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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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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Feb 10. 2024

thanks to grandfather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올해부터 감사 목록을 적어보려 합니다.


 thanks to ~


오늘은 음력 설이자 할아버지가 23년 전 돌아가신 양력의 날입니다.

할아버지 생신과 결혼기념일도 외웠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기일을 기억하게 되네요.

지금은 제게 가장 중요한 날인 생일도 제가 죽고 나면 의미가 없어지겠죠.


이북에서 피란 오셔서 제 본적을 서울시 종로구로 만들어 주신 할아버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시다가 다가구 건축 시초 시절에 주택 건물을 지으시고 손주들 모두 대학 교육까지 시켜주신 분. 닭백숙과 삼겹살을 먹게 해 주신 분. 할아버지 덕분에 가난하지 않게 살면서 공부도 할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자전거를 사주셔서 그때부터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해주신 할아버지.  

중학교 2학년 때는 국내 최초 가정용 8비트 컴퓨터를 사주시기도 하셨죠. 저는 관심이 없었지만요.

대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할아버지가 "현대 여성은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된다."며 면허를 따게 해 주신 덕분에 지금도 운전은 아주 잘하는 편입니다.


대학교 때 친구들과 금 한 돈 반지 계를 했었지요. 저는 제 몫의 돈을 받았을 때 제 반지가 아닌 할아버지 반지를 맞추었어요. 친구들은 의아해했죠. 하지만 대학 내내 용돈 받아본 적 없이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았던 저는 제 첫 반지보다 할아버지께 금반지를 끼워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런(이렇게 얇은) 걸 어떻게 하느냐고 하셨지요. 저는 제 고마움의 표시를 약소하다고 몰라주는 할아버지에게 좀 서운했었어요.

그런데 얼마 후 할아버지는 저를 백화점에 데리고 가셔서 금 목걸이를 사주셨죠.

그리고 또 졸업 후에는 옷 사 입으라고 백만 원이나 주셨죠. 그때가 90년대 중반이었던 걸 생각하면 매우 큰돈이었어요. 저는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가서 세일하지 않는 연푸른색 쓰리피스를 사서 입었어요. 참 예쁜 스물여섯 살이었죠.


지금 저는 함께 살 때 할아버지가 주신 감청색 발렌시아가 손수건을 목에 메고 있습니다.

받은 지 족히 30년은 되었겠네요.

할아버지, 제가 얼마나 물건을 아끼면서 곱게 사용하는지 아셨죠?

할아버지 옷 중 가장 고급이었던 세무 점퍼도 아직 가지고 있답니다.


만약 할아버지가 지금의 제 모습을 보신다면 뭐라고 하실까요?

"장하다. 내 손녀답다."고 하실까요?


할아버지, 그렇게 살겠습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셨던 할아버지처럼 근면하게 살 자신은 없지만, 끈기 있게 노력하며 자립해서 살겠습니다. 남에게 신세 지지 않는 자존심과 베풀며 살 수 있는 도리를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강단 있게 추진하고 열심히 일하며 사는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첫 손녀 이름을 사흘 밤새워지어 주시고, 고모들에게 갓난아기였던 제 발을 입에 넣으면 십 원 준다고 하실 정도로 저를 사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장성할 때까지 든든히 곁에 계셔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 밤에 할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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