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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엽 Jun 20. 2020

최고를 추구하는 것의 함정

 나는 기업 경영, 리더십, 조직 문화와 같은 주제에 관심이 많다. 자연히 최고의 기업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 도달했고, 그 과정에서 리더와 조직은 어떻게 진화해갔는지에 대한 책을 자주 읽는다. 소위 말하는 구글,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등의 이야기들이다.



 비단 책을 읽는 영역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경영학 수업에서도 항상 우리는 세계 최고 기업들의 사례를 배워왔다. '전략은 GE처럼 이렇게 하고, 마케팅은 코카콜라처럼 저렇게 하고, 브랜딩은 스타벅스처럼 요롷게 해라' 이런 식이다. 또한 실제 사업 영역에서도 그렇다. 늘 최고들의 가르침을 읽고 그것을 흉내 낸다. 스포티파이의 애자일 문화를 벤치마킹하여 내 조직 문화를 점검해보고, 넷플릭스가 TV/영화 산업을 혁신했듯이 내 산업을 혁신하고자 한다.

 하지만 막상 실제 사업 현장에서 적용을 해보면 안 되는 것 투성이다. 아니 안 되는 것 투성이가 아니라,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구글처럼 구성원들에게 자유를 부여했더니 아무도 제 시간도 출근도 안 하고 협업은 엉망이 되며, 애플처럼 멋진 디자인을 만들어 놓았는데 정작 사용성은 빵점인 제품이 나온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최고를 추구하는 것의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왜 최고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함정에 빠지는 것인가?


 최고가 만들어내는 "특별함"은 허상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그들은 소비자들의 경험을 혁신했고, 비즈니스 성과를 달성했으며 이를 가능케하는 멋진 조직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많은 비즈니스 전문가와 학자들에 의해 그들이 2등 그룹과 어떠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도 이미 충분한 검증이 되었다. 다시 말해 그들이 만들어내는 "특별함"은 허상이 아니고, 배우고 흉내 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아래 그림에서처럼 최고 기업과 우수한 기업은 분명한 차이가 있고, 갈수록 그 차이는 넓어진다. 그 차이로 인해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생기고, 최고 기업은 경영학 교과서에 실리고, 연구되고 칭송받는 수준에 이른다. 


 하지만 조금 시선을 넓혀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우리가 책이나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것은 1등 기업이 어떠한 "특별함"으로 다른 기업들을 능가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시선을 넓혀보면 1등 기업의 경쟁자들 또한 우리가 모두 들어볼 만한 수준의 뛰어난 기업이며, 사실 그 아래에는 우리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수많은 기업들이 숨어있다. 



 우수한 그룹, 다르게 표현하자면 2등 그룹과 1등과의 차이도 물론 크다. 하지만 우수한 기업도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기업들이기에 그들과 평균적인 수준의 기업과의 차이는 훨씬 크다. 기업을 1등부터 100등까지로 등수를 매긴다고 했을 때, 내가 속한 기업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다들 답은 다르겠지만 그 모든 답을 평균해보면 50등 일 것이다. 그것이 평균의 개념이니까... 그렇기에 내가 지금 생각해야 하는 것은 최고기업의 "특별함"을 좇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기업의 "우수함"을 좇는 것이다.  

 최고의 방법은 상위 1퍼센트의 사람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최고가 된 것이다. 매우 높은 확률로 우리는 나머지 99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최고의 방법론이 아니라 보통의 방법론을 먼저 실행해야 한다.




보통의 방법론은 "기본"


 보통의 방법론은 결국 "기본"에 충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라면 본인이 속한 산업군의 제품/서비스를 좋은 품질로 만들고, 적당한 가격에 팔며, 건실한 원가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연간 20%, 30%의 고속 성장을 고민하기에 앞서 우선 작년만큼의 실적을 내는 것이 기본이다. 

 애플이 핸드폰 안에 컴퓨터를 집어넣는 아이디어와 기술력, 다시 말해 스마트폰이라는 "혁신"을 통해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혁신을 제외하고 기존에도 애플의 제품의 성능, 내구성, 디자인 등이 훌륭했다. 그 이전에 이미 "기본"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가운데 '혁신'이라는 특별함이 더해지니 넘어설 수 없는 최고의 기업이 된 것이다. 

 예전에 고등학교 시절에 전국 규모의 수학경시대회를 나간 적이 있었다. 1번 문제가 바둑돌을 이용한 확률 문제였는데 그 문제에만 근 1시간을 쏟아서 답을 내었던 기억이 있다. 경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니 아마 그 문제를 잘 맞힌 모양이라고 짐작하고 있는데, 당시 나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뭔가의 풀이법 (지금은 절대 해석조차 못할 것이다)으로 그 문제를 풀었다. 무언가 순간의 번득임이 있었겠지만, 돌이켜보면 그전까지 쌓았던 기본 실력이 순간 스파크를 일으킨 것일 것이다.


 원래 이 글을 쓰기 전부터 생각했던 것은 아닌데, 이 글을 적다 보니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백종원 대표께서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해왔던 말들이 기업 경영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주옥같은 말들이 많은데, 스타트업 씬에 들어와서 사업개발 업무를 하면서 더 마음에 와 닿는 경우가 많다. 백종원 대표께서 항상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기본에 충실하세요


 최고의 맛집이어서 무언가 특별 비법 재료, 레시피가 있다고 해도 일단 기본적인 맛은 낸 이후에 그 특별 비법이 더 해져서 맛이 나는 것이다. 내가 최고의 맛집에 도전하기에 앞서서 우선 기본에 충실해서 최소한 무난한 수준, 가능하다면 우수한 수준까지는 도달해야 한다. 무난한 수준이라고 해서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앞서 평균의 이야기를 하였는데, 내 노력을 통해서 100명 중 50등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무난한 수준이다. 최소한 50명의 무난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내 뒤에 있는 것이다. 그들 또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니 그 무난한 수준을 달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기업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내 제품/서비스를 소비자가 구매해주고 이를 통해 내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까지만 달성해도 꽤나 훌륭한 일이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작년만큼의 매출을 올해도 해내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또한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최고의 기업, 위대한 기업의 수준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린스타트업의 함정


 나는 결국 스타트업에서 사업을 개발하는 사람이다. 창업을 하는 사람보다는 덜 하겠지만, 이에 준할 정도로 스타트업 씬에서 가장 와일드하고, 재밌고, 다이나믹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회의를 하면서 자주 하는 말들이 있다. 

- 다양하게 시도해봅시다.
- 더 빠르게 도전합시다.
- 완성도보다는 린(Lean)하게 만들어봅시다.

 기업이 하는 수많은 시도들 중 중대한 성공을 이루어지는 시도는 3~5% 수준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1번의 중대한 성공을 위해서 수십 번의 실패한 시도들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계속 우리는 더 빠르고, 가볍게,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자 한다. 일단 최소한의 기능으로 MVP (Minimum Viable Product)를 만들어서 유저에게 노출시키고, 피드백을 통해서 빠르게 개선해가자는 것이다. 한 번에 크고 거대한 것을 만들었다가 실패하여 허송세월 하지 말고, 어설프지만 작게나마 만들어 보자는 개념이다. 나는 이 개념에 너무나 찬동하는 사람이고, 스스로에게 매번 되뇌고 팀원들에게도 항상 요구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에도 함정이 있다. 보통 MVP를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은 Minimum에 초점을 두고 이해를 하기 마련이다. '아, 그렇지 작게 하라고 했지'하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제외시키고 최소화한다. 하지만 Viable이라는 개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저가 XX라는 아이디어에 반응할 것이라는 것이 내 아이디어라면 그 XX 아이디어를 최소한 구현은 해놓아야지 테스트가 성립한다.

 예를 들어 원티드 사업개발팀에서 최근에 세웠던 가설 중 '코로나 시대이지만 유저들은 누군가로부터 인사이트를 얻고 소통하고 싶을 것이니, 온라인 밋업에 유료로 참여할 것이다'라는 가설이 있었다. 해당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첫 번째 내놓은 상품은 1명의 연사, 5000원의 가격, 200명 남짓한 참석자로 시작을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테스트 목적의 작은 실험일지라도 그 퀄리티가 별로라면, 설령 무료라도 유저는 반응하지 않는다. 유저들에게 어필할 수 없는 컨텐츠를 기획했다면 우리는 티켓을 1장도 팔지 못 했을 것이다. 만약 그런 결과를 받았다면 우리가 테스트에서 어떤 결론을 얻을 수 있을까? 

 '온라인 밋업은 돈을 내고 참석하지 않는구나'

 라고 해당 사업을 접었을 것이다. 사실 실패의 이유는 유저가 온라인 밋업에 돈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상품의 완성도였는데, 오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기본"에 충실하였다. 100만 원 정도의 매출에 불과한 테스트였지만, 최고의 연사를 모셨고 모두 다 한 마음으로 컨텐츠를 기획하고, 수도 없이 리허설을 반복했고,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은 그 가설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하여 10명이 넘는 연사와 1000명이 넘는 참석자들, 10만 원 넘는 가격의 온라인 밋업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이 사업이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첫 번째 시도의 충분한 완성도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스타트업에서 또 자주 쓰는 말 중 "FAST FAIL"이라는 말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빠르게 시도하여 빠르게 실패하고 이를 통해 향후의 개선을 위한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의미이다.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시도해야 한다는 FAST와 실패해도 괜찮고 이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FAIL에 집중하지만, 사실 숨은 뜻은 다음과 같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저속한 단어를 사용한 점 양해 바란다)


    (이 테스트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X나게 노력하여 짧은 시간 안에 완성도를 최대한

    높여서) 빠르게 시도하고 혹시나 그 시도가 실패해도 이를 통해 배우면 되니 괜찮아.

 

 보통 우리는 검은색 글씨에 집중하지만, 더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숨어있는 붉은 글씨의 내용이다. 붉은 글씨를 하지 않는다면, 일단 절대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없고 실패를 했어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없다.




 

 너무나 별 것 아닌 작은 생각의 씨앗인데 글로 옮기려니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작은 아이디어가 나에게 주는 파장은 작지 않다.

 최고를 배우고자 하는 태도는 너무나 훌륭한 태도이다. 나도 어차피 이전처럼 최고에 대한 책을 읽고, 기사를 보면서 그들을 흉내 내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최고가 되기 이전에 일단 우수한 수준까지는 올라와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특별한 비법 대신 "기본"과 "노력"이라는 보통의 방법론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당장 다가오는 다음 주에도 나는 빠르게 도전하고, 몇 번의 작은 성공과 더 많은 수의 실패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빠른 도전 이전에 충분한 노력과 최선을 다해야 함을 잊지 말고 도전할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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