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신뢰가 쌓여, 결국 내 이름이 회의실에 오르기까지
인턴으로 들어온 지 다섯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동안 나는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왔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주지 않더라도
주어진 업무를 정확히, 빠뜨리지 않고 끝내는 데 집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부에서 신용평가모형을 자체적으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보통이라면 인턴이 들어갈 일이 아니었지만,
데이터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내 이름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서포트’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회의에 몇 번 참여하면서
내가 가진 통계적인 이해, 엑셀이나 SAS 같은 툴 활용력,
그리고 생각보다 정돈된 말투가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AUC 기준으로 비교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요?”
“변수 간 다중공선성 체크는 한 번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누가 시킨 건 아니었다.
그냥 그동안 공부했던 것들이
내 입 밖으로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리고 어느 날,
팀장님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 회의에 같이 들어가 볼래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건 나에게 있어
‘정규직’도 아니고 ‘인턴’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었다.
그날 회의실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의견을 손으로 정리해 들고 들어갔다.
대표님과 부사장님이 계셨고,
나는 작고 조용한 목소리로
내가 만든 자료와 해석을 설명했다.
회의가 끝난 후,
누군가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잘했어요. 딱 맡긴 만큼, 아니 그 이상이었어요.”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처음으로 내가 ‘기특하다’는 말을 들은 날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회사 내부에서 내 이름이 조금씩 불리기 시작했다.
“이건 그 친구가 보면 잘 정리돼요”
“데이터 관련은 인턴한테 한 번 확인해 봐요”
이런 식의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정규직 전환 논의 대상이 되었다.
대표님, 부사장님과의 면접이 다시 잡혔고,
이번에는 ‘기특한 인턴’이 아니라
‘우리 팀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검토받는 자리였다.
그날 밤, 나는 회사 근처 국밥집이 아닌
조금 낯선 카페에 들어가
조용히 노트를 꺼냈다.
페이지 한가운데
이렇게 적었다.
“이제 누군가의 팀원이 될 준비가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