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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an 18. 2024

도꼬마리

콩이를 아프게 하는


서울에 다녀왔다.

반년에 한 번씩 하는 정기검진과 연초에 하는 종합건강검진을 했다.

작년에 끝났어야 할 다큐멘터리 제작이 계속되어 아직도 마무리 작업 중이다.


서울에 가면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빽빽한 집과 사람과 차로 긴장 상태가 팽팽하다.

일을 마치고 기차 창밖으로 아파트가 사라지고 들판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제야 마음에 여유가 퍼진다.

서울토박이 맞나?


기차역 근처 어두운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집으로 온다.

그런데 내 차가 들어오면 뱅글뱅글 도는 하얀 강아지가 보이지 않는다.

시동을 끄고도 나오지 않고 차에 앉아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차밖으로 나가기 겁이 났다.


혹시나 혹시나


기다리다 자동차 문을 열어도 강아지가 보이지 않는다.


설마 설마


'만약에 콩이가 사라졌다면, 혹시라도 사고로 죽었다면 난 이 집에서 안 살 거야.'


시키지도 않은 생각이 불길하게 스쳐갔다.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다가가도 강아지는 보이지 않고 내가 사 준 굵은 주황색 줄만 보인다.

잠시 후 집안에서 콩이가 나왔다.


"콩아-"


그런데 콩이가 이상하다. 평소 같으면 팔딱팔딱 뛸 텐데 가만히 서있기만 한다.

설마 나를 못 알아보는 건 아닌가 하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내가 갈 때 멍하니 딴청 하던 게 생각나서 아직도 서운함이 안 풀렸나 했다.

꼬리는 흔든다.

물그릇과 밥그릇이 텅 비어있다.

서둘러 물과 사료를 부어 주었다.

먹지도 않는다.

주머니에 넣어온 간식을 주었다. 그건 받아먹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했다.

눈물이 고인 듯한 눈을 보니 직감으로 아픈 거였다.

걸음걸이도 시원치 않았다.


쓰다듬었다.

그때 알았다.

온몸에 가시가 가득 돋친 땅콩만 한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작년 말에도 온몸에 그게 붙어 밤중에 한참을 떼어준 적이 있었다.

맨손으론 손댈 수도 없이 따가운 것들이 콩이 목덜미와 배와 다리에 털과 함께 엉겨 붙어 있었다.

나는 자동차 트렁크에서 목장갑을 꺼냈다.

1층 주인집 센서등은 금방 꺼지고 나는 어두운 마당 가로등 불빛 아래 콩이와 씨름을 한다.

다행히 콩이는 내가 자기를 도와주는 줄 알고 가만히 있는다.

털을 잡아당기면 아플 텐데도 내 장갑을 핥는다.

고마움의 표시다.

한 개를 떼어내는 데 1~2분도 더 걸린다.

나는 콩이에게 쉬지 않고 말을 한다.


"걱정 마. 내가 구해줄게. 어쩜 좋니. 널. 이런 열매 있는데 가지 마. 아무도 안 떼어줬어? 아이 예쁘다. 잘 참네. 가만있어. 너도 아프고 나도 아파. 이건 무한한 게 아니니까 한 개씩  한 개씩 떼어내면 언젠가 다 뗄 수 있어. 밤을 새도 내가 다 떼어내 줄 거야. 나 없으면 너 어떡하니."


종알종알 쫑알쫑알


사람이라면 조용히 좀 하라고 할 텐데 콩이는 까만 눈으로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보슬비가 오락가락하는 컴컴한 밤에 나는 새로 산 감청색 치마를 입고 쭈그리고 앉아 하얀 울폴라와 감청색 파카 소매에 콩이 털이 닿아도 가시열매를 떼어낸다. 목장갑을 뚫고 들어오는 가시에 찔리며 콩이 털에 엉킨 뾰족한 열매를 열 개가 넘어 스무 개쯤 떼어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누군가 다가와 내 상처를 하나하나 다 떼어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가만히만 있어도 누군가 이렇게 아무 조건 없이 잘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콩이에게 바라는 게 없다.

반겨달라고 한 적도 없고 놀아달라고 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콩이는 날 보기만 하면 좋아서 날뛴다.

돈을 벌어다 주지도, 먹을 걸 갖다 주지도 않고 그저 날 좋아할 뿐이다.

나는 그런 콩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다 주고 같이 있고 돌본다.  

보통의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하듯. (하지만 남편이 아내를 바깥에서 재우진 않지.^^)

40여 분 지나 다리가 저릴 듯 말 듯, 열매를 버리러 일어날 때마다 현기증이 났지만 결국 다 떼어냈다.

물론 내일 날 밝으면 다시 훑어봐야겠지만.


지금 찾아보니 그 열매 이름은 도꼬마리였다.

도꼬마리가 붙어 있을 때 콩이는 내 손길을 제일 많이 받는다.

아플 때 손길이 가는 건 사랑하는 대상에겐 당연한 일이다.

십 년 전만 해도 개를 사랑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개는 상상할 수 없던 매우 많은 걸 가져다주었다.


남의 집 개 콩이는 주인보다 내 알뜰살뜰한 사랑을 더 받는다.

내 것이 아니면 어떠한가. 아무 상관없다. 나는 그에게 대가를 바라고 사랑하는 게 아니니까. 내 소유여서 사랑하는 게 아니니까. 그저 그 애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도 저절로 사랑하게 된 거니까.

그러고 보니 개가 사람을 사랑하면 사람도 개를 사랑하게 되는데 어찌 사람끼리는 그럴 수 없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그 때문에 괴롭기도 하지만 그 근원에는 불안이 있다. 개는 그런 불안을 주지 않는다. 저 개가 나를 싫어하지나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쩌나 따위의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개는 충실하고 우직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개를 사랑하나 보다.  


잘 자

콩아~

내일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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