아 올려졌고, 그 뒤를 이어 아까 보았던 팀들이 하나둘씩 통제된 도로를 따라 행진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통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과, 그들을 통제하려 애쓰는 안내원들 중간에 끼인 채로 셔터를 누르는 게 여간 고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만큼 자신이 아주 가까이에서 퍼레이드를 구경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 준 셈이었다. 



무려 3시간이 넘어서야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한 캘거리 스탬피드의 인트로. 이 날은 오후 1시 30분까지 무료로 입장이 가능해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곧장 열차와 도보를 이용해 스탬피드 파크로 넘어갔다. 이미 무제한 입장권이 손에 들려져 있던 남자는 안쪽에서 파는 음식 값들이 살벌할 정도로 비싸다는 말을 익히 들었기에 점심을 먹고 느지막이 가 보자는 마음을 가지고 근처 식당으로 먼저 향했다. 







이젠 사람들이 얼추 다 들어갔겠지라고 생각이 들 때 즈음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켜 카페를 나와 스탬피드 파크로 향했다. 열차를 타고 가고 싶었으나 세 번을 건너뛰어도 도무지 몸을 실을 수 없을 것 같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던 공원 입구까지 걸어서 간 남자는 아직까지도 꽤나 길어 늘어서 있던 줄에 언제 다 들어가나 싶었지만,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빠르게 입장할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모든 요소들은 서구권 문화가 묻은 대부분의 주류 미디어 작품들에서 본 이미지들과 아주 흡사했다. 엄청 특별한 걸 바라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이렇게 톳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소문난 잔치에 진짜로 입에 넣을 음식들은 많은데, 사실상 그게 전부였다. 



이럴 것을 미리 예상하고 이전부터 기록을 쌓아나간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옳은 선택이었다. 이 축제는 1년 중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 그의 다큐멘터리에 전부가 될 수 없을 게 당연했으니까. 덕분에 체감되는 실망감은 덜했고 "꼭 좋은 컷을 만들어야 해!"라는 마음보다는 "나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앞으로 남은 9일을 즐기려 했다. 어찌 보면 열정이 식은 거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때만큼은 별다른 방도가 없는 듯했다.








첫날답게 오후 내내 화창한 날씨가 계속됐다. 남자는 해가 내려갈 때에 맞춰 이전 캐나다 데이 때 오르지 못했던 언덕에 올랐다. 상당히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이미 많은 포토그래퍼들은 좋은 자리에 삼각대를 펴 놓고 폭죽이 터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몇 번은 더 올라올 게 뻔해서 해가 질 때에 맞추어 두어 장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다시 언덕을 내려온 그는 아까보다는 비교적 한가했지만 여전히 빽빽이 들어차 있던 열차를 타고 공원에서 멀어져 갔다. 그동안의 피로가 쌓이고 쌓여 결국 캘거리에 와서 처음으로 코피를 쏟은 것이 그를 평소보다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가게끔 만든 가장 큰 이유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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