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별 독서기록>
어느 새 2월도 훌쩍 지나버렸다. 올해는 2월 29일 하루가 더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새 3월이다. 학교가 시작되고, 곧 봄이 올 것이다. 지난 2월을 정리하며 봄바람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1.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 (원제 : I, etcetera), 수전 손택(Susan Sontag), 김전유경 역, 도서출판 이후, 2007, 407p
'소설가' 수전 손택을 만날 수 있는 책. 그녀의 단편 소설 8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자전적이면서, 허구적이면서, 예술적이다. 전혀 다른 이야기인 듯 싶으면서도 그것들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책 제목인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 나와 타인, 삶과 앎 등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을 잘 대변해 주는 듯하다. 기억나는 작품으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제일 먼저 수록되어 있는 <인형>(The Dummy)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부부가 '선생님'에게 상담받는 신선한 형식으로 (부부의 말만 나타나 있다) 이루어진 <베이비> 등이 있다.
2. 은유로서의 질병 (원제 : Illness as Metaphor, AIDS and Metaphors), 수전 손택(Susan Sontag), 이재원 역, 도서출판 이후, 2002, 290p
<사진에 관하여>나 <해석에 반대한다>와 더불어 수전 손택의 저서 중 가장 알려진 작품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녀는 유방암을 이겨냈는데, 물론 이 질병과의 투쟁이 이 책을 쓰는데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맞지만 인터뷰(<수전 손택의 말>) 등을 보면 단순히 이 경험과 성찰을 계기로 이 글을 기획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질병이 가진 은유를 분석하고 벗겨내면서 사람들이 질병을 대하는 고정된 태도와 그것을 신비화하는 언어를 제거하고자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결핵으로 세상을 떴고, 자신은 유방암을 이겨냈으며 어머니는 폐암으로 사망했다. 가까운 친구 몇몇은 에이즈로 삶을 마감했다. 후엔 자궁암을 앓으면서 또다시 질병과 싸워야 했다. 이러한 환경은 그녀가 남들보다는 더 '질병'과 투쟁하는 이유를 마련해 주었을 것이다. 읽으면서 "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에 '만들어진' 관념들을 무의식적으로 부착시키는가?"하고 깨닫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연상하던 수많은 은유들에 대해 왜 진지하게 의문을 가져보지 않았는가 반성해 보기도 한다. 우리는 질병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그것들을 너무나 신비화하고 있다. 이 글을 계기로 비단 질병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수많은 것들에 대해 그것이 그렇게 받아들여지게 된 이유, 역사, 배경을 생각해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문학적으로나 실제로나 '결핵'과 '나병'에 다른 이미지가 어떻게 부여되고 ,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 등을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다.
"'역병'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질병들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명칭이었을 뿐만 아니라 집단적 재앙, 악, 천벌을 나타내는 최고의 본보기로서 오랫동안 은유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에 따라, 역병이라는 은유는 질병이란 것은 기꺼이 그 고통을 받아내야만 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질병은 그저 질병이며,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다."
"일단 사형선고를 받고 나면, 당신은 태양도 죽음도 똑바로 쳐다보지 않으려 할 겁니다. 당신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차지요. 그러나 당신의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강해지고 깊어지는 뭔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생명이라고 부른답니다."
3. <사물들과 철학하기 - 어떤 철학 경험> (원제 : Dernieres nouvelles des ghoses), 로제 - 폴 드루아(Roger-Pol Droit), 박선주 역, 동문선, 2005, 225p
읽으면서 워낙 재밌어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도 했다. (철학, 어느 때나 어디서나 무엇이든) 언젠가 다시 책꽂이에서 뽑아 내 읽어 볼 것 같다.
4. <나비> (원제 : Schmetterlinge),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홍경호 역, 범우사, 1999, 160p
거실의 책꽂이에서 발견한 꽤나 오래된 책이다. 표지의 나비 그림이 강렬해서 '무슨 책이지?'하고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이 책은 헤세가 <나비>라고 이름 붙여 기획한 책이라기보다 꽃과 나비에 깊은 애정을 가졌던 헤세의 여러 가지 체험과 추억, 관찰, 시 가운데서 멋진 글들을 골라 모은 책이다. '나비'는 여느 다른 곤충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동요나 노래, 시와 영화에 자주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전쟁통에 날아온 한 마리의 하얀 나비라든가, 풀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에게 다가온 나비들. 학창 시절 수능 언어영역 단골 출제작이었던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도 떠오른다. 이 책은 그런 '나비'를 사랑한 뛰어난 예술가의 고찰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컬러로 인쇄되어 있어서 다양한 나비 그림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5.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한강, 열림원, 2009, 250p
이 책도 개인적인 경험이 떠올라 느끼는 바가 많았는지 브런치에 글을 썼었다. (아름다운 순간, 아름다운 사람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도 좋지만, 읽는 각각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경험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행복했으면 좋겠다.
6. <경제 민주화를 말하다> (원제 : People First Economics), 노암 촘스키, 조지프 스티글리츠 외, 김시경 역, 위너스북, 2012, 298p
이 책의 원제 'People First Economics'처럼, 이 책은 더 이상 이론과 숫자만 적용되는 경제가 아닌 '공생(共生)'해 나갈 수 있는 경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무역보다 생산을, 금융보다 노동을, 부자보다는 가난한 다수가 더 중요시 도고 권리를 보장받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의 구축이, 즉 '돈과 자본'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경제 민주화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각각 다른 분야의 경제 전문가들이 조리 있게 집어내 준다. 2008 금융위기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로 이미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을 향한 무제한의 신뢰를 잃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이 책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7.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원제 : Korea : The Imppossible Country), 다니엘 튜더(Daniel Tudor), 노정태 역, 문학동네, 2013, 456p
6번의 <경제 민주화를 말하다>를 읽고 떠올라 읽은 책이다. 대한민국은 완전한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을 따라가고 있다. 아니, 사실 '한국형 신자유주의'를 이뤄냈다. 책의 제목처럼 대한민국은 기적의 나라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는 어느새 (경제만큼은) 상당한 위치에 올랐고,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고,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많다. 지금의 우리는 외줄을 타고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인터넷뿐만 아니라 이젠 공식 언론에서도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소개되기도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저자 다니엘 튜더는 푸른 눈의 영국인으로, 2002 월드컵 당시 한국에 반해 14년간 한국에 살면서 한국의 겉면만이 아닌 깊숙한 속내까지 알아간 언론인이다. 그는 한국에 관한 '정말 제대로 된' 소개서가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책은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삼국 시대 역사라든가, 격동의 근현대사, 생활, 문화, 음식, 유행 등 우리는 당연시해 온 수많은 것들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기 때문에,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하는 재미는 없다. 하지만 '이방인'이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은 이렇구나, 이렇게 보이는구나 하고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또 가끔은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조금 딴지를 걸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영미권 작가가 영어로 출판한 책 중에 가장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대한민국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으며, 전해지지 않을 감사를 느끼기도 한다. 또 작가가 대한민국에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음이 분명함도 읽을 수 있다. 가끔은 '밖'에서 보는 우리의 모습, 그들이 바라본 감상을 알아가는 것도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데 나쁘지 않을 것이다.
8.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 (원제 : 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 장하준 , 안세민 김희정 역, 2010, 367p
고백하자면 사실 아직 다 읽지 못했다. 반쯤 읽었을 때, 밑의 박완서 소설을 읽느라고 잠시 읽기를 멈춘 상태다. 그리고 어느 새 달이 바뀌어서 다음 달에 넣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 책 또한 위의 6번과 7번 책과 연관 지어 읽은 것이기 때문에 함께 기록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장하준 케임브릿지대 교수의 너무나도 유명한 책이다. 사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읽어봤지만 제대로 읽지 않았다. 때문에 이렇게 다시 빌려서 읽어보았다. 자본주의, 자유시장, 금융위기, 임금격차, 생산성, 고용 불안 등 경제학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경제학 도서'는 아니다. 저자는 진짜 자본주의가 뭔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우상의 허점이 무엇인지,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뭔지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경제 시민으로의 권리'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 권리를 가지기 위해서는 알아야만 한다.
9, 10. <엄마의 말뚝> - 1,2,3 , 박완서, 맑은 소리
오랜만에 박완서 씨의 작품을 읽었다. 내 기억으로는 이 작품은 교과서에도 실려있던 것 같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이미 몇 번은 읽었던 책이지만 참 때마다 새롭다. 대한민국 문단에 박완서 같은 작가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축복인 것 같다. <엄마의 말뚝>은 우리 엄마가 생각나서, 그리고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가 생각나서 가슴 아픈 책이다.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이 세상 그 어느 관계보다 가깝고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또 누군가의 딸이고, 그 누군가는 또 누군가의 딸이다. 딸은 또 엄마가 되고, 딸을 낳는다.
남편의 죽음, 가난, 전쟁, 오빠의 죽음, 그리고 어머니 본인의 다가오는 죽음.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딸의 시선. 애정으로, 증오로, 안타까움으로, 미안함으로, 분노로, 실망으로, 고마움으로, 측은함으로 바라보는 그 시선 모두는 엄마를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이다.
1월의 독서기록을 다시 읽어보니 그때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독서를 했던 2월이었다. 하긴, 잠시 잊었나 보다. 독서 계획이란 항상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때마다 읽고 싶은 책들이 생겨나고, 우연히 발견하고, 읽은 책이 또 다른 책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방법이 훨씬 재밌다! 그러므로 3월의 독서 계획은 세우지 않으려 한다. 3월엔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싶어 질까? 나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