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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찰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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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urnuri Mar 17. 2016

해인사

海印寺

참 인연이 닿지 않는 절집이 해인사 인 거 같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몇 손가락에 꼽을 만큼 유명한 사찰이기에 더욱더 찾아보고 싶었던 해인사를 찾을 기회가 없었다. 결국 억지로 대구 출장길에 무리를 해서 다녀간 해인사는 궂은 겨울 날씨 덕분에 완전히 설국 이였다. 그때는 그 모습 그대로 환상적인 느낌의 해인사 경내가 참 좋았다. 이런 기억 때문에 아주 환상적인 느낌으로 기억되던 해인사를 다시 찾을 기회가 생겨서 정말 많이 기대하고 새벽녘부터 해인사를 찾았다. 그리고 역시! 해인사는 해인사구나 하는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해인사 대웅전

해인사는 신라시대 화엄 10찰의 하나로 창건된 대가람이다. 정확히는 신라 40대 임금 애장왕 3년 서기 802년 화엄종의 초조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 화상과 그의 제자 이정 화상에 의해 지금의 극락보전 자리에 창건하였다. 이후 천년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위대한 유산 팔만대장경을 조선 태조 2년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이전하여 봉안하게 되어 오늘날 법보사찰이 되었다.

해인사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남도 합천군에 속한다. 그래서 흔히 합천 해인사로 불려지고 있다. 누구나 합천이라는 지명과 함께 해인사를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해인사를 가보면 합천보다는 고령군에서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고령에서 합천 해인사까지는 거의 매시간 버스가 오가고 있으며 고령에서 출발한 버스가 가야를 거쳐 국립공원의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산속 한가운데 조성된 관광단지 상가 앞에 정차한다. 여기서부터 산길을 걷다 보면 해인사 해탈문 앞에 다가서고 이 해탈문을 통과하면 그때부터 해인사 경내가 펼쳐진다.

해인사 장경각

절집을 다닐 때마다 그 자리 잡은 위치를 관심 있게 보게 되는데 해인사는 가야산 깊숙한 산자락에 푹 안겨 있는 듯한 형국이다. 그건 아마도 처음 해인사를 찾았을 때 만든 눈 천지의 산사가 뇌리에 각인되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가야산 국립공원 울창한 숲 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해인사의 위치 또한 첫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반인들에게 해인사 하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단어가 팔만대장경이다.

해인사 장경각

고려시대 만들어진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정신문화유산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귀중한 문화재가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특히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고인 국보 제52호 장경판전은 그 자체로 귀중한 건축문화재로 임진왜란과 6.25의 전쟁도 피해간 신비스럽기까지 한 목조건축물이다. 얼핏 보기에는 참 볼품없는 창고 같지만 조용히 구석구석 둘러보다 보면 정말 오묘한 매력이 풍기는 건물이다.

해인사 장경각

해인사 중수기에 의하면 조선 세조 왕의 비인 정희왕후가 1481년 뜻을 두어 중수 공사를 기획하다가 돌아가셨으며 이후 인수, 인혜 대비가 학조 스님으로 하여금 감독케 하여 성종 19년 1488년에 경판고 30칸을 다시 짓었다 한다. 지금의 수다라장은 1622년에 상량한 기록과 법보전은 1624년 상량한 기록으로 보아 이때에 두 건물이 다시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인사 대웅전

해인 사하면 우리가 기억하는 스님이 한분 있다. 조계종의 6대와 7대 종정을 지내고 1993년 자신이 출가한 해인사 퇴설당에서 입적한 성철스님이다. 우리나라 현대 불교의 큰 어른으로 불교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큰 스님으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간 큰 어른으로 그의 사리가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다. [ 해인사 웹 버전 사진 더 보기 ]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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