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0~12일 군산에서 영광까지
군산시외버스터미널~군산공항(수라갯벌)~새만금방조제~부안군 변산면 고사포해수욕장 72km
마침내 네 명이 다시 모였다.
4월 중순 탈핵 벗들이 내 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 자전거순례 의견이 나왔고 그때 나는 자전거도 없었다.
하느리듀(하늘색with you)가 내게 와 연습을 할 즈음인 오월 중순, 대전에서 광목을 끊어 앞치마를 30벌 맞추었다.
하느리듀가 가고 초록 자전거를 마련해서 시승식을 하고 매일 연습을 할 즈음인 오월 말, 앞치마가 완성되었다.
오월 마지막 날부터 유월 첫날, 이틀간 원도심레츠에서 왜가리와 소나무가 그림 작업을, 바우솔이 글씨 작업을 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몸자보 앞치마가 완성되었다. 청주와 대전으로 분배하고 내 몫으로 남은 앞치마는 8장.
그 앞치마를 입은 네 명이 동서남북에서 와서 군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약속 시각인 오후 한 시 전에 만났다.
앞면은 각자 개성대로
-빛e로 바람e로 살자! 핵석탄e는 No
-泣江海(강과 바다가 운다)
-어쩔 수 없이 그린 Green
-초록별 안녕
뒷면은 공통으로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우리 마음을 담은 몸자보 앞치마를 입고 각자 다른 자전거와 헬멧의 우리는 군산 빈해원 짬뽕과 짜장면을 먹고 두 시 전에 길을 나섰다. 어린 시절 이후 처음으로 해 보는 도로주행이라 바짝 긴장이 되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수라갯벌.
마침 복간한 녹색평론 182호 <전쟁의 생태적 비용>(배보람, p. 90~91.)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상략) 그러나 전쟁은 전투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파괴 역시 격전지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것이 과학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로서 전쟁이 작동하는 방식에 기인한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모기로 비유되며 섬멸의 대상으로 다뤄졌다. 이들의 머리 위로는 베트남전쟁과 달리 ’그냥 원자폭탄‘이 떨어졌지만. 해충이자 적인 일본인과 그들의 생태계인 도시의 박멸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베트남전쟁의 전략과 유사하다. 해충으로서의 적, 벌레가 된 인간은 전쟁의 폭력성을 감추고 비인도적 무기의 사용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해충이 아닌 집단과 해충이 된 집단이 명확히 구분되자, 해충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 혹은 이들을 소탕하기 위한 파괴도 묵인되거나 방치된다. 따라서 이 폭력은 무장한 군인만이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 혹은 생태계로도 확대한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자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의 서식지인 새만금의 수라갯벌이 미군의 활주로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공항 건설 예정지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안보를 이유로 멸종위기종의 서식처로서의 가치가 군사시설로 편입되어 파괴된다.’(필자 밑줄)
군산터미널에서 16여 km, 군산공항 옆 수라마을로 들어섰다.
‘군산시 소음피해 복지회관’ 건물이 있었다. 군산공항으로 인한 소음피해 보상으로 지어준 건물인지 소음피해 대책마련을 위해 건립한 건물인지 궁금했다.
공항 옆 수라갯벌로 들어가 보았다. 마른땅에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공항 옆에 또 공항이라니. 제주 제2공항 부지로 선정되었던 ‘대정’이 중국의 심사를 건드릴 수 있어서 ‘성산’으로 한다더니, 중국 코 앞에 위치한 군산에 군사공항이라니 무슨 외교 논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활주로로 매립될 땅의 식물들의 무참한 말로는 어쩌란 말인가.
새만금 생태 정보 창고 “갯벌과 버드나무”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새만금 수라갯벌은 현재 남아있는 원형지의 지형은 가로 2,5km 세로 약 6km의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북쪽은 육상태양광부지로 재생에너지단지로 임대되어 있는 상태이다.
수라갯벌은 멸종위기 1급인 흰죽지수리와 멸종위기 2급 흰죽지수리, 물수리, 큰기러기, 잿빛개구리 등 다양한 겨울 철새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특히 맹금류들의 서식 밀도가 높다.
이것은 넓은 초원과 갯벌 그리고 주변에 산과 농경지 등이 함께 분포하기 때문이다.
현재 신공항 부지로 예정되어 있기는 하나, 새만금 만경수역의 유일한 원형지로 새만금의 중요한 생태계를 유지해 줄 수 있는 곳이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멸종위기종들과 많은 다양한 겨울 철새들이 찾아오며 잠자리터로 이용되고 있으며, 봄과 가을철에는 다양한 도요새들이 찾아오고 있다.
현재 이곳을 지키기 위해 1300여 명의 소송인들이 수라갯벌 보존운동을 위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 외에도 저어새 서식지라는, 풀이 무성하고 황량하게 마른 갯벌에서 우리는 기자회견문을 읽었다.
-지역균형발전과 민간국제공항으로 위장된 미군의 전쟁 활주로 필요없다!
-민중의 피와 땀을 소수 토건자본에 갖다바치는 세금착취 어림없다!
-기후붕괴와 대절멸을 가속하는 생태학살 새만금신공항 취소하라!
-새만금신공항 취소하고, 수라갯벌 보존하라!
수라갯벌에서 새만금방조제까지 가는 길은 15여 km로 다소 멀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변산반도까지는 30여 km로 정말 멀었다. 그 길이가 길다는 건 매립지가 그만큼 넓다는 것과 상통한다.
전북투어패스 지도에 보면 군산에서 출발하는 제4방조제 옆은 산업연구용지와 환경생태용지, 야미도에서 고군산군도 구간은 제3방조제, 제2방조제 옆은 국제협력용지로 아리울예술창고와 신에너지단지가 있고, 부안으로 이어지는 제1방조제 옆은 관광레저용지로 되어 있다. 3~4방조제와 1~2방조제 옆은 조류서식지로 되어있다. 멀쩡한 갯벌 메워 사람을 위한 용지를 마련해 놓고 조류서식지로 표기하다니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길고 긴 방조제 어디쯤에서 구름 사이 일몰을 보았다. 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빌었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 위에서 바라는 소원이란 얼마나 부질없을까만은 지는 해를 보는 순간 자동으로 행해지는 습관이었다. 그건 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변산반도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했고 7.4km를 더 가 밤 9시 반이 돼서야 변산 고사포해수욕장에 있는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시에 짬짜면 한 그릇 이후 저녁 식사도 못 했다. 배달음식을 시켜야 했는데 영업하는 곳은 치킨집뿐이었다. 이번 순례의 유일한 후원자의 후원금으로 치킨을 시켰다.
9시간 만에 끼니를 챙기며 순례 나눔을 했다. 기억해 보면 함께해서 기쁘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 고사리(자연)의 말을 듣는다, 수라갯벌을 지켜야겠다와 즐겁다 등이었다.
몹시 피곤한데 야식까지 해서 숙면할 수 없는 밤이었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고사포해수욕장~모항갯벌해수욕장~왕포~진서면 곰소항~줄포만갯벌생태공원~고창군 흥덕면 신덕리 순복음신목교회~흥덕면 대촌/고창군 흥덕면 만정 김소희 생가~람사르 고창 갯벌~심원면 바람공원~상하면 구시포해수욕장 총 86.1km
이른 아침에 오르막 내리막길을 14km쯤 달려 금강산밤뎜에서 식사를 했다. 2년 전 왔을 때 매우 만족스러워 다시 찾은 식당이다. 그때 사람을 참 잘 따랐던 강아지를 식사 후에 찾았더니 차에 치어 죽고 말았단다. 훗날을 기약함은 이리 어려운 일인가.
식사 후 3km를 가서 모항 가족호텔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까지도 후원금으로 마실 수 있어서 감사했다. 테이크아웃은 종이컵에 주는데 친구가 부탁하여 스테인리스 컵에 냉커피를 받아 나왔다. 테이크아웃이라도 확실히 돌려주기만 한다면 굳이 종이컵을 쓸 필요가 없다. 그건 판매자와 손님간에 신뢰가 형성되어야만 가능하다. 벗이 바리스타에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묻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일반 시민도 아는 상식을 일본과 국제사회는 왜 모를까?
모항에서 조금 더 가면 왕포란 곳이 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항구인데 내가 멈추길 희망했다. 곽재구의 <포구기행> 중 변산반도 국립공원 왕포 <개펄이 만든 지평선이 보이네> 때문이었다. 왕포마을 버스정류장에 앉아 책의 193~201쪽을 읽어주었다. 오직 낭독을 위해 녹색평론을 제치고 배낭에 넣어온 무거운 책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곰소항의 양어장과 염전을 거쳐 가며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면 소금과 생선은 어떻게 먹나 걱정되었다. 이미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소금 사재기와 수산물 안 먹기하는 이들을 보아왔다.
줄포만갯벌생태공원을 지나 흥덕면으로 달리는 길이었다. 선두에서 길 안내를 하며 달리는 벗과 그 뒤를 따라가는 나, 그다음으로 오는 둘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문자가 왔다. 뒤처지는 벗과 함께 있는 친구였다.
선두 두 명이 목우마을 언덕의 한 교회에 머물렀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휴대폰 충전기와 물과 참외를 제공해 주셨다. 순례길에 만나는 천사들이었다. 한참 후 후발 두 명이 도착했다. 우리 중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친구가 곁에 있기 때문이다.
흥덕면 대촌 공판장 마을에서 탈핵활동가 윤종호 씨를 만났다. 그의 트럭을 타고 흥덕면으로 가 그가 사주는 냉면을 먹으며 운동의 방향성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김소희 생가로 가서 출발했다. 이때는 셋이었다. 지친 한 명은 트럭을 타고 미리 바람공원에 가 있기로 했다. 셋이 21km를 달려야 했다.
람사르 고창 갯벌을 지나는데 태양광발전시설을 지나니 짙은 뻘밭에 연붉은 염생식물과 초록풀과 하늘색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정경이 펼쳐졌다. 몸은 자전거에 올랐지만, 고개는 오른쪽 갯벌을 바라보는 상태로 달렸다. 얼마를 달렸을까. 거의 끝부분에 다다라 사진을 찍으려고 자전거를 멈췄을 때였다.
“별-!”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자전거에서 내리지 못하고 내처 달렸다. 왜냐면 우리를 기다리는 한 명이 바람공원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기다림을 줄여주려면 사진 찍는 몇 분도 아껴야 했다.
곧이어 람사르 갯벌은 끝났다. 그 먼 길을 황홀하게 달렸으면서도 나는 사진 한 장을 찍지 못했다. 무척 속상하고 아쉬웠다. 페달을 밟는 힘이 빠졌다. 사진을 몇 년 찍지 않았지만 알고 있다. 그 순간을 놓치면 다시 찍을 수 없다는 걸. 다시 온다 해도 그날 그때 그 장면은 아닐 것임을 안다.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고 빛의 세기와 양도 다르기 때문이다.
낙심하던 그때 떠오르는 영화 대사가 있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영화에서였다.
라이프지(LIFE誌)에서 근속한 월터 미티와 라이프지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 숀. 월터는 없어진 필름의 행방을 숀이 알고 있을까 하여 그를 추적한다. 하지만 사진작가이면서 모험가인 숀을 찾기는 쉽지 않다. 월터는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를 거쳐 아프가니스탄 히말라야에서 숀을 만나게 된다. 월터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모험가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마침 숀의 사진기에 그가 사진 찍고 싶었던 아름다운 눈표범이 잡힌다. 하지만 숀은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그리고는 말한다.
‘어떤 때는 사진을 찍지 않아.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나는 머물고 싶어서가 아니라 찍고 싶었지만 찍지 못했다. 기다릴 벗을 위해서. 그 풍경은 지금 그림으로도 그릴 수 없다. 다만 매우 환상적인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다정하게 산책하고 싶다는 간절함만은 생생하다. 단체행동이 아니었다면 그때 나는 자전거에서 내렸을 것이기에. 달리는 현재를 즐기면서도 호젓한 미지를 꿈꾸었다. 어쩌면 사진 한 장 남지 않았기에 그날의 풍경은 각막을 뚫고 들어와 뇌와 가슴에 깊이 박혔을 것이다.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생명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새만금도 예전에는 줄포만처럼 그랬을 것이다. 아름다운 생태는 지켜야 한다.
그렇게 달려 바람공원에서 기다리던 벗을 만났다. 사진을 못 찍은 나는 한동안 기력을 되찾지 못했지만 이어 14km를 내달려 구시포해수욕장으로 갔다. 이미 발그레한 노을 사이로 해가 곧장 바다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막 문을 닫으려하는 횟집에서 벗이 좋아하는 회를 사도록 했다. 그리고 우리 넷은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다. 내 가방에 있던 탈핵신문과 벗의 우의가 돗자리 대신이 되었다.
2021년 2월에 왔던 모항. 그리고 이틀 후인 설날에 왔던 구시포. 그때는 사무치게 외로워서 지는 해를 등지고 부리나케 되돌아 달렸던 바다. 그다음에도 혼자 가서는 후다닥 돌아왔던 그 바다에 2년 후 친구들과 있었다. 인생사, 이렇게 한치 두 해 앞을 내다볼 수 없다니. 우리는 동그랗고 붉게 지는 해를 보며 건배했다.
나는 다시 책을 꺼내 곽재구의 <포구기행>의 전북 고창군 상하면 구시포 <천천히, 파도를 밟으며, 아주 천천히……>를 읽었다. 그리고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와 팬텀싱어의 <IL Canto>를 들었다.
암흑이 내리고 예전엔 해당화가 피었다던 쫀쫀한 모래밭을 걸었다. 관광객의 폭죽은 하늘로 다가가지 못한 채 땅으로 흩어져 내리고 내 발자국은 모래에 새겨지지 못하고 새겨져도 금세 사라질 터였다.
그때 저 멀리 영광한빛핵발전소로부터 송전하는 탑에서 붉은 불빛의 번쩍임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해변 10km 반경 내에 핵발전소가 있었다. 낭만은 방사능에 사라진다. 그 바다에서 잡았을, 온배수에서 자라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생선회를 먹었음을 자각하게 되니까. 그래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전 세계 바다를 방사성 물질로 다 망칠 수는 없으니까. 신선한 수산물을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바다생물 자체의 생명과 건강을 위하여.
숙소까지 1.6km를 자전거를 끌고 걸었다. 음주운행 금지 철칙에 따라.
심야에 몹시 피곤한 중에도 탈핵신문을 읽었다. 각자 관심 가는 기사를 읽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눈을 감자마자 다음 날 아침을 맞았다.
구시포해수욕장~홍농읍 영광핵발전소 7.3km~홍농터미널 6.4km 총 13.7km
오전 7시 전에 구시포에서 출발한 우리는 30여 분만에 7km를 달려 영광한빛핵발전소까지 갔다. 1차선으로 줄을 이어 출근하는 차량 운전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우리의 등에 새긴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보았을 것이다. 영광핵발전소 앞에 도착한 우리는 발전소가 여리고성인 양 그 앞에서 작게 일곱 바퀴를 돌며 외쳤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한다
영광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반대한다
핵발전은 기후위기 대안이 아니다
핵발전소 인접지역 주민대책 마련하라
고준위특별법안 철회하라
두 번째 지구는 없다
핵없는 안전한 사회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