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2주

모든 것이 중단되다

by 윤슬기

몸이 낫기 위한 자연스런 반응.


아이들에게 열이 나는 건 흔한 일이다. 가만있어도 보통 3일 정도만 지나면 열이 떨어지며 몸이 낫는다. 우리집에선 웬만해서 39도까지는 해열제를 먹이지 않는다. 아이들 역시 그 정도 열이 올라도 평소와 비슷한 상태로 논다. 간혹 아이가 너무 처지면 해열제를 한 번씩 먹이기도 하는데, 평소 약을 워낙 안 먹다 보니 한 번 먹었다 하면 2시간 이내에 드라마틱하게 체온이 뚝 떨어지곤 한다.




어제부터 컨디션이 썩 좋지 않던 막내가 갑자기 열이 오른다. 세 아이를 키우며 열이 오르내리는 과정을 수없이 지켜봤지만, 이번엔 양상이 좀 다르다.


아이가 유독 보채고, 40도를 넘나드는 열이 며칠째 지속됐다. 생후 20개월 만에 처음 해열제를 먹였는데도 효과가 거의 없다. 3일째가 되자 아이의 온몸에 발진이 일어난다. 열꽃이 피었으니 곧 괜찮아질 것이라 예상했으나 열이 다시 오른다. 지속되는 고열에, 손발은 퉁퉁 붓고, 그 잘 먹는 아이가 먹지도 않는다. 입술이 터지고, 눈까지 빨갛게 충혈됐다.


"아무래도 가와사키인 것 같은데요. 큰 병원 가셔서 일주일 정도 입원치료 하셔야 될 거예요."


다음 날 아침,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의뢰서를 써준다. 병 특성상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심장이 위험할 수 있으니 얼른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그래도 몇몇 대형병원들이 가까이 있어 다행이다.


"가장 빠른 예약이 한 달 뒤에 있는데 잡아드릴까요?"


전화를 하는 곳마다 같은 반응이다. 아이는 점점 처지고 한시라도 빨리 치료가 필요한데 한 달 뒤라니.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S대 병원만 그나마 내일 진료가 가능하고, 근처에 있는 병원들은 전부 불가능이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와사키병 의뢰서를 받았는데 응급실로 들어가면 바로 치료받을 수 있을까요?"

"저희는 잘 모르고요. 응급실에 직접 가셔서 예진을 받아보시면 응급환자인지 아닌지는 거기서 판단할 거예요."


모든 병원에서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아이가 지금 열이 펄펄 끓고 당장 치료해야 하는 병인데, 응급실 가서 한참 기다렸다가 응급환자가 아니라고 하면 그냥 다시 돌아가야 되는 거예요?"

"네. 죄송하지만 저희는 중증도에 따라 환자를 받고 있기 때문에 더 급한 환자가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응급실에 가보실 수는 있는데, 확답은 못 드려요. 그건 응급실에서 판단하는 거라서요."


귀가 의심스럽다. 응급실의 판단? 응급실이 무슨 신이라도 되는 건가. 어이가 없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자 잠시 후 수화기에서 원무과 직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정 급하시면 119를 이용하시는 게 나으실 수도 있어요."


전화를 끊고 바로 119에 연락했다. 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했다. 당장 병원으로 출발할 줄 알았으나, 상황을 확인한 구급대원은 20분 이상 여기저기 연락을 주고받느라 바빴다.


"20개월 된 아기고요. 가와사키병으로 열이 현재 40도 이상 올랐고, 3~4일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가능할까요?"


구급대원이라 그런지 응급실에 직접 연락할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급대원은 내가 연락했던 대형병원들의 응급실에 차례로 연락을 했고 상황 설명 후 전화를 끊었다.


"알아보고 연락 주겠다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구급대원과 나, 그리고 막내 별이는 응급실의 연락만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대원의 휴대전화가 연이어 울린다. 대부분 거절이다. 잠시 후 또 다른 전화를 받은 구급대원이 내게 묻는다.


"M병원인데요. 지금은 입원실이 없어서 그냥 진료만 보고 갈 거면 오라는데요. 가볼까요?"

"이 병이 12시간 동안 치료제를 맞아야 하는 병인데 입원을 못 하면 가는 게 의미가 없어요. 다른 곳으로 알아봐 주세요."


갈수록 이상한 상황에 한숨만 짙어진다. 또 다른 전화가 울리고 구급대원이 다시 내게 묻는다.


"A병원인데요. 병실이 6인실과 특실이 있대요. 근데 도착하는 사이 병실이 빠지면 입원을 못 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가볼까요?"


그 잠깐 사이 병실이 사라지기야 할까. 그리고 이 상황에서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으랴.


"네. 바로 가주세요!"


20분간 집 앞에 멈춰 있던 구급차가 드디어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거칠게 움직였다. 중앙선을 넘나드는 차 안에서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다른 한 손으론 아이를 꼭 붙들고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


꽉 막힌 도로를 뚫고 15분 만에 A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응급환자를 받기 어렵다고 그렇게 튕기던 대형병원의 응급실치곤 대기실이 황량하다.

대기환자 2명에 혼잡한 응급실


대기 명단에 다른 소아환자의 이름이 보이긴 했지만 그 공간엔 별이와 나 둘 뿐이었다. 심지어 진료실 안에 누가 진료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꽤나 흐르고서야 우린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의사는 미친듯이 우는 아이의 눈, 코, 입, 귀를 잠시 살피더니, 의뢰서를 들고 별 특별한 설명 없이 무심한 한마디만 던졌다.


"가와사키병 맞는 것 같고요. 일단 특실로 입원하세요."


진짜로 그 짧은 사이에 병실이 나간 건가. 대기하면서 만만치 않은 특실 입원료를 봤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아까 전화 상으론 다인실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보세요. 아이가 콧물이 좀 있어요. 다른 환자들한테 병을 옮길 수 있어서 다인실은 안 돼요."


다인실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병의 전염을 막기 위한 이유란다.


"가와사키병은 전염성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리고 콧물은 아이가 지금 너무 울어서 일시적으로 나는 거고, 열 오르는 거 빼면 다른 증상은 거의 없어요."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 의사의 태도와 말투는 어떻게든 이 이아를 특실에 넣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띈 사람 같았다.


"거의가 아니라 아예 없어야 하는 겁니다. 아까 말씀하실 때 기침이랑 콧물도 좀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최근 5일간 기침이랑 콧물은 전혀 없었냐는 질문에 콧물도 조금 나긴 했었다는 말이 문제였나 보다. 미친듯이 우는 아이를 안고 정신없이 대답하면서도 다시 정신줄을 꽉 잡고 물었다.


"그럼 다인실에는 어떤 환자가 들어갈 수 있는 건가요?"

"거긴 아무런 증상이 없는 사람만 들어가는 거예요!"


이 무슨 황당한 소린가. 아무런 증상이 없는 사람이 병실을 이용하다니. 그리고, 난 톤의 변화를 주지 않고 계속 차분히 묻고 있는데, 이 사람은 왜 자꾸 내게 소리를 높이는 것인가.


"생각 좀 해봐야겠는데요."


일단 이렇게 말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아이가 아픈데 돈이 무슨 문제겠냐마는, 문제였다. 하루 70만원인 특실에 일주일을 머무는 선택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혹시 생각은 좀 해보셨어요?"


잠시 후 간호사가 와서 묻는다.


"글쎄요. 다인실은 아예 불가능한 건가요?"

"사실 저희가 현재 2인실이랑 6인실도 있긴 한데요. 혹시 다른 병이 있을 수도 있어서 담당 선생님께서 격리를 요청하신 것 같아요. 독감이랑 코로나 등의 검사를 해보고 별 문제없으면 다인실 사용도 가능할 수는 있는데 결과 나오기까지 두 시간 이상은 기다리셔야 하고요. 입원하셔도 아마 오늘 치료가 바로 들어가진 않을 거예요."


무뚝뚝한 의사와 달리 친절하게 다가오는 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어? 왜죠?"

"가와사키는 5일 이상 열이 지속되는 걸 확인한 후에 치료가 시작되는 게 원칙이라서요. 내일이 5일째라 가와사키병 다루시는 전문의 선생님이 다시 보시고 치료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요. 혹시 외래는 예약 안 하셨어요?"


난 의사에게서 전혀 듣지 못한 자세한 설명을 그제야 듣고 있었다.


"이 근처는 예약이 안 돼서 내일 오전에 S대 병원 예약 걸어둔 게 하나 있긴 해요."

"S대 병원 좋아요. 가와사키병이 고가의 치료제가 들어가기 때문에 대학병원 이상으로 가셔야 하는데 거기 가시면 충분히 잘 치료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제 생각엔 그쪽에서 가와사키 전문으로 하시는 선생님께 치료받으시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와사키가 보통 열흘 안에만 치료 들어가면 완치는 되거든요. 힘드시겠지만 해열제 가지고 오늘 밤만 어떻게 잘 넘겨보시겠어요?"


친절함을 넘은 진심이 내 마음에 닿았다. 결국 응급실을 나와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긴긴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서둘러 아이를 안고 S대 병원으로 달렸다.


"증상을 보니 가와사키가 거의 확실합니다. 빨리 입원하고 오늘 중에 치료 들어갑시다."


친절하고 젠틀한 담당 교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다인실에 입원했다.


7인실 자리 중 제일 안쪽 유일한 창가 자리, 넓고 쾌적했다. 한 주간 병실 신세를 생각하면 좋아할 사람이 있겠냐마는, 병실이 없어 그렇게 헤매다 온 우리 입장에서는 이곳이 천국이다. 치료받을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12시간의 치료가 시작됐다. 만 1세의 여리고 가는 팔뚝에, 그 가는 혈관을 뚫고 치료제와 해열제, 영양제 등이 들어간다. 치료제가 들어간 지 1시간쯤 지났을까. 주치의가 심각한 표정으로 달려와 상황을 전달한다.


"가와사키 쇼크 증후군이에요.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서 치료제 속도를 늦추고 혈압을 올리는 승압제를 사용할 거예요. 제가 오늘 당직이라 밤새 잘 지켜보겠습니다."


가와사키병 자체도 흔치 않은데 그중에서도 약 5% 정도가 쇼크 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주렁주렁 약물이 늘어난다. 오른쪽 팔, 왼쪽 팔, 오른쪽 다리.. 주삿바늘이 그 작은 혈관을 계속 뚫는다. 주치의가 다시 찾아왔다.


"승압제를 사용했는데도 현재 혈압이 계속 떨어져서 좀 더 강한 약을 사용해야 하는데요. 손이나 발에 잡은 혈관은 가늘기 때문에 상할 수가 있어서 목 쪽으로 중심정맥관을 잡을 거예요. 이 과정에서 아이가 움직이면 굉장히 위험해서 수면마취 후 진행할 건데요. 굉장히 민감하게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 얼마간 중환자실에서 치료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온몸에 주렁주렁 주사를 달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었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일단 병원 안에 들어온 이상 어떻게든 치료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원래는 중환자실에서 며칠 더 지켜봐야 하는데 지금 상대적으로 더 위급한 환자들이 많아서요. 정말 죄송하지만 별이는 일단 일반 병실로 올라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아침, 중환자실 면회를 갔더니 담당 선생님이 아주 미안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참 감사했다. 20개월 된 작은 아이를 두려움 속에 혼자 두느니, 밤새 끌어안고 있느라 팔에 마비가 오더라도 함께 있는 게 낫다.


쫓겨 나온 병실은 처음과 달리, 양쪽 사이에 낀 가장 좁고 불편한 자리였고, 양 옆의 아이들은 24시간 쉼 없이 울어댔다. 불평 요소를 찾자면 끝도 없는 상황. 그러나 놀랍게도 환경이 마음을 지배할 수 없었다. 아이와 함께 있다는 그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후 참 많은 과정들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치료제는 잘 들어갔고, 혈압도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았다.


퇴원하기 전날, 아내와 교대 후 병실 밖으로 나오니 복도 책장에 꽂힌 책들이 그제야 보인다. 그리고 '캐나다'라는 세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약 2주간 정지되었던 여행 준비를 보상이라도 하듯 책을 빠르게 읽었다.


병실 복도 책장


그리고 성탄절 당일, 우린 '퇴원'이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벽에는 첫째와 둘째가 준비한 또 다른 선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웃김과 감동이 만나 눈물이 난다.


모든 것이 멈췄었다.


별이가 아프기 시작한 때부터 2주간의 시간이 그냥 삭제된 것 같다. 그런데, 멈춰버린 그 시간 동안, 어떠한 환경이나 상황도 감사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장착됐다.


이것으로 여행의 가장 큰 준비는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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