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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Dec 13. 2023

계족산 순례길 완주

2022~2023년 대전 계족산 둘레길


2022년 12월 11일 일요일

대전 천개동마을~절고개~계족산성~임도삼거리~장동산림욕장입구 11km     


2022년 12월 12일 월요일

대전 천개동마을~절고개~장동산림욕장 (반대 방향) 11km (계족산성 둘레길 1km 남음)           


2023년 11월 23일 목요일

대전 천개동마을~추동~절고개~임도삼거리~절고개~천개동마을 12km


한파가 닥치기 전날 강의를 마치고 부랴부랴 나섰다. 온기를 채우기 위해 칼국수 한 그릇을 사먹었다. 별점 보고 갔는데 별 맛이 없다. 미각에 이상이 생긴 건지 혼자 먹어 그런 건지 모르겠다.

계족산으로 향했다. 대청호를 끼고 추동 쪽으로 올라가 절고개 삼거리 1.5km 지점 천개동 입구에 주차했다. 오후 1시 50분.

차 트렁크에 있던 등산화 대신 새로 산 딱딱한 검정 운동화를 신고 차에 가득한 생수도 챙기지 않은 채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앞치마 입고 휴대폰만 손에 쥔 채 출발했다.


10분 정도 1km쯤 올라가니 이정표가 보이는데 절고개 0.45km, 추동 1.2km.

작년에 계족산 황톳길을 오른쪽으로 돈 기억에 따라 왼쪽 추동 쪽으로 향했다. 어느 정도 가니 대청호수가 내려 보이고 더 내려가니 송전탑이 가까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산길은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마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상했지만 계속 걸어갔다.

실망과 무기력에서 벗어나려고 걷는다. 예쁘게 빛나던 존재감은 어디로 가고 시들고 지친 상태가 계속된다. 엉뚱한 길로 가니 마땅히 얻어야 할 걸 얻지 못하는 것 아닌가. 내 속에서 화가 솟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연속으로 터지는 11월. 가만히 조심스럽게 내 할 일만 해도 어이없는 공격을 당하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꾹꾹 눌러 쌓여있던 분노는 어느 순간 아주 사소한 일로 터져버린다. 사후에 감당해야 하는 건 황폐한 자신이다.


계족산 추동 가는 길


30분가량 걸어가다 도무지 그 길이 아닌 듯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리산 종주 때도 그랬다. 코앞에 화엄사 입구를 놓고 2km를 돌았다. 그때 시작부터 그렇게 힘을 빼지 않았다면 수월하게 종주했을까? 적어도 그렇게 모진 고생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땐 도반이라도 있었지 이번엔 혼자.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는 건 대체 무슨 이유일까? 무모함에 길들여져 육신을 학대하고 있는 건 아닌가. 다리가 아팠다.


오후 3시 10분, 왕복 7km를 걸어 다시 이정표가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겨울 산에선 해가 일찍 기울고 이미 다리도 무척 아픈 상태였다. 그런데 나는 절고개까지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0.45km를 올라갔더니 눈에 익은 장소가 보인다. 전면엔 계족산성으로 올라가는 길, 오른쪽은 작년 겨울에 돌았던 길. 왼쪽으로 1km 가면 임도삼거리다. 작년에 천개동~계족산성~임도삼거리~장동산림욕장과 천개동~장동산림욕장까지 걸었으니 임도삼거리까지만 걸으면 계족산 둘레길을 완주할 수 있다. 계족산을 끼고 왼쪽으로 돌았다. 서쪽에서 늦은 오후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었다. 바라던 풍경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맨발로 황톳길을 걸었다. 평일이라 많지는 않았다.


왕복 2km를 걸어 결국 완주했다. 거기서 1.6km 아래 주차한 천개동 입구까지 내려오면서도 그 길이 맞는지 몇 번이나 불안해했다.


오후 4시 19분. 어둠이 내리기 전에 차가 보였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두 시간 반에 12km. 5km면 완주할 수 있었는데 두 배 반이나 더 걸었다. 그래도 완주가 어딘가. 하지만 양쪽 고관절이 욱신거린다. 전날 향적산 종주에 이어 계족산 도보까지 했으니 다리에 무리가 갈 만도 하다.

화가 날 땐 걷는다. 걸어도 화가 사그라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길을 찾아야 하는 위협감이 생기면 분노는 잠시 밀쳐진다. 몸이 좀 상해도 어쨌든 종주했다는 성취감이 남는다. 무사히 하산하면 안도감도 느낀다. 그러는 사이 분노는 잠시 잊을 수 있다. 상처 난 마음이 육신을 늙고 병들게 한다. 아픈 마음은 얼굴의 빛도 사라지게 한다. 분노를 다스릴 수 있다면 고관절의 고통쯤이야 참을 수 있다. 그러나 걸어도 걸어도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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