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기 싫어?

여행 준비로 생긴 삶의 변화

by 윤슬기

"빛이 여행 가는데 빨리 책상 하나 사줘!"


장모님의 목소리가 아내의 수화기를 뚫고 나온다. 여행과 책상의 상관관계가 궁금해진다. 아내가 보낸 사진 한 장이 발단이 되었다. 빛이가 엎드려서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 문제였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이지만, 빛이의 생애 첫 해외여행 소식이 전해진 이후라 장인, 장모님 눈에 유독 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의 사진


사실 우리도 책상을 언제쯤 사줘야 하나 늘 고민이긴 했다. 첫째를 위해 얼른 사주고 싶은 마음과, 아직 어린 막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 두고 조금만 더 기다리자는 마음이 나름 치열하게 맞서는 중이었다.


"돈 보내줄 테니까 얼른 사!"


장인어른의 한마디에 그간의 팽팽함이 깨졌다. 겸사겸사 직접 올라오신 장인, 장모님과 함께 이케아 매장을 방문했다.


"이따 아이스크림 사줄 거지? 하늘이랑 난 저기 놀이방 가서 놀고 있을게!"


정작 책상을 사용할 빛이의 관심은 엉뚱한 데 있다.


책상엔 별 관심 없는 아이들




큰 매트 하나를 들어냈다. 무려 6년 만에 거실 바닥이 일부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도 막내의 뛸 공간을 위해 나머지 두 개의 매트는 살렸다.


6년 만에 드러난 바닥


책상과 의자를 조립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건, 아마 만드는 동안 아이들을 쫓아내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난 '저리 비켜 봐! 위험해!'라는 말 대신 다른 문장을 택했다.


"이거 니들이 만들래?"


조금 큰 큐모의 만들기 수업에 참여하게 된 빛이와 하늘인 무척이나 신났다. 한 사람은 붙잡고, 한 사람은 나사를 조이며 꽤나 평화로운 작업이 진행됐다. 책상이 완성되자 아이들은 뿌듯함에 방방 뛰었다. 자신들이 만든 책상인 만큼 더 애착을 갖길 바라는 마음이다.

책상 조립 완료


그렇게 우리집은 좌식 생활에서 입식 생활로 삶의 구조가 바뀌었다. 준비과정에서 생활의 구조가 바뀌었다면, 여행을 다녀온 후엔 이 아이가 삶을 대하는 뇌의 구조도 변화되길 기대해 본다.




집안 분위기가 바뀌니 의욕이 솟는다.


나: 이제 책상도 생겼으니까 본격적으로 여행 준비 한번 해볼까?

빛: 뭘 하면 되는데?


나: 책 보면서 공부도 해야 되고, 숙소도 알아봐야 되고, 여권 나오면 캐나다랑 미국 여행 허가도 받아야 하고, 돈도 미국 돈으로 바꿔야 되고.. 할 거야 많지.

빛: 뭐가 그렇게 복잡해~.


나: 그래서 하나씩 천천히 할 거야. '질문 만들기' 어때?

빛: 그게 뭔데?


나: 캐나다랑 미국에 대해 궁금한 걸 미리 적어보는 거야. 궁금한 거 없어?

빛: 모르겠는데? 어려워.


나: 캐나다와 미국은 어떻게 다를지, 대중교통은 뭐가 있을지, 거기 사람들은 무슨 음식을 먹고 사는지, 뭐 그런 거 있잖아.

빛: 몰라아.


의욕에 불타는 아빠와 달리 관심 없어 보이는 딸의 반응에 결국 내 입에서 투정 섞인 잔소리가 찔끔 튀어나왔다.


"빛이 너 여행 가기 싫어?"


말을 내뱉으며 조금 심했나 잠시 걱정했으나, 빛이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한다.


"아빠가 생각해 봐. 여행이 가기 싫은 사람이 있겠어?"


저 조동아리한테 또 한 대 맞았다.

아이와 발걸음을 맞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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