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개발의 관점에서 바라본 '소비자 니즈'의 정체
사업을 하다 보면 '니즈(Needs)'라는 정말 많이 사용하게 된다. 내가 필요한 무언가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우리가 만족시키고자 하는 상대방의 필요성이나 욕구를 의미하는 말로 많이 사용되곤 한다. 그중 가장 만족시키고 싶으면서도, 만족시키기 어려운 상대방이 아마 '소비자'일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IT서비스에서는 유저라고도 많이 표현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소비자(유저)를 만족시키기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며, 그 대가로 소비자(유저)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다. 그 돈이 기업의 매출이 되며 직원들 월급도 결국 거기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소비자의 니즈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참으로 어려운 것이 제삼자(기업)의 입장에서 바라본 니즈와 소비자의 진짜 니즈가 다르기도 하고,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인데 제대로 인지를 못 하기도 하다. 또한 어떤 것은 필요로는 하지만 돈을 주고 구매를 하진 않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이런 것들을 조금 체계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경영, 사업 등에 대해 내가 글을 쓸 때마다 언급하는 것이지만 나는 석사, 박사 출신도 아니고 이론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철저하게 나와 우리 팀과 우리 회사가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배워나갔던 것을 기록하는 것임을 감안해주셨으면 한다.
우선 소비자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소비자가 스스로 느끼는 니즈, 제품/서비스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영역에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필요성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인지'의 영역 안에 들어와 있는 니즈는 소비자가 필요로 하고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다. 반면 '미인지'의 영역에 있는 니즈는 필요한지 본인도 모르고 있는 영역이다. 아래 그림에서는 글자 크기의 문제로, 미인지의 영역이 30~40%는 되는 정도로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 미인지의 영역은 매우 좁다.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야지 생존할 수 있기에, 소비자의 필요성을 계속 알아내고자 노력한다. 마케팅이니, 유저 데이터니, 시장 조사 등이 결국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소비자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니즈가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제삼자인 기업이 그것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일부 영역은 다르게 예측을 할 수밖에 없고, 끊임없이 이를 더 잘 예측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이미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제품/서비스에 대하여, 기업 또한 소비자가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가한다면 바로 그곳에서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기업은 소비자를 위해 그 제품을 생산하고자 할 것이며, 소비자는 이미 인지하고 있는 필요성이기에 쉽게 그 제품을 사용하고자 할 것이다. 를 만드는 일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일이다. 이미 소비자도 필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제품을 사용하도록 소비자를 설득할 필요가 없다.
상대적으로 시장이 형성되기 쉬운 영역이기에 경쟁이 치열하다.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는 영역이라기보다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영역이다. 보통의 사람들과 그들이 속한 대부분의 보통 기업들이 가장 노력을 하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반대로 '미인지'의 영역에 있는 제품을 사업화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도전적인 일이다. 아이폰이라는 것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소비자들은 굳이 컴퓨터의 기능을 넣은 휴대폰을 들고 다녀야 할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니즈를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발견해냈고, 시장을 혁신했다. (사실 이 발견은 시장을 혁신했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고 세계를 혁신했다는 표현이 적합해 보인다) 너무나 어렵고 도전적인 일이기에 그 열매는 너무나 달콤하다. 성공한 기업은 최고의 위치에 오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수요과 공급이 만나는 곳에서 거래가 일어나고 시장이 형성된다는 개념이다. (대학 4년간 경제학을 배우고 석사 1학기 중퇴를 한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개념 같기도 하다) 그런데 왜 내가 앞에서 "시장 형성 가능"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썼을까?
소비자에게 실제 물건을 팔아보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사실 중 하나가 내 제품을 필요로 하는 것과 내 제품을 돈을 주고 구매를 하는 것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IT세상에는 무료 서비스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필요로 하고 쓸만하다고 해서 그것이 구매로 이어지진 않는다.
소비자의 필요성도 나누어 볼 필요가 있는데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정도의 필요성, 바꾸어 말하면 돈을 주고 살 정도의 필요성이 있어야지 가격을 지불하게 된다. 구매 의사 (Willing To Pay) 개념이 그래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니즈에 대하여 소비자 스스로 인지하고, 기업이 그것을 파악하는 것만으로 시장이 형성될 순 없다. 소비자가 인지하는 니즈의 크기가 유료 구매를 하기에 충분한 수준이어야지 '진짜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 다른 글 '성공적인 사업개발을 위해 고려해야 하는 4가지 기준'에서 매출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지 자세히 기술했으므로, 여기서는 가볍게 넘어가도록 하자)
나는 사업의 여러 영역에서 '사업개발'을 하는 사람이므로 아무래도 기존에 형성된 시장보다는 새로운 시장 가능성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위의 그림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영역을 새롭게 확장하는 것이 사업개발이 할 일이다.
첫 번째 시도. 발견하기
가장 먼저 시도해봄직한 일은 내가 (우리 기업이) 파악하지 못한 니즈인데 소비자는 이미 파악하고 있는 니즈를 발견해내는 일이다. 소비자들은 본인들이 인지하고 있는 필요성에 대하여 다양한 형태의 힌트를 남긴다. 일상적인 대화, SNS, 생활패턴 등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아직 우리 시장에 없는 해외 서비스를 찾아서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발견해내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로 만들어 낸다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소비자가 인지를 하고 있는 니즈이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기보다는, 니즈를 잘 포착하여 약간의 개선이나 변화점을 통해 니즈가 구매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두 번째 시도에 해당된다)
최근에 원티드 사업개발팀에서 다양한 온라인 밋업과 콘퍼런스를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는데, '발견하기'의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커리어에 대해서 생각보다 고민들이 많다. 그것들을 평소에 선배들과 커피 한잔, 술 한잔하면서 물어보기도 하고 커뮤니티나 유튜브 등에서 정보를 얻기도 하면서 해소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검증된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좋은 컨텐츠를 제공한다면 잘 되지 않을까?' 이것이 아이디어의 시작이었다. 내 커리어에 영감을 줄만한 사람을 섭외하여 이벤트를 개최하였고, 첫 시도는 무료로, 그 다음 시도는 유료로 확장되었다. 코로나 시국을 맞이하여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으로 전환하였고, 단계적인 검증을 거쳐 지금은 10명 이상의 연사와 1000명 이상의 유저가 참여하는 대형 온라인 컨퍼런스로 확장되었다. 그 시작은 술 한잔 하면서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는 커리어에 대한 니즈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 시도. 설득하기
두 번째 시도해봄직한 일은, 소비자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니즈를 기업이 찾아내어 이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소비자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니즈이기에 소비자를 '설득'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 아이폰을 세상에 공개하면서, 센세이셔널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우리 모두를 설득시켰다.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뭔진 잘 모르겠는데 저건 사야 될 것 같아'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파는 이야기가 혁신에 대한 사례로 자주 소개가 된다. 냉장고는 음식을 차갑게 보관하기 위한 용도인데 그것을 극지방에 살고 있는 에스키모에게 판매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세일즈맨은 에스키모인들에게는 음식이 얼지 않도록 하는 니즈가 있음을 그들에게 설득함으로써 판매에 성공한 것이다. 에스키모인들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니즈를 냉장고가 채워줄 수 있음을 '설득'하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설득의 영역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때문에 그 열매는 엄청나게 달다. 하지만 대부분 이러한 시도는 실패로 끝나버리기 마련인데, 그것이 바로 아래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실패한 시도 '오해'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실패한 (세 번째이자 대부분의) 시도. 오해
기존의 시장을 확장하기 위한 대부분의 시도는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쉬운 일이라면 이미 누군가가 해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소비자도 알고 기업도 알고 있는 기존의 시장이 되었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기에 실패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소비자의 니즈를 확장시키기 위한 대부분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는 것은 '오해'때문이다. 기업은 이런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정작 소비자는 그런 제품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기업이 소비자의 필요성을 오해함으로써 착각이 발생하고, 여기에 근거한 사업개발은 실패로 귀결된다.
사업개발을 하는 사람에게 실패는 뼈 아픈 고통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가까이에서 항상 마주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또한 그 실패가 단순히 쓸모없는 일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길을 찾는 이정표가 되어 주기도 한다. 가서는 안 되는 지역에 크게 X 표시를 하여 다음에 그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실패의 과정에서 배운 경험들이 다음번 시도의 성공 확률을 올려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라고 규정하고 싶진 않았던, 하지만 소비자의 니즈를 '오해'했던 사례를 하나 소개해본다. 사람과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채용 플랫폼을 운영해오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 사람은 참 괜찮은 사람인데, 적절한 조언과 코칭이 있다면 훨씬 더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을 텐데... 저 사람도 코칭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커리어에 대한 상담, 이력서에 대한 코칭을 해주는 서비스를 만들어보았다. 해당 업계에서 충분히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코칭을 해주는 서비스이고, 원티드는 그것을 연결해주는 역할이었다. 수십 명의 코치들과 함께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코칭을 제공해주었고 그 과정에서 좋은 피드백과 매출이라는 성과도 얻을 수 있었지만, 처음 우리가 기대한 수준보다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소비자의 니즈를 '오해'했었던 것 같다. 커리어에 대해서 무언가의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굉장히 개인적인 영역이어서 나라는 사람을 누군가에게 드러내 놓고 도움을 받는 것에는 부담을 느끼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이런 것을 돈을 지불하고 하는 행위 역시도 아직 사람들에게 익숙한 형태의 서비스는 아니었다. 취업과 이직에 도움되었다는 좋은 피드백을 너무나 많이 받았던 서비스였기에 아직도 미련이 많이 남는 시도이다. 해당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더 개선된 방식으로 그들의 니즈를 풀어내고자 오늘도 고민 중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설득의 실패'와 '오해'를 구분하는 것이다. 설득이 실패로 끝난 것이든, 존재하지 않는 니즈를 오해하여 실패한 것이든 결과적으로 우리는 "실패"라는 성적표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인지에 따라 실패를 해석하는 것은 매우 차이가 커진다. 실제로 소비자가 니즈를 가지고 있는데 설득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이라면 아직 성공의 불씨가 남아있는 반면, 내가 소비자의 니즈를 잘못 파악해서 제품을 만든 것이라면 다시 시도를 해도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향후 해당 아이디어를 재시도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내가 소비자의 니즈를 잘못 파악한 것인지 (오해), 가격 / 상품 퀄리티 / 마케팅 등의 문제로 소비자의 지급을 열지 못한 것인지 (설득 실패)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솔직히 실패의 원인은 복잡적이기 때문에 제대로 파악을 해내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고, 나 또한 실패한 아이디어들 중 다른 경쟁기업들이 더 멋지게 문제 해결 (설득)을 하여 성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그 다른 경쟁기업들이 나의 후속시도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이다.
실패 원인을 명확히 분간하기 위해 '설득'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누가 봐도 구매욕구가 나도록 최선을 다해, 가격 / 퀄리티 / 마케팅 등의 과정을 최대한의 품질로 테스트를 해야 한다. 그래야지 실패로 끝난 아이디어가 다시 시도를 해야하는 것인지, 완전히 접어야 하는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다시 린스타트업 / MVP 등의 빠른 테스트 개념과 충돌하는 딜레마를 보여준다. 앞서 다른 글 (최고를 추구하는 것의 함정)에서 언급하였듯이 빠른 테스트를 하지만 테스트가 충분한 배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과 완성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빠르면서 완벽하다'는 말도 안되는 것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것이 스타트업이고, 그 안의 사업개발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니즈"라는 단어에 대한 몇 가지 고민들과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에서 이 글이 시작되었다. 니즈가 있긴 한 것 같은데... 왜 소비자 스스로가 모르는 걸까? 왜 구매를 하지 않는 것일까? 왜 나름대로 소비자의 마음을 추측하여 만들어낸 우리 서비스는 팔리지 않는 걸까?
이 글을 적었다고 해서 소비자의 니즈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우리의 고민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고 모든 기업이 풀고자 하는 숙제와도 같은 문제일 것이다. 다만 글을 정리해가는 과정에서 내 머릿속의 의문점들은 조금은 체계적으로 정리가 된 것 같다. 글을 읽으신 분들에게도 그러하였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