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네 살이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법

여행 당일 아침

by 윤슬기

사르륵사르륵.


"빛이야, 아직 안 자?"


앞으로 17일간 엄마랑 같이 못 잔다며 동생들을 제치고 엄마 옆자리를 사수한 빛이가 안 자고 계속 뒤척인다. 엄마와 동생들은 진작 곤히 잠든 시간이다. 혹시나 해서 슬쩍 불러 봤더니 역시나 대답이 돌아온다.


"어. 너무 더워. 나 베란다에 좀 나가 있을까?"

"아니."


더위를 많이 타는 둘째가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닥 불을 많이 때는 집도 아닌데,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진짜 더운 건지 여행 전날의 설렘인지 궁금해서 물었다.


"더워서 못 자는 거야, 잠이 안 오는 거야?"

"내가 그냥 안 자는 거야."


늘 그렇듯 내가 주는 보기에는 답이 없다.


나: 왜 안 자는데?

빛: 안 자고 싶으니까.


나: 그래? 그렇게 안 자다가 내일이 안 오면 어떻게 해?

빛: 그건 안 돼애~~


나: 왜?

빛: 내일이 안 오면 캐나다랑 미국을 못 가잖아!


: 여행을 잘하려면, 잠도 잘 자야 돼. 잠을 못 자서 피곤하거나 면역이 떨어지면 아파서 여행도 힘들어져. 이제 우리 여행 가면...

빛: (뽀드득)


나: 어? 뭐야, 자는 거야? 빛이..야?

빛: ......


이게 말이 되나. 무슨 잠자는 버튼을 누른 것도 아니고. 느낌상 내가 마지막 말을 시작하기 전에 잠든 것 같다. '뽀드득뽀드득' 이를 갈며 이미 치열한 꿈나라 여행 중이다. 아까 베란다에 나간다는 건 더워서가 아니라 잠들지 않겠다는 마지막 발악이었던 걸로.




일찍 일어나 빠르게 밥을 안치고 어젯밤 빛이와의 대화를 잊기 전에 얼른 기록하는 아침, 제일 늦게 잠든 빛이가 제일 먼저 일어나 눈을 비비며 나온다.


"유치원 가야 하는 하늘이는 안 일어나고, 빛이가 먼저 일어났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드디어 오늘! 우리 언제 가?"


이 아이는 내 말을 들은 것인가. 신기한 건 분명 엄청 졸린 눈인데 눈동자에 생기가 돈다는 점이다.




잠시 후 둘째 하늘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고, 여행 전 마지막 유치원 등원길에 나섰다.


나: 하늘아, 오늘 아빠랑 언니랑 여행 가잖아? 하늘이가 평소처럼 5시에 하원하면 이미 출발해서 아빠랑 언니를 볼 수가 없거든?

하늘: 왜 저녁때 간다고 했는데 그렇게 일찍 가?


나: 아, 비행기는 저녁에 타는데 공항까지 가는 시간도 있고, 미리 가서 준비해야 하거든. 오늘 조금 일찍 3시 10분 하원시간에 나오면 아빠랑 언니랑 인사하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할래?

하늘: 아니, 오늘은 5시 30분에 데리러 와.


나: 원래 5시에 가는데 5시 30분? 그런 하원시간은 없어. 그럼 유치원에 연락해서 너만 따로 그 시간에 나와야 하는데?

하늘: 그때 가는 친구도 있어. 괜찮아.


나: 근데 5시 30분엔 아빠가 가고 없어. 엄마가 데리러 와야 하는데 그것도 괜찮아?

하늘: 어.


나: 아빠랑 언니랑 너 안 보고 그냥 여행 가도 돼?

하늘: 어. 5시 30분에 와.


잠시 동안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만 4세 아이만의 방법인 건가. 하늘인 그렇게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뒤돌아 보는 마지막 눈이 참 쓸쓸했다. 그럼에도 3시 10분에 데려와 마지막 인사를 할 수도 있지만, 이별이 감당하기 힘들어 나름의 방법을 택한 어린아이를 억지로 끌어내 인사를 시키는 것도 참 잔인하다.


고민 끝에 결국 아이의 선택과 그 마음 그대로를 존중하기로 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들어갈 때 안아주기라도 할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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