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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기 Aug 23. 2022

오늘은 내가 다 틀렸다

현지인들에 대한 선입견

목적지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을까.


네팔의 좁고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운전해온 버스기사도, 자리에 제대로 앉아보지도 못하고 버스 문에 매달려 정신없이 손님을 태우던 직원도, 좁은 자리에서 쪼그린 상태로 무거운 짐을 안고 달려온 우리도,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쳤다.


10시간을 타고 가는 버스요금은 우리 돈으로 겨우 5천 원. 그것도 우리처럼 10시간 내내 타고 있는 사람이나 그렇지, 대부분은 중간에 타서 몇 백 원 내고 조금 가서 내리고 그러니 10시간 동안 열심히 사람 태워봐야 기름 값 빼면 남는 것도 없을 것 같다.


9시간이 넘어갈 무렵, 갑자기 버스 안에 울리던 음악소리가 조금씩 커진다. 나름 네팔 최신 댄스가요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버스기사와 직원이 노래에 맞춰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점점 몸을 신나게 들썩이며 춤을 춘다. 보는 사람도 신나서 같이 들썩이게 만들 정도. 충격이다.


'어떻게 이런 힘이 남아 있지?'


흙먼지 날리는 울퉁불퉁하고 좁은 비포장도로를 다 쓰러져가는 낡은 미니버스로 이미 9시간이나 달렸다. 게다가 사람을 태우며 돈을 받는 직원은 9시간 동안 거의 문에 매달려 왔다. 그런 그들이 지금 내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있다.


잠시 멍하니 지켜봤다.


가만 생각해보니 네팔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들의 삶이 아직 가난하고 미개하다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초점은 겨우 먹고사는 데 있지 않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삶 자체를 그대로 즐기고 있다.  


우리는 고차원의 행복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대다수는 항상 ‘먹고살기 힘들다’며 가장 1차원적인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런 면에서 이 순간은, 무엇이 진짜 고차원적인 행복의 삶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잊지 못할 장면이다.


목적지인 네팔 국경마을에 다다를 때쯤

남은 손님은 우리 둘 뿐.


버스기사가 처음엔 7~8시간이면 도착한다며 우리를 잡아 태웠는데, 같은 동네를 2시간 넘게 빙글빙글 돌며 사람을 가득 채우느라 10시간이 넘게 걸렸다. 가로등 하나 제대로 없는 시골동네에 벌써 저녁 9시가 넘었다.


‘화장실 갈 때, 나올 때 마음 다르겠지?’

저들은 오늘 자기들 벌 만큼 벌었고, 그동안의 경험상 우린 이 동네 어딘가에 던져질 테고, 그때부터 숙소를 찾아 헤매기 시작할 것 같다.


잠시 후, 마을에 들어서자 버스직원이 우리에게 숙소가 어디냐 묻는다. 가서 찾아봐야 한다니까 갑자기 버스가 숙소를 찾아 나섰다. 한 숙소 앞에 버스가 서자 직원이 먼저 뛰어나가 방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손짓하며 와서 맘에 드는지 보란다.


따라가서 방을 보는 동안, 직원도 옆에서 우리가 ‘OK’ 할 때까지 기다린다. 늦은 시간 난감한 상황에 이렇게 도와주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팁을 또 얼마나 요구하려고 그러지?’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밖은 너무나 캄캄했고, 이 늦은 시간에 방 상태야 마음에 들고 말고도 없다. 무조건 OK.


그래도 고마운 마음에 짐을 놓고 약간의 팁을 챙겨 내려왔다. 그런데 그 직원은 이미 달려가 버스에 타고 없었다. 밖을 내다보니, 출발하는 버스에서 그는 내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의심의 눈으로만 바라보던 내가 부끄럽다.


그들은  힘들어도 돈만을 위해 악착같이 일한다는 생각도, 우선 돈만 벌면 사람은 뒷전일 것이란 생각도, 팁 몇 푼 더 받기 위해 과잉 친절을 베풀고 있다는 생각도,



오늘은 내가 다 틀렸다.





564일 67개국 공감여행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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