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에서 군산까지 자전거 순례
자전거가 생겼다.
올해 1월, 연산에서 나포까지 금강 자전거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언젠간 그 길을 자전거로 쌩쌩 달리고 싶다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강경성당에 다시 갔다. 지난번엔 못 본 본당에 들어가 보았다. 거대하고도 단정한 양식 중 내 눈길은 자꾸만 마룻바닥에 갔다. 햇빛이 비쳐 칸칸이 굴곡진 바닥이 대리석이나 시멘트 바닥으로는 낼 수 없는 질감을 반사하고 있었다. 성 김대건 신부 첫 사목 성지인 구순오 교우의 집에 들러 강경포구로 갔다.
자전거 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새 자전거를 타보았다. 초록색 몸체에 노란 타이어 접이식 미니벨로에 올리브그린 스템백을 달고 따우전드 네이비 헬멧을 쓰고 자전거에 올랐다.
페달을 밟았다.
바람이 살랑 볼을 스치니 초등학교 4학년 때 할아버지가 사주신 자전거를 처음 타던 기억이 났다. 기우뚱기우뚱 논두렁으로 빠질까 봐 겁내던 순간이 있었다. 간신히 보조 바퀴 떼고는 초보 주제에 동생을 뒤에 태우고 가다 버스에 손등이 스쳐 살갗이 벗겨져 화상을 입었던 기억도 났다. 소나기 맞으며 시원하게 도로주행 하던 중학생 시절도 떠올랐다.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널찍한 강둑 양 옆으로 노란 금계국이 넘실대고 바람은 살랑댔다.
나는 젊다. 젊어서 좋다.
기천만 원 짜리 자동차도 아니고, 기백만 원짜리 외제 자전거도 아니고, 몇십만 원짜리 국산 자전거 한 대로 한껏 행복할 수 있는 내 소박함이 놀라웠다. 명품과 보석으로도 행복하지 못한 중년층이 얼마나 많을까. 자신의 성공과 가족의 안정에 목을 매고 옴짝달싹 못 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인데 훌쩍 떠나 훨훨 달릴 수 있는 자유로움이야말로 젊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루 대여섯 시간 걸어가던 20km를 한두 시간 만에 주파하다니 신이 났다. 자전거만 타도 이렇게 빠른데 그동안 어떻게 그리 느리게 도보순례를 했던가 아득했다.
목적지는 나포였지만 해가 지는 바람에 웅포 캠핑장에서 돌아와야만 했다. 익산 지나 강경쯤 오니 어둠이 내렸다. 전조등도 후미등도 없는데 자전거길에 자동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매우 위험했지만 가까스로 출발지점까지 돌아왔다. 왕복 50여 km에 쉬는 시간 포함 네 시간 걸렸다. 첫 주행치고는 훌륭했다. 혼자라면 그토록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초록 자전거 곁에는 부자친구도 도반도 아닌 함께 달리는 하느리듀가 있었다.
군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영광핵발전소까지, 영광핵발전소에서 홍농터미널까지 자전거로 넷이 172km를 달려 와서 광주터미널에서 둘씩 헤어졌다.
광주터미널에서 출발지였던 군산터미널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
군산 짬뽕의 원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먹어본 짬뽕 중 최고의 맛인 복성루 짬뽕을 먹고 군산하구둑으로 갔다. 거기서부터 지난 5월에 돌아가야 했던 웅포 캠핑장까지 13km씩 왕복 26km를 달렸다. 2박 3일간 자전거로 200여km를 달렸다.
힘이 남아도느냐고? 젊으니까.
지난 1월 연산부터 군산까지 걸었던 그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5월처럼 금계국이 여전히 반겨주었다.
길은 이어야 맛이고 목표는 달성해야 기분 좋다.
나포십자들을 다시 지나며 고민하던 내 초록 자전거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뷔나’로 결정했다. 나포에서 자전거 타고 달리기를 구체적으로 꿈꾸었기 때문이었다. '전망좋은 나포-View나, 비우나'
자동차 주행은 초고속 외 안전함과 편리함이 있다면, 도보는 건강과 끈기와 인내의 끝판왕이고, 자전거 주행에는 건강과 젊음과 낭만이 있다. 연료를 쓰지 않고 오롯이 육체와 기계의 힘만으로 구동하는 자전거를 타며 나와 어울리는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연속성이 정직성과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앞면에는 ‘초록별 안녕’ 뒷면에는 ‘두 번째 지구는 없다’라고 쓴 앞치마를 입고 뷔나를 타는 내게 안녕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겠다. 적어도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나는 안녕하다. 함께하는 친구가 있을 때는 더욱 안녕하다. 그리고 나 역시 두 번째 자신도 두 번째 생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