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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urnuri Apr 03. 2016

왕궁리유적

王宮里遺蹟

익산 미륵사지 인근에는 고대 백제왕국의 여러 유적들이 남아있다. 특히 1998년 사적 제408호로 지정된 왕궁리 유적은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곳으로 익산 미륵사지와 더불어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이다. 왕궁리 유적은 백제 무왕 639년에 세워진 제석 정사터를 비롯하여 다양한 왕궁 유적이 발굴되고 있어 백제의 왕도였다는 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곳이다. 최소한 백제왕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시설들이 모여 있었던 곳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는 익산시내에서 고속도로 진입로까지 가는 지방도변에 위치하고 있다. 신중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 등 문헌에 옛날 궁궐터 및 무왕이 별도로 세운 곳이라 기록되어진 왕궁리에는 국보 제289호로 지정된 왕궁리 오 층 석탑이 남아있다. 1965년 해제 수리 과정에서 고려시대 사리 장구가 발견되고 고려시대까지 유행하던 백제계 석탑 양식에 신라탑의 형식이 석여 있는 고려 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현재 덩그러니 오 층 석탑 하나만 남겨져 있는 고대왕국 백제의 왕궁리 유적을 산책하다 보면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모든 역사가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방식으로 던 백제 무왕과 관련이 있는 왕궁리 유적은 이제는 그 흔적 조차 희미해져 잊혀졌고 그 기억의 끝자락을 잡고 과거사를 뒤집어 보려 애쓰는 몇몇 학자들에게만 큰 의미로 다가오는 곳이 되어 버렸다.

백제의 역사는 이제 우리 땅에 남긴 흔적보다 바다 건너 일본의 고대왕국에 남긴 흔적이 더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혹자는 백제를 연구하려면 일본의 고대 문헌과 고대 유적을 연구하는 것이 더 낮다고 애 기하기도 한다. 백제가 일본의 고대왕국 왜 나라에 어떤 존재였는지는 백제 패망 후 달려온 왜군들과 나당연합군이 백강에서 큰 전투를 치렸다는 것만 보아도 짐작하고 남는다.

시간에 쫓기어 해질 무렵 왕궁리에 도착하니 서쪽에 걸린 해가 혼자 외롭게 서있는 오 층 석탑의 그림자를 더욱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천 년 전 이곳은 어떤 곳 이였을까? 그리고 천년 전 백제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천 년 전 삼한 땅에서 찬란하게 꽃 피웠던 고대왕국 백제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역사의 일부분 이기에 정말 궁금해진다.   [ 왕궁리유적 웹 버전 사진 더 보기 ]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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