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밴쿠버 찾기

+ 현지 적응 훈련

by 윤슬기

여권 신청을 마치고 빛이와 난 서점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휴대전화가 울린다. 벨소리와 동시에 생각이 스친다.


'이런. 사진 다시 제출해야 하나?'


조금 아까 여권 신청 담당자분이 사진에 문제가 있으면 오늘 중으로 전화가 갈 거라 했던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화면을 보니 다행히 스팸이다. 평소 같으면 귀찮았을 광고전화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사실 사진 한 번 다시 찍어 제출하는 일이 뭐 그리 엄청 대단한 일은 아닌데, 무슨 시험에서 합격과 불합격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오늘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그렇게 가슴을 한 차례 쓸어내리고 나니 배가 고프다.


"빛이 너 햄버거 먹을 수 있어?"


평소 아이들 건강을 생각해서 햄버거 먹이는 일이 거의 없는 내가 이렇게 물으니 빛이가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무슨 그런 뚱딴지같은 소릴 하냐는 표정이다. 약 2초간의 버퍼링 후 빛이의 신난 목소리가 들린다.


"어. 완전 좋아!"


난 그저 지금 햄버거가 먹고 싶을 뿐이지만, '현지 적응 훈련'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목을 붙여본다.


"빛이야, 미국이랑 캐나다 가면 그 사람들은 햄버거 같은 음식 엄청 많이 먹거든? 그래서 우리도 여행 가서 잘 먹으려면 이런 걸 미리 좀 먹어봐야 돼."


원래 나에게 햄버거란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고 유모차를 밀다가 막내가 잠들면 몰래 먹는 음식이다. 늘 한 손으로 유모차를 밀며 혼자 먹던 햄버거를 처음으로 매장에 앉아 딸과 마주보고 먹는다. 뭔가 합법적으로 먹는 햄버거 맛이 새롭다.


처음으로 딸과 단둘이 먹은 햄버거




'햄버거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서점으로 갔다. 아빠와 만든 소중한 치킨을 잃어버렸던 추억의 장소다.


https://brunch.co.kr/@seurk/157


서점 도착


"빛이 너 유치원 다닐 때 아빠랑 치킨 만들기 하고 여기 와서 치킨 잃어버렸던 거 기억나?"

"아아~ 예전에 그 치킨 다 만들어 왔는데 치킨 잃어버렸던 그 서점?"


"어, 맞아. 거기!"

"기억 안 나."


"진짜? 기억 안 나?!"

"아니. 사실 기억나."


부녀가 하는 대화의 90%는 장난이다. 그렇게 잠시 추억팔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먼저 어린이 코너로 갔다. 아빠가 쓴 책의 최애독자 딸은 아빠의 책을 찾아 스스로 광고모델이 된다.


아빠책 광고


다음은 여행코너다.


무작정 밴쿠버행 항공권을 끊긴 했으나 캐나다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에 여행책자를 하나 사기로 했다. 파리, 로마, 도쿄 등 인기 도시들로 가득한 책장에서 '밴쿠버'라는 글자는 찾을 수가 없다. 밴쿠버는커녕 '캐나다'조차 찾기 힘들었다.


벽돌처럼 두꺼운 '미국 서부' 책자에 '시애틀'에서 잠시 다녀올 수 있는 도시로 밴쿠버가 서너 페이지 끼여 있는 정도가 전부다. 고작 몇 페이지 보자고 책을 사기엔 아까워서 포기하려던 순간, 그 수많은 유명 여행지들 사이에서 '캐나다 서부'라는 글자가 들어온다.


드디어 찾았다.


꺼내어 훑어보니 내용의 절반이 밴쿠버다. 우릴 위한 책을 만난 느낌이다. 선택의 여지없이, 고민의 여지없이 바로 구매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빛이와 나란히 앉아 창밖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빠, 저게 스타벅스라고 적힌 거야?"

"어. 맞아. 이제 미국이랑 캐나다 가면 거긴 간판도 전부 저렇게 영어로 되어 있겠지? 그리고 우리가 가는 도시 중에 시애틀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가면 저 스타벅스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매장도 있거든? 거기도 한번 가볼까?"


"......"


돌아오는 버스에서


빛이는 이미 꿈속에서 먼저 캐나다로 떠났다.




그리고,

다행히 오늘 구청에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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