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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Dec 28. 2023

금강 자전거 순례길 2

뷔나와 뷔도

       

내게는 자전거보다 헬멧이 먼저 생겼다. 2023년 6월 군산~영광 자전거 순례를 앞두고, 마음에 드는 헬멧을 사라는 도반의 선물로 맘에 쏙 드는 thousand navy 헬멧을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사흘 후, 서울과 대전의 BROMPTON 매장을 다녀본 내가 산 건 브롬톤 비슷한 국산 접이식 TITICACA FLIGHT P9 HD 초록색 몸통에 노란 SCHWALBE BILLY BONKERS 타이어 자전거.

2023년 5월 25일 목요일. 그 애가 내게 온 날이다.      


1. 2023년 5월 26일 금요일 강경포구~웅포캠핑장 왕복 23.5 ×2=47km

다음 날 강경에서 웅포까지 왕복 47km를 하느리듀와 함께 달렸다.

이날의 감상은 금강 자전거 순례길 1에 있다.

https://brunch.co.kr/@2b53c094f8864b1/132


달리는 내내 새 자전거의 이름을 생각해 보았지만 당장 이름을 짓지는 못했다.      


초록 자전거 시승식 with 하느리듀


6월 10~12일 군산~영광 171.8km      

https://brunch.co.kr/@2b53c094f8864b1/131


2. 6월 12일 월요일 군산 하구둑~웅포캠핑장 왕복 13 ×2=26km

군산~영광 자전거 순례를 마친 날, 군산에서 웅포까지 왕복. 나포십자들을 지나며 고심 끝에 자전거 이름을 ‘뷔나’라고 지었다. ‘전망(View) 좋은 나포’이기도 하고 ‘비우나’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작년 9월 초, 그곳에 처음 갔을 때 양쪽으로 끝도 없이 이어진 자전거 길을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여기서 커플 자전거 타면 좋겠다.”

그 후 8개월여 만에 자전거가 생겼다. 함께 탈 사람도.

생각하고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꿈.   

봄여름 금계국처럼 웃음꽃 만발한 인생.     

       

같이 가치


3. 2023년 7월 6일 목요일 웅포~군산 12.3km

웅포에서 군산을 향해 출발했다. 중간지점인 나포에서 잠깐 쉬었다. 오후 3시 39분. 저만치 보일 듯 말 듯 작고 검은 무언가가 마주 달려오고 있었다. 뭔가 하고 한참을 지켜보았다. 점점 시야가 확보되자 삐그덕 삐그덕 낡은 자전거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자전거 위에는 누군가 있었다. 약속도 없이. 군산시 대여 자전거를 타고 온 나의 도반. 그는 내가 가고 있는 걸 알았지만 나는 그가 올 줄 상상도 못 했다.


우리는 나포에서 만났다. 내가 늘 꿈꾸던 만남. 순례하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누군가 와주는 그런. 일생에서 잊지 못할 낭만적인 만남이었다. 샘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르듯 기쁨에 겨워 팔짝팔짝 뛰는 나를 흐뭇하다는 듯 바라보며 금강이 너울너울 흐르고 있었다.


나포에서부터 군산까지는 함께 달렸다. 비록 커플 자전거는 아니었지만, 그 이상으로 달콤한 주행이었다. 자전거만큼 낭만적인 탈 것은 없다. 다리 힘으로 이동하면서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또 나란히 달릴 수 있는 제일 작은 탈것. 그리고 그 위에 사랑스러운 사람이 타고 있다면 더더욱.         

  

보일 듯 말 듯


4. 7월 8일 토요일 강경~부여대교 20km 왕복 40km

서울에서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 집회가 있는 날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집을 나서 강경으로 향했다. 맨 처음 웅포까지 자전거 순례했던 지점으로 갔다. 거기서부터 반대 방향인 부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오후 4시 37분. 돌아올 시간을 감안하면 멀리 가진 못할 게 뻔했다.

조금 가니 금강종주자전거길 금강하구둑 36.7km, 대청댐 107.3km 이정표가 보였다. 더 가니 아무도 없는 자전거 길 양옆으로 초록 수풀이 한들한들 우거져 있는 길이 환상적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전거길을 조성해 놓은 부여에서 살아볼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길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해 질 녘이라 역시 오래는 못 달렸다. 금강종주자전거길 부여 24km 지점에서 돌아왔다. 왕복 40km에 3시간이 걸렸는데 해가 길어 출발지점까지 돌아온 일곱 시 반 경에도 그리 어둡지 않았다. 해는 졌으나 빛은 남아있는 여름 초저녁이었다.         

  

강경에서 부여로


7월 18일 화요일 뷔나에게 전조등이 생겼다.      


7월 21일 금요일 뷔나에게 머드가드가 생겼다.           


머드가드 생긴 뷔나 with 다훈


5. 7월 28일 금요일 부여대교~백제보 11km

지난번 멈췄던 부여에서 출발했다. 낙화암 쪽으론 산이라 강을 건너갔다 다시 건너와야 하는 길이었다. 강을 건너 달리다 보니 낙화암이 보였다. 그곳에 관한 시와 노래가 떠올랐다. 그 지점은 부여 왕흥사지였다.

아무도 없는 자전거길을 달리다 보면 단지 모르는 길을 간다는 설렘이 가득하다. 그 설렘이 사라질 때는 돌아갈 걱정이 시작되면서부터이다. 부여대교에서 백제보까지 11km를 달렸다. 순례길에 가장 좋은 건 차로 돌아오지 않고 도착지점에 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는 경우다. 백제보 인증센터에는 나와 뷔나를 태워줄 귀여운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왕흥사지 앞에서 본 낙화암


8월 8일 화요일 밤길에 자전거 타다 내리막길에서 날아올라 아스팔트로 와장창


8월 18일 금요일 해남 송호에서 죽도까지 땅끝해안로 왕복 10km


6. 9월 22일 금요일 백제보~공주시 탄천면 대학리 10.4 km 왕복 20.8km

궁남지에서 백제보까지는 자동차로 이동했다. 백제보에서 출발한 시각은 오후 5시. 여름이 벌써 지난 후라 해가 길지 않았지만 뷔나와 뷔도는 여유 있게 달렸다. 사고 후라 겁이 나 속력을 내지 못했다.


"이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 지점에 딱 올라야 그때부터 힘이 받쳐주는데 아직 그 지점까지 못 갔어요."

"그런 걸 세컨드 윈드(second wind)라고 해요."


오호~ 문무를 겸비한 도반. 모르는 게 많은 나는 도반에게 배우는 게 참 많았다.  

'달리기나 보트 레이스같이 격렬한 운동을 할 때는 운동을 시작하여 잠시 후에 매우 괴로운 시기가 온다. 이것을 사점(死點 : dead point)이라고 하며, 이를 극복하고 견디어 내면 괴로움이 점차 누그러진다.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를 세컨드 윈드라고 한다.' (출처:체육학대사전)


목표였던 공주보까진 턱도 없어 한 시간 만에 중간에서 돌아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 흐르던 금강은 멋들어진 낙조를 선사했다. 멀리 가지 못하면 어떠한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또 어떠한가. 함께 달리고 함께 쉬고 함께 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뷔도와 뷔나가 주행한 금강자전거길의 마지막 지점 공주시 탄천면 대학리


금강을 끼고 달리던 봄과 여름과 가을엔 언젠가 두 대의 자전거가 금강자전거길을 종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틈날 때마다 금강으로 향했다. 그렇게 여유 있게 군산부터 시작한 금강자전거길의 마지막 지점인 대전 대청댐까지 종주하면 이 글을 쓰려고 했었다.      


금강자전거길은 지도상 총 190km(이정표 상 144km?). 아직도 72km 정도나 더 가야 금강자전거길을 종주한다. 그런데 이제는 언제 다시 그 길에 갈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아직 아장아장 걸음마 단계인 자전거 주행. 도보와는 달리 혼자서는 멀리 갈 실력이 안된다. 그래서 올해를 마무리하는 길뜬별로 행복했던 금강 자전거 순례길을 쓴다. 몇십 년 만에 다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도와주고, 꼭 한 번은 해보고 싶던 소원인 커플 룩과 커플 자전거를 함께 해준 도반과 뷔도에게 흐르는 금강처럼 하염없는 감사를 담아 보낸다. 그리고 내 삶도 괴로운 시절이 지나면 제 힘을 발휘하는 세컨드 윈드를 맞이하기 바라며 올해의 금강 자전거 순례길을 마친다.

      

저무는 금강


2023년 자전거 순례 총 338.9km          


2023년 11월 25일 토요일 나포 금강


2023년 12월 6일 수요일 나포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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