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윤 Dec 25. 2023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30

피날레





길고 길었던 대축제의 마지막 날, 오랜만에 이른 오후까지 잠을 자고 일어난 그는 해가 중천에서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할 때까지 집 안에 발을 붙이고 있었다. 다음날이 월요일이었던 지라 다른 날들에 비해 덜 붐빌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이른 저녁을 챙겨 먹은 뒤 6시가 약간 넘은 시간이 되어서 체감상 체중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던 몸을 이끌고 집 밖을 나섰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겠다는 마음과 더불어, 아직까지 남아있던 무제한 입장권이 아까워서라도 가야겠다는 이상한 아집에 의한 벌어진 행동이었다.



그는 자주 왕래하던 번화가에 먼저 들렀다. 몇 주 전부터 세워져 있던 안내 부스들과 간이 스테이지는 이미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채로 거리의 한쪽 구석진 곳에 모여 자신들을 트럭 위에 실어줄 사람들을 기다렸고, 가게 앞 매대에 카우보이 모자와 기념품들을 잔뜩 깔아놓고 팔던 상인들 또한 다시 물건들을 안으로 들여놓고 있었다. 스탬피드가 시작된 게 아직도 엊그제 같았지만 도시의 분위기는 한껏 들떴던 것과는 다르게, 확실히 한 층 누그러진 듯한 표정을 띠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7시 30분이 약간 넘은 시간에 공원 입구에 도착한 그. 입장을 위해 줄을 서 있는 인원들보다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은 것을 목격한 남자는 늘 그래왔듯이 QR코드를 안내원에게 보여주고 소지품 검사를 마친 뒤 공원 안쪽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직원들도 이제는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그의 카메라 가방 안쪽을 나무 막대기로 몇 번 대충 휘저은 뒤에 넘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나 조금 잠잠하겠거니 싶었던 장소는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직도 수많은 인파들로 가득했다다음 날 따로 휴가를 낸 것이 아닐까 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로.



아직 학기가 시작되지 않아 학생들의 비중이 높았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조금 전에 보았던 번화가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이곳은 아직 이 축제를 떠나보내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남아있는 듯했다. 어쩌면 그와 같이 "아주 뽕을 뽑자!"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꽤나 여럿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어떤 이유와 핑곗거리를 떠올려도 납득이 가능했다. 팬데믹 이후로 처음 겪는 정상적인 스탬피드였으니 다들 얼마나 목이 말라있었을까? 







"너 또 갔어?"


"너네들은 내년에도 보겠지만 난 올해가 마지막이니까. 내 입장이었으면 너도 똑같이 했을 걸?"


"지겹다 진짜. 나중에 시간 되면 밥 한 번 먹자. 마저 구경 잘하고."




어느 순간부터 그는 올해 세웠던 목표들을 이루거나, 혹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을 체감하는 동시에 그에 비례해서 언제 오름세가 꺾일지 모른다는 불안감 또한 같이 느끼고 있었다. 10명의 사람이 "이젠 좀 쉬엄쉬엄 해."라고 하더라도, 본인 스스로가 "벌써 지쳤어?"라고 말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계속 달렸다. 뭘 그렇게까지 목숨 걸고 하냐는 물음에는 2가지로 답변이 가능했다. 이렇게 해야 내년에 카메라를 전부 팔아치우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후회가 안 남을 것 같아서. 그리고 본인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자신을 옥죄어도 절대 100% 전력을 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근사치에 최대한 가까워지기 위해서라도 부단히 스스로 채찍질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밤 9시 정도가 되어서 그는 첫날 올랐던 뒤쪽의 자그마한 언덕으로 다시 향했다. 역시나 사람들의 생각은 다 비슷비슷한가 보다. 불꽃이 쏘아 올려지기까지 2시간이나 남아 있었음에도 좋은 자리 주변은 이미 돗자리들로 뒤덮여 있었다. 수많은 삼각대 위에 올려진 카메라들과 시험 비행을 하고 있던 드론들은 덤. 푸르스름함과 새까만 어둠의 중간 지점에서 불이 켜진 놀이기구들과 공원을 담은 뒤에 그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젠 정말 다 끝났어."라는 생각에 약간의 시원섭섭함이 들기도 했지만, 이전에 만났던 택시기사가 이야기했던 대로 두 번은 안 봐도 되겠다는 마음이 더 크게 와닿았다. 








마지막 날이어서 조금은 더 특별하거나, 오래 불꽃을 일으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여느 때와 별반 차이 없이 10번째 밤이 마무리 됐다. 곧바로 자리를 벗어나는 사람, 어차피 한동안 길이 막힐 것을 알고 그냥 계속 앉아있는 사람, 여운이 덜 가셔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주변에 섞여 그는 택시를 불렀다. 5분이면 올 거리였지만 이곳 말고도 주변이 모두 혼잡했던 탓에 예상 픽업 시간은 점점 늘어나 결국 40분까지 지연됐다. 그렇게 '지상 최대의 쇼'라는 불리던 캘거리 스탬피드는 막을 내렸고, 점등되어 있던 공원의 수많은 불빛들은 서서히 사그라들어 갔다. 



-Fin

Copyright ⓒ SY Lee   All Rights Reserved. 



이전 12화 [이방인의 일기 : 캘거리] #2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