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 만 원의 행복

여행 준비물 쇼핑

by 윤슬기

"빛이야, 우리 여행 가려면 준비물이 좀 필요하거든? 무엇이든 다 있다는 '다있소'에 가서 쇼핑 좀 할까?"


첫 해외여행이라 뭘 준비해야 할지 전혀 감이 없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데리고 다이소 매장에 갔다. 여행 전 쇼핑도 재미니까. 사실 나도 정신줄 빼고는 챙길 게 별로 없긴 하지만 막상 여행용품 앞에 서면 또 필요한 게 생긴다.


"빛이 너 만 원, 아빠도 만 원 내에서 고르는 거다? 시작!"


빛이와 신중하게 이것저것 비교하는 모습을 상상했으나, 따라온 두 동생들이 더 신나서 날뛰는 덕에 정신이 없다.


막내야, 혼자 어디 가니?


고삐 풀린 망아지들의 고삐를 잠시나마 붙잡아 두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줬는데, 둘째의 손에서 뚝뚝 떨어지는 끈적이는 액체를 보니 한숨만 나온다.


"빛이야, 아빠 화장실 가서 얼른 휴지 가져올 테니까 거기 떨어진 거 안 밟게 애들 좀 잘 보고 있어 봐?"


쇼핑몰 안에 있는 지점이라 화장실도 꽤나 멀다. 숨차게 달려와 바닥을 닦고 있는데 하늘이가 발을 동동 구른다.


"아빠, 쉬 마려."


둘째 손을 잡고 다시 화장실로 달리며 빛이에게 말한다.

"빛이야, 미안한데 별이 좀 잘 보고 있어 봐?"


잠시 후 매장으로 돌아오는데 빛이의 한마디가 나를 다시 화장실로 보낸다.


"아빠, 별이 똥 쌌어!"


이러다 만 원은커녕 천 원짜리 하나 고르기도 힘들겠다. 막내의 응가를 씻기고 와서 방문판매로 전략을 바꿨다.


"빛이야, 우리가 밴쿠버나 시애틀 가면, 별로 춥진 않은데 비가 좀 자주 내린다고 하거든? 우산이 필요할 거 같긴 한데 그렇다고 무겁게 짐을 늘리긴 좀 그렇잖아? 이거 엄청 가벼운데 한번 써볼래?"


빛이와 난 배낭 하나씩만 메고 가기로 했기에 무게를 최대한 줄이는 게 목표다. 수많은 우산들 가운데 가장 가벼운 100g짜리 우산을 펼쳐 빛이에게 줬다.


100g 우산


"빛이 넌 괜찮은데 아빤 머리만 겨우 가리겠다. 그리고 이건 너무 힘이 없어서 바람 불면 휴지처럼 날아갈 것 같애. 이걸로 다시 써볼래?"


이번엔 150g짜리 우산을 펼쳤다. 50g 더 나간다고 100g짜리와는 확실히 달랐다.


150g 우산


"이거다! 훨씬 튼실하네! 색깔도 맘에 들지?"

"어. 예뻐."


그렇게 우산을 하나씩 담았다. 가격은 5,000원. 둘 다 벌써 절반을 썼다.


"우리 거기 가면 수상비행기 탈 거잖아? 아빤 괜찮은데 어린이들한테는 소리가 좀 클 수도 있대. 혹시 모르니까 귀마개 하나 살래?"

"그래!"


귀마개


빛이는 귀마개에 기꺼이 1,000원을 투자했다. 그렇다고 추천상품을 다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빛이 너 이게 뭔 줄 알아? 바람 넣으면 목베개가 되는데 비행기 오래 타고 갈 때 진짜 좋아."

"아.. 저건.. 필요 없을 거 같은데?"


빛이가 계속 거부해서 그냥 내가 사기로 하며 말했다.


"너 나중에 이거 써보면 사길 잘했다고 할걸? 엄~청 편하다고 할걸?"

"어. 난 필요 없어."


목베개


그렇게 내가 목베개 2개를 사서 2,000원. 아직 몇 개 안 골랐는데 이미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날뛰던 동생들의 움직임도 조금씩 둔해진다. 그 틈에 내가 필요한 물건들을 얼른 챙겨 와 빛이에게 알려줬다.


"미국이랑 캐나다는 우리랑 전원 꼽는 게 다르게 생겼거든? 아빠 꺼 휴대폰이라도 충전하려면 이렇게 중간에 바꿔 끼우는 게 필요해. 그리고 아빠가 거기서 글이라도 쓰려면 태블릿 거치대가 필요한데 집에서 쓰는 건 엄청 무겁잖아? 그래서 가벼운 걸로 하나 가져왔어."


어댑터와 태블릿 거치대


이것으로 내가 먼저 만 원을 채웠다. 그리고 아직 고민 중인 빛이에게 또 하나의 추천템을 던져 본다.


"빛이 너 이 통 하나 살래? 숙소에 가면 보통 샴푸나 비누 같은 건 있거든? 근데 로션이 잘 없어. 요 작은 병에 너 쓸 로션 하나 정도는 챙겨야 하지 않을까?"

"근데 샴푸랑 비누랑 있는 건 아빠가 어떻게 알아?"


이 녀석이 별걸 다 의심한다.


"아빤 많이 다녀봐서 다 알지~ 그리고 아빠 머리에 쪼꼼씩 바르는 왁스 있잖아? 아빠가 외국 나가서도 약간 단정하게 다니는 게 좋겠지? 그러니까 여기 왁스 담을 쪼꼬만 통 하나는 아빠 줘."

"그래, 좋아."


로션병


"아직 3,000원 남았는데 더 살 거 없어?"

"응, 이제 없어."


여행용품 고르기


아무리 들여다봐도 더 이상은 고를 게 없나 보다. 예쁜 여권케이스나 네임태그를 권해볼까도 했으나, 굳이 아이 가방의 무게를 늘리지 않기로 했다.


"빛이야, 그럼 남은 3,000원 아빠가 써도 돼?"

"어."


빛이의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난 여권 등의 귀중품을 가지고 다닐 보조가방을 하나 골랐다. 가볍고 심플해서 아주 마음에 든다.


"와. 기가 막히네! 이렇게 좋은 가방이 3,000원이야. 이건 빛이 네가 아빠 사주는 걸로 해!"


보조가방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만 원'을 채웠다.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추억도 '만빵'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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