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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Sep 10. 2023

서울 석파정 산책

서울 별서 정원

   

겁도 없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도전했었다. 800km를 걸으면서 무릎 뒤와 발목이 너무 아파서 다시는 인대를 못 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무모한 순례 후 서울에 돌아와서 집 근처 한의원을 찾았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부황을 뜨고 침을 맞은 후 멀쩡히 걷게 되었다. 10년 전이었다.      


연초에 무리해서 벌초한 후 약간씩 이상하던 오른쪽 어깨가 본격적으로 불편했다. 서울에 간 김에 그 한의원에 들렀다. 환갑이셨던 원장님은 어느새 일흔이 넘으셨다. 부항을 뜨고 침을 맞자 어깨가 더 아팠다. 이틀 후 한 번 더 한의원에 들렀다. 자주 갈 수 없음을 서로 안타까워하며 시술을 마치고 나왔다.      


기차 타러 가기 전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석파정이었다. 전국의 정원을 찾아다닌 내가 살던 동네에 있던 정원에 가보지 않았다. 그 아래 ‘석파랑’이라는 음식점에서 식사는 해보았지만 그 위 석파정은 기억이 없다. 서울미술관이 개관하자마자 전시회를 본 기억이 있는데, 왜 그때 석파정까지 가보지 않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 입구에서 한옥 한 채 보고 그냥 돌아 나온 듯하다.      


입장료가 20,000원이나 했다. 깜짝 놀랐다. 보길도에 있는 부용동 원림도 3,000원 하는데 말이다. 정원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선뜻 내고 들어갈 수 없는 금액이었지만 그 동네 살지도 않는데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와보나 하고 입장료를 냈다. 2, 3층에서 일본 작가 전시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바로 4층으로 갔다.      


바깥으로 나오자 너른 바위에 ‘소수운렴암(巢水雲簾菴)’이라고 쓰여 있다. ‘물을 품고 구름이 발을 치는’ 암자라는 뜻이다. 그 위에 신라삼층석탑이 보인다. 바위 앞쪽으론 배롱나무가 있고, 오른쪽 뒤로는 우람하고 고풍스러운 소나무 ‘천세송’이 있다. 옆 바위에 ‘삼계동(三溪洞)’이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물줄기가 셋이 모인 골짜기였으리라.      


소수운렴암과 신라삼층석탑


돌길을 따라 삼계동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기서 위로 위로 올라가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볼 심산이었다. 구석구석 벤치를 놓고 오솔길이 깨끗하니 입장료만큼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게 보였다. 스피커에서는 음악도 흘러나왔다. 새소리와 잘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한 발 한 발 정원 가장자리를 돌아 가운데쯤에 오니 거대한 벽과도 같은 너럭바위가 있었다. 놀랍게도 그 단단한 바위 아래 샘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코끼리 형상이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엔 보이지 않았다.      


석파정 너럭바위


다시 길 따라 아래로 내려오니 개울이 나왔다. 물이 말라 돌다리를 건너올 수 있었다. 다시 가운데 길로 올라가 석파정을 보았다. 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風樓)라고 하는 이곳은 이름 그대로 ‘흐르는 물소리 중에서 단풍을 바라보는 누각’이라는 뜻 그대로 계곡 한가운데 누각을 지었다. 물이 흐르는 계곡에 화강암으로 기둥을 쌓아 그 위에 정자를 지었는데 양식이 한국 전통이 아닌 청나라풍의 무늬였다. 늦여름 혹은 초가을 한낮인데도 계곡은 서늘하고 습해서 정자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모기에 물렸다. 정자 옆 바위 아래는 돌로 된 개구리와 새끼들이 있었고 그 아래 바구니에는 동전들이 쌓여있었다. 아마도 복을 빌었던 게지.      


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風樓)


별채로 올라가 보았다. 툇마루에서 인왕산 기차바위가 보인다. 이 정도 높이라면 자하문 밖에 있어도 전혀 꿀리지 않는 터다. 고종이 방문했을 때 이 사랑채 위쪽에서 주무셨다고 한다. 집 앞에서 보는 기세 높은 전망도 좋지만, 뒤에 놓인 굴뚝 둘도 가지런히 예쁘다. 석파정에서 가장 오래 있고 싶은 곳이다.      



흥선대원군은 조선후기 이조판서,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김흥근으로부터 이 별서를 빼앗기 위해 하루를 빌린 후 아들인 고종을 행차케 하여 하룻밤 묵게 하였고, 임금이 묵고 가신 곳에 신하가 살 수 없다 하여 김흥근의 소유를 포기하게 했다고 한다. 그것을 기지라고 할 수 있을까? 참으로 탐욕이 서린 정원이었다. 이 정도로 공들인 별서를 빼앗긴 김흥근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철거민처럼 하루아침에 별장을 빼앗긴 것과 다름없는데 이를 갈며 병을 앓지나 않았을까? 흥선대원군의 파렴치한 소유욕을 생각하면 더 머물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서울 한복판에 그렇게 아름답고 다른 세상 같은 정원이 자리하고 있음은 놀랍고, 보존돼 있음은 고맙다.      


천세송과 멀리 북악산 성벽


2층에는 요시다 유니의 작품 전시 중이었다. 230점의 작품 수가 압도적이었고 비주얼 센스와 정밀함이 대단했다. 디자인 전공생들은 꼭 볼만한 전시였다. 하지만 석파정의 여운이 사라질까 훑어만 보고 나왔다.  예전 산책로를 따라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갈 때마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의원에서 바로 역에 갔으면 탔을 기차보다 두 시간 늦게 기차에 올랐다. 눈을 감았다. 그 동네에 살았었다. 산책로가 북한산과 백석동천인 백사실계곡이었다. 경복궁은 걸어서 갔었다. 서울의 인왕산, 북한산, 북악산 자락에서 다 살아보았다. 그 좋은 서울시민 마다하고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송전탑이 삐죽삐죽 보이는 야트막한 산자락이 보이는 곳에 단지 인가가 드물다고 선택한 시골 이층집.

흥선대원군의 욕심으로 강탈한 석파정은 정말 아름다웠지만 아무리 좋은 곳인들 빼앗기면 무슨 소용이고 빼앗은들 무엇이 평화로울까. 언제라도 떠날 수 있고 아무도 탐내지 않는 이 집이 지금 내게는 가장 좋은 곳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정말 나만의 정원이 생긴다면 지금까지 내가 본 전국 정원의 축소판 같은 별천지를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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