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곁에 있으면 귀한 줄 모른다.

밴쿠버에 왜 왔냐고?

by 윤슬기

난생처음 이륙을 경험하는 빛이는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신났다.


활주로까지 천천히 가던 비행기가 갑자기 굉음과 함께 속도를 올리는 상황에 입이 벌어졌고, 떠오르는 순간 그 큰 눈이 더 커졌다. 세상이 작아지는 신기한 광경에 놀라고, 반짝이는 야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 맞이하는 이륙


"빛이야, 지금 느낌이 어때?"

"너어~무 재밌어!"


비행기가 떠오를수록 빛이의 마음도 붕붕 뜬다. 그 들뜬 마음에 잠시 찬물을 끼얹은 건 기내식이었다.


"아빠, 기내식 맛있다며!"


비빔밥과 폭찹스테이크 중 선택이어서 하나씩 시켰는데 둘 다 매워서 못 먹겠다고 한다. 비빔밥이야 예상했지만 폭찹도 소스에 섞인 후추 때문인지 혀를 내밀며 포기했다. 그나마 빛이가 공항에서 돈가스와 우동이라도 잘 먹고 타서 다행이다. 기내식 하나로 부족했는데 둘 다 먹을 수 있어 나도 다행이다.


나 혼자 맛있게 먹은 기내식


"아빠, 구름 모양이 계속 바뀌어!"


내 무릎을 베고 잠들었던 빛이가 깼다. 밤 비행기라 태평양을 지나는 동안 캄캄한 창문만 보다가 어느새 밝아진 하늘을 보며 다시 짜릿함을 맛봤다. 한편 내 다리는 찌릿찌릿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


두 번째 기내식이 나왔다. 라구파스타와 불고기덮밥. 이번에도 실패다. 파스타 소스가 살짝 매웠고, 불고기도 아이가 씹기에는 조금 질긴 감이 있었다. 또 나만 잘 먹었다.


두 번째 기내식


다행히 3,000원을 주고 따로 주문한 '카나페'가 완전 성공이다. 그것으로 빛이도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고맙다 카나페야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기대된다. 땅이 점점 가까워진다. 기체가 바닥에 닿을 때 빛이가 놀랄까 봐 미리 말했다.


"빛이야, 잘 봐? 이제 곧 '쿵!' 하고 내려간다?!"


충격을 예고한 것이 참 무색하게, 기장님은 역대급으로 부드러운 착륙 묘기를 보여 주셨다.


'와, 이 작은 아이가 벌써 이만큼 커서 나와 10시간이나 함께 비행을 하다니."


장시간 비행에 몸은 찌뿌둥했지만, 별 무리 없이 아이와 그 땅에 안전하게 내렸다는 사실에 감사가 밀려왔다.


밴쿠버 시내




출입국장으로 가는 길에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한 건 다름 아닌 '해파리'였다. 줄이 길어지기 전에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지만, 춤추는 해파리들이 빛이의 발목을 잡았다.


아쿠아리움 광고 잘하네


잠시 아쿠아리움을 즐기고 다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했던 입국장의 그림과 달리 수십 대의 셀프입국수속 기계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여권을 스캔하고 몇 가지 질문에 체크를 하니 긴 종이가 한 장 인쇄되어 나왔다. 입국심사대에서 줄을 서 차례로 심사를 받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나처럼 셀프로 심사를 마친 사람들은 나가면서 앞에 서 있는 심사관에게 그 종이 한 장만 전달하면 되는 간편한 시스템이었다.


입국심사대_셀프로 심사를 마친 사람들은 따로 빠져나간다.


다들 종이를 내며 밖으로 나가는데 우리만 잡혔다. 심사관이 묻는다.


"엄마는 어디 있죠?"

"한국에요."


"캐나다에 온 목적이 뭔가요?"

"관광이요."


"그런데 아이 엄마는 어디 있죠?"


(한국에 있다고 했잖아.) 심사관은 친절하게 자꾸 아이 엄마를 찾았다. 난 캐나다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현지인에게 가족소개를 했다.


"사실 딸이 셋 있어요. 이 아이가 첫째고, 둘째와 셋째는 엄마와 함께 한국에 있어요."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하기에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더니,


"그런데 왜 나머지 가족들은 안 데리고 왔나요?"

"셋째가 이제 겨우 20개월 됐어요. 장시간 비행기를 탈 수 없어요."


심사관은 이해한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또 질문을 잇는다.


"캐나다에 다른 가족들이나 친구가 있나요?"

"No."


보통 입국심사받을 때 그 나라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눌러앉을 가능성 때문에 심사가 까다로워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난 반사적으로 '노'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게 문제였다. 심사관의 눈이 커지더니 아주 의아하다는 듯이 묻는다.


"No?? 그럼 도대체 밴쿠버에는 왜 온 거예요?"


(이것도 아까 얘기했잖아. 관광이라고.) 심사관의 놀란 표정과 태도와 말투로 봤을 때, 딸과 단둘이 여행을 오면서 왜 하필 굳이 밴쿠버에 왔냐는 뜻이었다. 어딜 가나 내 주변엔 별로 볼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게 인간의 습성인가 보다. 곁에 있으면 귀한 줄 모른다. 그런 그에게 '엄지척'을 날리며 대답했다.


"모두가 추천하던데요? 밴쿠버가 최고라고."


그제야 그가 크게 웃음을 짓는다. 좋은 여행하라 인사하며 손짓한다. 그렇게 심사관 만족시키기 테스트 통과.



곰이 재주 부리는 걸 봤다는 듯, 그 어느 때보다 눈이 휘둥그레진 빛이가 나가며 말한다.


"우와아아아. 아빠아! 말이 통한다아?!"



넌 지금까지 아빠를 뭘로 본 거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