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 이하 여직원만 입는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입사 확정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00 저축은행 인턴 최종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기뻐야 했는데, 마음 한편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그건 아마 ‘저축은행’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좋은 학교를 나왔고, 내심 대기업을 꿈꿨다.
친구들은 카드사, 대형 증권사, 외국계 기업에 들어갔다.
반면 나는, 그 저축은행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지 않은 곳에 입사하게 되었다.
검색창에 조심스레 검색해 봤다.
“00 저축은행 연봉”
“00 저축은행 망함”
“저축은행 전망”
기대보다는 의심이 앞섰다.
내가 이 회사를 다닌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거기… 뭐 하는 데야?’라는 반응이 떠올라서 더 불안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저축은행이 뭘 하는 곳인지 명확히 몰랐다.
“은행이긴 한데, 은행은 아닌 곳.”
“대출은 많이 해주는데, 적금은 잘 안 드는 곳.”
“사람들이 잘 안 찾지만, 한 번 엮이면 못 빠져나오는 곳.”
이상하게 다들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처음 배정된 부서는 더더욱 낯설었다.
콜센터와 기업금융 사이 어딘가에 있는 어중간한 팀.
이름도 생소하고, 구조도 복잡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누구랑 일하게 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입사 전날, 노트북을 켜고 텅 빈 메모장에 적어봤다.
• “나는 왜 여기 들어가게 되었을까.”
• “여기서 뭘 배우게 될까.”
• “혹시 탈출은 가능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했던 건
여기가 ‘나를 받아준 유일한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은 자존심을 상하게도 했고,
동시에 스스로를 다잡게 만들기도 했다.
“일단 해보자.
그리고 만약 정말 아닌 것 같으면…
그땐, 다시 시작하지 뭐.”
나는 그렇게 입사 하루 전,
정장치마의 주름을 펴며 마음을 다잡았다.
누가 뭐래도, 내가 직접 들어가는 첫 사회니까.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알게 되었다.
이 회사는 유니폼을 입는다.
심지어 나는 후선(내근) 부서였다.
“유니폼이요? 저도요?”
묻는 순간,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대리 이하 여직원은 다 입어요. 괜찮으시죠?”
괜찮지 않았다.
왜 남자 직원은 정장을 입고, 나만 유니폼인지.
왜 사전에 그런 말 한마디 없었는지..
유니폼을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나는 이미 누군가와 구분된 사람처럼 느껴졌다.
복도에서 유니폼을 입은 나와
셔츠 차림의 남자 신입이 마주쳤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날 오후, 거울 앞에서 유니폼을 벗으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첫날부터 이럴 일인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