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들이 즐비한 서울 한복판에서 살다 제주로 오면 무작정 좋을 거라 생각했던 나 자신이 오만했다.
'제주는 기온이 높네?! 날씨 좋겠다!'
맞다. 기온은 다른 지역보다 높은데 바람 또한 거세고 거침없다.
햇살이 좋아 보여 창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라 꼭꼭 잠그길 매일. 문 밖을 나가 1분도 지나지 않아 또 깜짝 놀라 집에 돌아오고, 바람에 손끝이 얼얼하고 귀가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활동을 해야 기분이 좋아지는 두 돌 된 쌍둥이는 집 밖을 나가지 못해 답답해했고, 그런 아이들에게 미안해 어떻게든 나갔다가 아이들 코에선 노오란 콧물이 줄줄 흘렀다.
모든지 생각난 대로 바로 선택할 수 있었던 서울의 삶과 달리 제주에선 끝을 알 수 없이 계속 기다리고 바라봐야 했다. 잠시 온 여행이 아니라, 살러 온 제주인데 나도 모르게 조급해하고 불안하기 시작했다.
'계속 날씨가 이러면 어쩌지? 이러다 여름 되면 덥겠네?'
아이들이 마구 모여있는 키즈카페가 싫어 제주로 이사 온 우리는 가까운 실내놀이터를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막연함이 밀려오던 어느 날 아침, 코를 킁킁거리며 햇살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바람에 목 꺾인 풀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창문 밖 공기가 살랑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제주에 봄이 왔다
월정리 해변에서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아이들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드리운 제주는 봄같이 따뜻하다. 적당한 겉옷만 입어도 충분히 따사로운 기운이 들고 지나가는 바람이 살랑거린다. 두꺼운 패딩을 벗어놓고 무작정 바다로 나간다. 엄마 손 잡지 않곤 한 발짝도 걷지 않던 아이들은 저 멀리 걸어가 나에게 빨리 오라며 손짓한다. 계속 놀아달라고 매달리던 아이들이 파도에 맞춰 뛰어다니고 깔깔 웃는다. 내 손을 놓아 혼자 여기저기 위험 없이 다닐 수 있다니...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