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42, 쌍둥이 24개월 그리고 이제 날개를 펴기 시작한듯한 남편과 제주 이사를 감행했다.
주변인에게 이사를 말하니 다들 눈이 커지며 묻는다.
'왜? 어쩌다가? 무엇 때문에?'
이 질문에 자연스러운 대답은
'그냥 아이들과 자연에서 놀다 오려고.'인데
사실 깊게 생각해보면 나에겐 다른 이유들이 많았다.
'사회적 무게에 대한 버거움'
10년 넘게 강의 일을 하며 만들어진 사회적인 성격과폼세, 그 안에서 연결된 사람들과의 기본적인 체면, 그리고 집 앞 스벅에 잠시 가면서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게 되는 매일의 답답함이었다.
고등학교 수능이 끝난 날부터 시작된 나의 사회적 노동은 19살에 시작해 단 하루도 쉬어본 적없다. 사회적 인정을 꿈꾸던 20대 후반부터 시작해 야망과 성공의 끝자락을 맛본 30대 후 '또 무엇을 해볼까?' 싶을 때 쌍둥이를 만났고, 더 이상 이루고 싶은 결과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관계에서도 마른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100% 솔직할 수 없는 대부분인 주변인들, 서로를 좋아하는듯 표현하지만 알고 보면 뒤에서 아웅다웅 키재기 하는 대화들, 개인적 이익을 위해 마치 체스판 말을 놓듯 원하는 포지션으로 서로를 관계하는 심리적 거리들. 이 모든 것에 탄식하며 또 그 안에 하나가 돼있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서울 번화한 동네에서 살던 내 가족은 집밖이 바로 주차장이라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5분만 걸어 나가면 탁 트인 한강공원이 있지만 이 또한 흐릿한 구름 속 작디작은 점 같이 느껴졌다. 넓은 집에 살면서 좁게 느껴졌다. 부유하게 누리며 살면서 소비가 부족했다. 매일 아이들 덕분에 웃었지만 한편으로 목이 말랐다.
반복된 생활과 마음 상태가 만든 습관이었을까?
답답하고 숨 막히고 모두 내려놓고 싶었다.
'그래 떠나자!'
나의 거침없는 추진에 남편은 응원을 표했고 우린 두 달간의 이사 준비 끝에 현재 제주에서 한달살이 중이다.
당연히 있던 곳을 떠나오기는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 한 발을 내디디면 다음 걸음을 매우 쉬워진다. 아니, 점점 두근거리고 설레어진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만나는 기분, 당장 살 곳이 없는 삶,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던 내 주변의 짐들을 버리고 내려놓고 뒤로하고 시작한 제주의 삶은 격하게도 평화롭고 아무렇지 않다.
없으면 안 될 줄 알았던 수많은 물건들과 관계들 그리고 애써 붙들고 있던 '난 잘 살고 있는 거야'와 같은 마음들과 이별하니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마음이 배부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