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를 목표로 한다는 엉뚱한 모임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2017년 1월경이었을까? 절친한 동생으로부터 자기 계발 모임 혹은 스터디를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세계 최고"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노력하는 모임이란다. "최고"가 되는 것도 아니라 "세계 최고"라니... 게다가 그 분야는 각자 제각각이고 매주 모여서 노력한 것을 공유하는 데 그 주제는 자유란다. '이게 뭔가?'라는 의문점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권유해준 친구는 물론이고 다른 주축 멤버들 또한 많이 친하진 않지만 인생 멋지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친구들이 많아서 함께 시작해보기로 했다. 이에 더해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5~6년 정도가 넘어가면서 새로운 배움에 대한 갈증이 생기던 찰나였기에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도 같다.
그렇게 시작한 모임은 어느새 햇수로는 3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고, 시즌제로 운영되는 Project1 모임은 7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과거에는 4개월 정도의 긴 시즌을 반기 1회 진행하였고, 올해부터는 2.5개월 정도의 짧은 시즌을 분기 1회 진행하는 것으로 변경) 처음 2개 조 10명으로 시작했던 모임은 3개 조 15명까지 늘어났다가, 한때는 1개 조 5명의 작은 모임이 되었다가 지금은 새로운 분들이 함께 하게 되어 8명이서 진행하고 있다. 매일매일의 시간을 기록하거나, 최고의 사람을 만나거나, Project1의 이름으로 발행되는 글을 쓰거나 매우 다양한 활동이 있었지만, 참여하는 사람이나 운영하는 사람 모두 여력이 많지 않아 지금은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하고 공유하는 최소한의, 가장 중요한 것들만 하고 있다. 처음 모임을 기획했던 운영진이 3명이었다가 내가 조인을 하여 4인 체제를 유지하다가, 지금은 어느새 나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많은 시간과 그 안에서의 많은 변화들이 있었는데... 나는 왜 굳이 이런 이상한 모임을 해오고 있는지, 내가 해왔던 것은 무엇이고, 또한 얻은 것은 무엇인지 이번 기회에 한번 돌이켜 정리해보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각자가 최고가 되고 싶은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매일, 매주, 매년 노력을 꾸준히 지속하자는 것이 Project1의 기본 모토이다. (요즘은 "목표"보다는 "노력"이라는 키워드가 좀 더 강조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렇기에 모든 활동의 첫 번째는 최고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Project1 첫 시즌 오리엔테이션 참석을 위한 준비 과제로 목표를 설정해서 발표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나는 진지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는 타입의 사람이 전혀 아니다. 그렇기에 Project1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한 다른 형태의 스터디, 자기 계발 모임 등에 여러 차례 초대를 받았음에도 한사코 거부하던 나였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Project1에 참여하는 것을 결정한 이후에도, 숙제를 하기 전까지 나는 세계 최고가 되고 싶은 목표와 분야가 전혀 없는 백지상태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렸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더 잘하고 싶은 분야였고, 당시 전략팀에서 일하면서 CEO부터 작은 조직까지의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던 시기였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서 뭘 달성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기업 문화'라는 것이 떠올랐다. 한국은 모두 회사 가길 싫어하고 소위 재벌이라고 하는 성공한 기업들을 미워하는 문화가 저변에 깔려있다. 하지만 회사라는 공간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며, 기업을 만들어서 좋은 제품을 공급하고 고용을 창출해내는 사람들은 마땅히 존경받아 마땅한데, 왜 그렇지 못한 것일까?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기분 좋게 일하고, 그 과정에서 성과도 잘 나오는 멋진 기업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싹트게 되었다. (지금이야 생각이 많이 가다듬어졌지만, 그때는 정말 대학교 리포트 작성해가는 심정으로 억지로 만들어낸 목표였다)
3년 6개월이 흐른 지금도 목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좋은 기업문화를 가진 기업을 만드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 다만 그간의 고민과 공부를 통해서 좀 더 구체화되고 단단해지게 되었다. 우선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스킬 측면의 목표는 제외시켰다. '기업문화'라는 목표도 구체화되었는데, 좋은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은 단지 워라벨이 좋고 복지가 빵빵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비전, 소통방식 등을 모두 포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기업문화를 만들어내는 일이 개인의 목표가 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찾게 되었다. 기업 문화를 만들어 내는 일은 CEO나 인사팀만의 일이 아니라 소속원 모두가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이며, 나는 사업개발을 맡고 있기에 기업의 성장이 내가 기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사업개발의 위치에서 우리 회사가 성장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3년 6개월, 7번의 시즌, 113번의 모임, 400시간의 만남, 1130시간의 노력
이 글을 준비하면서 다시 돌아보니 총 7번의 시즌을 거치면서, 113번의 모임이 있었다. 거의 매주 모임을 하였고 휴식기까지 고려했을 때 평균적으로 11일에 하루 꼴로 모임을 가졌다. 운영진 모임이나 오리엔테이션, 클로징, 비공식적인 자리들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가족과 회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보다 꾸준하게, 끈덕지게 해왔던 모임이다.
보통 주말 오전에 진행되는 모임은 3시간 30분 정도 진행이 되는 것 같으니, 모임 시간만 따져도 대략 400시간이 되는 것 같다. 모임을 준비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 (성장을 위한 노력, 책 읽고 글 쓰기, 모임 준비 등)이 매주 10시간은 되니 노력의 시간은 1130시간은 될 것이다. (한때 모임에서 매일매일의 노력 시간을 기록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것을 꾸준히 했다면 더 정확한 지표를 알 수 있었을 텐데 조금은 아쉽다)
매 시즌 내가 해왔던 노력들은 달라지곤 하였다. 업무 자체에서 최선을 다 하되 그 과정을 리뷰하기도 하였고, 이직을 결심하고서는 이력서와 면접을 준비하고 새로운 커리어를 모색하는 행위 자체가 목표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직 직후에는 새로운 IT 스타트업 분야와 사업개발 업무에 필요한 지식들을 습득하는 것이 그 시즌의 메인 테마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모든 노력들 중 가장 많이 시간을 들였고 꾸준하게 해오고 있는 것은 "책 읽기"와 "글 쓰기"의 2개인 것 같다.
책 읽기
Project1을 하면서 읽었던 책을 모두 헤아려보니 69권이다. Project1과 상관없이 읽은 책이나 휴식기에 읽은 책들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 그렇게 많진 않다. 이것을 나의 전체 독서량이라고 가정해보면 3.5년간 연평균 20권 정도를 읽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인데, 2020년 3월에 발표된 자료에서 대한민국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이 7.5권이니 평균보다는 높은 수치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2주에 1권도 채 읽지 않는 셈이니, 수도 없이 나오는 양질의 도서와 턱도 없이 부족한 지식에 비해서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꾸준히 읽는다는 것은 크게 변하지 않은 가운데 책을 읽는 분야와 방법은 변화가 조금 있다. 처음에는 '좋은 기업문화'라는 키워드에 집중하여 벤치마크가 될만한 '좋은 기업'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다. 당시에는 전통 제조 대기업인 두산중공업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GE나 P&G, 교세라, 삼성 등과 같은 전통 기업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등의 IT기업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기업마다 천차만별인 스토리를 듣는 것보다는 좋은 기업을 만드는 '방법론'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여 경영학의 고전 명저들을 보기도 하고 스타트업의 혁신과 도전에 대한 책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그런 경영 분야의 독서들이 지겨워지면 일부러 시즌 내내 다른 분야의 책들만 읽기도 하였는데, 소설 / 시 /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읽었으며 이번 시즌에는 뇌과학을 주제로 4권의 책을 시리즈로 읽고 있다.
읽는 방법에 있어서도 조금은 변화가 있다. 과거에는 지식의 흡수에 중점을 두고 책의 많은 페이지를 접어놓고 다시 찾아보거나 이를 꼼꼼히 정리하는 방식으로 읽어 내렸다. 지금은 일종의 과도기라고 생각되는데, 지식의 흡수도 중요한 목표이지만 책이 내 삶에 불러오는 인사이트를 찾아내는 식으로 좀 더 독서 방법이 변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독서 방법의 변화라기보다는 내공의 축적이라고 이해할 수 도 있을 것 같은데, 지식의 흡수에만 급급했던 시기보다는 그 지식들이 지금 내 삶과 일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헤아려볼 힘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글 쓰기
책 읽기만큼이나 시간을 많이 쏟은 행위는 글 쓰기이다. 일단 읽은 책에 대해서 간단한 메모의 형태든, 정돈된 서평의 형태든 글을 남겨왔었고, 나 자신과 내 생각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글들을 써왔다. Project1에서도 (지금은 없어진 프로그램이지만) 매주 에세이 1편을 적는 것이 Project1의 주요 프로그램인 시기도 있었고, Project1 brunch에 시즌에 1~2편씩 글을 투고하던 시기도 있었다. 에세이를 적는 것이 숙제일 때는 내 인생, 가치관에 대한 글을 적어보기도 하고 내 생활과 습관을 점검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고, 여행이나 이직과 같은 큰 이벤트에 대해서 글을 쓰기도 하였다. 지금 적고 있는 이 브런치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글을 쓰는 것이다.
최근에는 책 읽기보다 글 쓰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 같다. 앞서 말한 내공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과거에는 '내 글'을 온전히 쓰기에 내 실력과 경험, 고민의 깊이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지금도 보잘것없지만 Project1 활동도 꾸준히 하고, 회사 생활에서도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면서 조금은 '내 이야기'가 생겨나는 것 같다.
또한 내공이 쌓이는 것과 별개로 계속 쓰다 보니 쓰는 실력이 느는 것도 있는 것 같다. 글을 써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지나가는 작은 생각들도 메모를 하게 되고 작은 생각들이 숙성되고 뭉치면서 체계가 잡힌 큰 생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또한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은 결국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인데, 언어가 사고를 규정하듯이 계속 내 생각을 외부에 명확한 형태로 표출하는 것이 내 생각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서 다음 글이 더 깊이감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Project1 활동이나 브런치 활동 외에도 내 유튜브를 하기도 하고 강연이나 패널토론 등에도 참여하여 내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활동들이 내 생각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진지한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는데 소질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기에 Project1의 주요 활동인 목표의 수립과 꾸준한 노력 자체가 나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목표를 이야기하고 고민해오고, 노력을 쌓아오다 보니 지금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졌다. 부끄럽게도 Project1 시즌 사이에는 완전히 그 습관을 놓아버리곤 하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면 자전거를 오랜만에 타듯이 자연스럽게 페달을 밟을 수 있는 습관이 된 것 같다.
Project1을 통해서 시도하게 된 새로운 일들은 비단 나의 메인 목표에 연관된 것뿐은 아니다. 이런 류의 모임을 하고자 한다는 것 자체가 개인의 성장에 관심이 많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친구들이어서, 그들의 좋은 습관을 이것저것 따라 해보곤 한다. 최근에는 수면 기록 앱을 활용하는 것을 해보고 있는데, 이것저것 따라 하다 보면 많은 수는 새로운 시도에서 그치곤 하지만 몇 가지는 나의 것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명상'이 그러한데, 멤버들이 워낙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어서 시도를 해보았는데 어색하지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 한다거나 마음을 비워내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하여, 아직은 가이드를 들으면서 호흡을 조절하고 내 생각이 자유롭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수준이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에 하루 10분씩 해보면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을 느낀다. 명상 외에도 브런치를 쓰거나, 내 삶을 돌아보는 회고를 하는 것과 같은 긍정적인 작은 습관들이 몇 개가 생긴 것 같다. 물론 그들의 좋은 습관들이 모두 내 것이 될 순 없지만,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습관의 형성뿐 아니라, 이곳을 통한 자극들이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성장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자극을 받고 같이 고민을 하다 보니, 성장하는 회사에 대한 열망이 생겼고 그것은 이직으로 이어져 제조업도, 대기업도 아닌 '원티드'로 이직을 하게 되었고 아직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 생활을 해오고 있다. 또한 Project1 이름으로 글을 쓰는 프로그램 (P1 article)을 하면서 원티드에서 배워온 채용 과정에서의 팁 같은 것을 글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런 것들이 계기가 되어 대학교 같은 곳에서도 취업에 대한 특강을 해볼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이런 콘텐츠를 기반으로 Project1에서 만난 다른 친구와 함께 유튜브도 시작하게 되었다. 쌓아온 노력과 건강한 자극들이 새롭고 재미있는 기회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이 모임에 참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개인의 성장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욕심이 많은 사람,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만 누군가와 일주일에 한 번씩 그 목표를 나누고 더군다나 그 시간이 주말 오전임을 고려할 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멤버들은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제일 똑똑하고 제일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런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실질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떠난 이후에 '진짜 친구'를 만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나는 그 말에 완전히 반대하는 사람이다. 내 일상과 생각을 함께 나누고 같이 즐거워하고 고민해줄 수 있는 사람이 친구인데,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면 그런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어질 뿐이지 만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내가 가장 많은 고민을 하고 시간을 쏟는 것이 회사 일인데, 그 공간에서 함께 일하고 호흡하는 내 동료들이 나는 현재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Project1 멤버들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매주 만나다 보니 (연인, 가족, 학교와 회사를 제외하고 매주 만나는 인간관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어려운 목표, 꿈, 그것을 위한 노력, 업무 과정에서의 발전과 고민들을 나누다 보니 기존의 다른 친구 관계에서 얻을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유대감이 형성되곤 한다. 여기 멤버들은 내 취미가 뭔지, 어떤 친구를 만나는지 등은 잘 모르겠지만, 내 꿈이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는 오히려 더 잘 알고 있다. 그런 유대감은 오히려 10년, 20년 된 친구들과 나눌 수 없는 것이기에 특별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그동안 함께 했던 사람의 숫자를 세어보니 나를 포함하여 29명이었다. 누군가는 다른 팀으로, 그것도 한 시즌만 활동하여 2~3번 마주친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는 이곳을 통해 처음 인연을 맺고 몇 년째 만나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당장 다음 주에도 지금은 같이 Project1을 하진 않지만, 이제는 그냥 친구가 된 사람들과 식사를 같이 할 예정이고 앞으로도 그런 좋은 인연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무엇인가를 위해 열심히 시간을 쏟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나에 대한 새로운 면면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원래 가지고 있었으나 모르고 있던 특질을 발견하기도 하며, 잠자고 있어서 발현되지 않은 특질들이 발현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이것을 하면서 나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항상심', 바꿔 말하면 '꾸준한 성실함'과 같은 부분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진지하기보다는 유쾌함을 좇는 사람이고, 목표를 위한 철두철미한 태도보다는 좋은 게 좋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사림이며, 꾸준한 노력보다는 재빠른 재기 발랄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아니다. 내가 그런 사람인지 이제는 잘 모르겠고, 그런 사람이라고 오랫동안 스스로 생각해왔다.
첫 번째 시즌을 마치고 나를 이곳에 초대한 절친한 친구가 해줬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승엽형이 머리가 좋아서 잘하는 사람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는데, 막상 한 시즌을 같이 해보니 물론 머리가 좋은 것도 형의 장점이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가 더 큰 장점 같다"
당시에는 민망한 마음에 무심결에 흘려들었던 말인데, 이상하게 저 말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처음 이 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했던 운영진 3명이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모임을 떠나가는 와중에, 홀로 남아서 모임을 지키고 있는 것만 모아도 그렇다. 그들이 해낸 것처럼 멋진 프로그램을 새롭게 기획해낼 에너지는 사실 나에게는 없어서,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 중 지속 가능한 것들만 일부 수정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다른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 비해 노력의 크기는 작을 것이지만, 나에게 맞는 크기의 노력을 꾸준히 힘을 잃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몹시도 바쁜 한 주에도 시간을 짜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한다. 금요일 밤에 피할 수 없는 술 약속을 다녀와서 책을 보기도 하였다. 개인적인 스트레스와 업무적인 스트레스가 모두 극에 달해있는 시점에도 그냥 묵묵히 모임을 운영하고 참석해오곤 했다. 몇 년을 그러고 나니 이제는, 외부의 변화에도 상관없이 꾸준하게 묵묵히 걸어가는 힘 - '항상심'이 내가 가진 큰 성향이고 장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일 토요일 10시에 Project1 정기 모임이 예정되어 있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금요일 새벽 4시이다. 오늘도 Project1이 나를 괴롭히고 있고, 매주 금요일 새벽까지 고생하고 토요일에 모임에 다녀와서 지쳐서 낮잠을 자곤 한다. 내 손으로 선택한 활동이지만 솔직히 만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한 2번 정도 Project1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번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말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몸과 마음이 조금은 붕 떠있는 상태였고, 회사 일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야근과 주말 근무도 많아서 자기 계발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서 오프라인 공간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인 시기이기도 했다.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 지난 시즌 멤버 중 한 친구가 이번 시즌 한번 시작하자고 하는 말에 나도 힘이 나서 이번 시즌을 오픈했다.
막상 시작을 하니 그동안 왜 미루어왔나 생각이 들만큼 좋다. 지난 시즌에 조인한 멤버들도 이제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고, 이번 시즌 새로 조인한 멤버들이 새로운 활력과 인사이트를 공급해주고 있다. 몇 시즌째 함께 하고 있는 성원, 한솔, 재환이는 언제나 그래 왔듯 멋진 영감을 꾸준하게 제공해준다. 그들로부터 에너지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일종의 부담이 TV 대신 책을 보게 하고, 금요일에 술자리를 피하고 귀가하게 한다. 차분한 시간들이 오히려 생활에 활력을 주고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것 같다.
Project1를 함께 했던 친구 중 치수라는 친구가,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다시 모임에 돌아오면서 "가장 지적이면서 재미있는 취미 중 하나가 Project1이다"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너무나 공감되는 이야기이다. 당장 이 모임이 얼마나 지속될지, 그 지속되는 모임에 언제까지 내가 함께 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점점 가정과 회사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의 부담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고, 나를 위한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유는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당장 즐거운 일이니 미래를 너무 고민하지 말고 오늘도 즐겁게 나를 괴롭혀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