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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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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Mar 06. 2024

thanks for the tires

우정의 타이어 두 개에 감사합니다.


운전 경력 30년이니 차에 대해서 할 말이 무척 많지만 오늘 특별히 감사한 게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매우 바쁘지만 꼭 감사 일기를 써야겠습니다.

2년에 한 번씩 하는 자동차검사를 했습니다.

뒷바퀴가 많이 마모되었다고 하더군요.

지난겨울부터 미끄러지는 게 느껴져서 교체할 때가 되었음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지요.

차를 바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고차를 세 대나 몰다가 환경보호한다고 샀던 LPG 차량으로 12년을 운행하다가 지금의 차로 바꿨습니다.

하이브리드를 고집했지만 대형차를 살 생각은 없었는데, 추천에 의해 얼떨결에 6년 전에 생일 선물로 고르게 된 탈핵브리드.  

지난 6년 동안 저의 발이자 집이자 이삿짐센터였던 소중한 차.

그러나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정착하면 바꾸고 싶었던 차.

차박을 하고 싶어서기도 하지만 차를 바꾸면 차와 연관된 사람의 기억이 덜 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앞 타이어 두 개를 갈아준 사람을 기억합니다.


2021년 봄, 정읍에서였으니까 3년이 되었네요.

요양보호사를 하던 시절이었지요.

겉으론 글 써서는 먹고 살 수 없어서라고 말했지만, 실제 목적은 돈 때문이 아니었지만요.

숭고한 헌신이 천덕꾸러기처럼 치부되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갈팡질팡하던 그때 정읍으로 찾아온 여러 명 중 한 팀이 있었습니다.

해고노동자와 작가로 만나 수년을 쌓아온 우정의 방문이었는데, 하필 그때 제가 자동차를 카센터에 맡겼고, 타이어를 갈아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지요.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던 그는 자기가 타이어를 갈아주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타이어를 교체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읍을 떠나야 했고, 남도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새 앞 타이어를 장착한 차로 해남의 깎아지른 듯한 도솔암에 올라갈 때 그 친구에게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당시 써놓은 글입니다.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천애고도였다. 게다가 곧 쏟아질 비를 몰고 오는 구름이 스산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무서웠다. 문득 9척 장신들도 넘어져 다치던 바람 부는 피레네 산맥을 10kg 배낭을 메고 넘던 기억이 났다. 맨몸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던 피레네 산맥도 넘었는데 든든한 차 안에서니 그보단 안전할 터였다. 올라가는 내내, 정읍 떠나기 얼마 전에 앞 타이어 두 개를 갈아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물씬 일어났다.'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 그때 저는 눈 한번 질끈 감으면 추락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운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새 타이어 덕분에 무사히 도솔암을 오르내렸고 이후 남도 순례를 탈핵브리드와 함께 했습니다.

수 년 간 자동차 보험 마일리지 할인 특약 혜택도 못 받을 정도로 장거리를 달렸던 그 시절, 제 안전을 지켜준 타이어. 오늘 그 앞 타이어를 뒤로 장착하려 했지만 결국 갈라져서 못 쓰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네 개를 전부 갈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네가 해고 상태일 때 저는 어렵지 않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일했습니다.

제가 극빈했을 때 그 친구는 타이어도 갈아주었고, 다음 해 귀정사에 있을 때도 찾아와 단체 이름으로 위로금을 전달해 주고 갔습니다. 그때 저는 밥 먹다 말고 울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위해 한 일이 맹세코 돈을 바라고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돈은 두고두고 제가 누군가를 도와줘야 할 때 야금야금 주었습니다. 제 배낭에는 늘 그 봉투가 있었고 그 봉투를 볼 때마다 그들의 우정에 감사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준 돈을 저를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 봉투는 텅 비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 배낭에 담겨 있습니다. 지금도 그 봉투를 볼 때마다 그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보낸 4년. 그들은 승리했고 저는 그들로 인해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이름도 명예도 얻었지만 가장 소중한 건 우정이죠. 그 봉투에는 제가 그들을 위해 뭘 한 게 아니라 그들이 제게 돌려준 우정이 새겨져 있습니다.


타이어 가게에서 떠나면서 물었습니다.

"제 타이어는 어떻게 되죠?"

"버려야죠."

"그거 추억이 있는 거라서요. 누가 선물해 줬거든요."

쓸데없는 말을 남기고 왔습니다.


새 타이어 네 개로 하는 주행은 새 신발을 신고 걷는 것처럼 접지력이 좋습니다.

타이어가 바뀌었다고 해서 이전 기억이 사라질까요?

글쎄요.

어려울 때 도와준 사람을 잊을 정도로 무감하진 않습니다.


정처 없던 제가 정말 외롭고 힘들었던 그때 꼭 필요하던 타이어를 갈아준 친구에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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