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내 양쪽에서 괴성이 들린다. 날이 습하고 더워져 쌍둥이가 잠을 설치며 내는 소리다.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10분마다 번갈아가며 온 몸을 뒤틀고 짜증을 낸다. 내 왼팔은 1호의 배 위에, 오른팔은 2호의 등 위에서 쉴 새 없이 밤새 토닥이고 있다.
새벽 6시. 일찍 깬 1호는 놀이방에 가자며 등에 업힌다. 자고 있는 2호 깰까 봐 까치발로 걷는데 등 뒤에서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린다. 폭발한 울음을 그치지 못해 무조건 안아달라는 2호. 결국 합 28킬로를 앞. 뒤로 엎고 2층에서 내려오는데 모든 관절에서 두둑 두둑 소리가 난다. 그때 어부바하고 있던 1호가 내 어깨에 붙여놓은 파스를 떼어내더니 아주 맛있게 씹는다. 하아…
출산 후 정확히 871일 동안 단 하루도 수면다운 수면을 해본 적 없다. 보통 아이를 낳고 1년 정도는 옥시토신이 과다 분비돼 힘들어도 그만큼 느끼지 못하고 육아에 헌신하다 그 뒤로는 쌓여있던 피로가 터져 여기저기 아프다고 한다. 그런데 난 임신을 알게 된 그날부터 걷기조차 힘들었다. 4번의 유산을 겪으며 나이 40에 쌍둥이를 낳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생리기간이 다가와 그런가 오늘따라 아이들의 작은 행동에 화가 올라와 참기 힘들다.
'오늘도 좋은 엄마는 실패했군'
쌓여있던 분노를 오른손에 실어 아이의 엉덩이 쪽으로 가져간다. '이눔쉬끼!' 하며 팔을 들어 올리는데 순간 나의 힘에 스스로 놀란다. 때리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벌써 세상 서러운 표정으로 눈물샘을 터트린다.
"아... 미안. 엄마가 잘못했어. 미안해 내 새끼"
오늘도 난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좋은 엄마 vs 부족한 엄마의 역할놀이를 하고 있다. 매일 자책하고 흐뭇해가는 순간들. 이 삶을 얼마나 원했던가. 아이란 존재가 내 인생에 함께하길, 내 배가 아이로 인해 커지기를, 임산부 배지를 차고 걸어 다니길 얼마나 간절히 소망했었는지 되뇌어본다.
8년 전 34살에 3대 종손 맏며느리가 되었다. 세상 모든 일에 자신 있었지만 나이는 내 조절 능력 밖이고 늦은 나이에 결혼했으니 아이라도 서둘러보자는 마음에 배란일 앱이 알려주는 시기에 우린 열심히 노력했다. 임테기 매뉴얼에 의하면 아침 첫 소변을 5~10초 정도 묻힌 후 3분 후 두 줄이 나오면 임신이다. 임테기 중에서 99.9% 정확하기로 소문난 제품, 결과가 빠르게 나온다는 초스피드 진단 제품 등 다양하다.
결혼 3달 후 자연임신으로 아이가 생겼다. 동네 산부인과에서 임산부 등록을 하고 나라에서 주는 임신. 출산 지원금까지 수령한다. 임신 4주나 됐을까 싶은 극 초기였지만 핑크색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달고 누가 내 몸 건드릴까 싶어 배를 감싸고 걷기 시작한다. 미래를 상상하며 콩알보다 작은 뱃속의 어느 배아에게 말한다.
안녕? 내가 네 엄마야. 우리에게 와 줘서 정말 고마워.
2주 뒤 심장소리를 듣기 위해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다. 매우 불편한 느낌의 초음파 기계가 내 몸으로 들어왔고 심장소리가 아닌 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죄송하지만, 심장이 뛰지 않아요. 아무래도 소파수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왜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소파수술은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눈물이 나왔다. 아니 강가에 댐이 무너진 것 마냥 눈물이 쉬지 않고 줄줄 흘렀다. 말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수술을 끝내고 2개월 뒤부터 임신 시도가 가능하단 말에 바로 계획에 돌입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그땐 참 아팠지만 매우 슬프고 참담하진 않았다. 보통 많은 여성들이 한 번씩 유산을 경험한다고 하니, 또 내 나이가 있으니 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다독이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