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아빠의 짐 싸는 법

여행 짐 꾸리기

by 윤슬기

빛이와 손잡고 걸어가는 아침 등굣길.


"빛이야, 너 오늘만 학교 다녀오면 이제 진짜 내일이야! 이따 다녀와서 오늘은 짐 싸자."

"내일 오후에 가니까 아침에 싸면 안 돼?"


이것도 유전인가. 나 혼자라면 당연히 그랬을 거다. 들킨 것 같은 마음을 혼자 부여잡고 교육 상 AI처럼 모범답안을 읊어 본다.


"급하게 챙기면 빠뜨리는 게 생길 수도 있어서 짐은 항상 미리미리 준비하는 거야."


누구나 여행 갈 때 짐을 싸는 나름의 방법이 있겠으나, 난 기본적으로 가방이 몸무게의 10%를 넘기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자신의 예쁜 사진을 남기는 것에 중점을 두는 사람은 다양한 옷을 챙길 것이고, 이것저것 혹시 모를 필요의 물건들을 챙기는 사람은 보험과 같이 거기서 안정을 느낄 것이다. 각자 그렇게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선순위에 따라 짐을 싼다.


그런 면에서 내가 추구하는 여행은 편안하고 간편하면서도 역동적인 여행이다. 아내와 세계여행을 다닐 때도 배낭의 무게는 각각 7kg, 5kg을 넘기지 않았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위탁수하물도 만들지 않는다. 빛이에게도 말했다.


"짐은 꼭 필요한 것만 챙겨서 가볍게 쌀 거야. 여행 가는데 무거운 가방 메고 다니면 힘들겠지? 가고 싶은 곳이 많은데 짐이 많으면 어떻겠어? 너 타고 싶은 놀이기구 타러 가는데 가방이 무거우면 막 힘들다고 투덜대면서 안 간다고 할 수도 있잖아?"


빛이가 한참 듣다가 말을 끊는다.


"그럼 여행이 하나도 즐겁지가 않겠지?"


잔소리 그만하란 뜻이다.


"와. 넌 그걸 어떻게 벌써 알아?"


라는 말과 함께 정신 차리고 입을 닫았다.




며칠 전 다이소에 여행용품 쇼핑 갔을 때 빛이가 물었었다.


"아빠, 여긴 자물쇠가 왜 이렇게 많아?"

"여행 갔을 때 누가 뭐 훔쳐갈까 봐 가방에 채워두는 건데, 우리 가방엔 훔쳐갈 게 없어서 필요 없어."


여행용품 코너_자물쇠


빛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빛이 여기 체중계 위에 한번 올라와 볼래? 이제 우리 짐 쌀 건데 아빠는 몸무게가 70kg 나가니까 몸을 열 개로 나눴을 때 하나 정도만 들 수 있게 7kg을 넘기지 않을 거야. 빛이는 지금 24kg 나오니까 2.4kg 내로 맞춰보자."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제로 빛이의 짐을 내가 들게 되는 경우까지 생각해서 내 짐은 4.6kg 이하로 맞출 생각이다. 빛이가 묻는다.


"나는 뭐 가져오면 되는데?"

"일단 너 입고 갈 옷 말고 여벌옷이랑 양말, 속옷 두 벌씩 더 챙겨. 아빠도 아빠 짐 가지고 올게."


빛이와 내가 각자 짐을 챙겨 나오기까지는 불과 2분이 걸리지 않았다. 쏜살같이 옷을 챙겨 동시에 나오는 아빠와 딸을 본 아내가 깔깔대며 한마디 한다.


"누구 딸 맞네. 진짜 부전여전이야."


우선 내 짐을 다 모았다. 긴바지, 반바지, 긴팔, 반팔, 장갑, 속옷, 양말, 스포츠 타월, 태블릿, 거치대, 키보드, 마우스, 충전기, 어댑터, 보조배터리, 전기면도기, 로션, 칫솔, 치실, 우산, 가이드북(일부) 정도다.


아빠의 여행 짐


가방에 다 넣어 무게를 쟀다.


아빠 가방 무게


4.2kg. 딱 좋다. 다음은 빛이 짐이다. 여벌옷과 칫솔, 치약, 우산, 그리고 심심함을 덜어줄 트럼프 카드와 큐브, 일기를 적을 노트와 볼펜까지, 나름 야무지게 챙겼다.


빛이의 여행 짐


과연 무게는?


빛이 가방 무게


2.3kg. 됐다. 여행 준비 끝!




"빛이야, 빛이 여행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돈을 보내주신 분들이 계시거든? 너 이거 진짜 감사한 일이야. 그래서 아빠가 짐 쌀 때 햇반이나 컵라면 같은 건 안 챙겨 가려고."

"어차피 컵라면 매워서 못 먹거든요?!"


아빠와 딸의 여행가방


내 가방이 빛이 가방보다 작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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