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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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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Mar 13. 2024

thanks to seven daffodils

일곱 송이 수선화 덕분에


엊저녁 어두운 동네 거리를 헤매 다녔습니다.

화분을 찾기 위해서요.

비좁은 플라스틱 화분에 알뿌리 세 개 달랑 들어있는 수선화를 넓고 깨끗한 집에 옮겨주기 위해서요.

내가 왜 또 생명을 집에 들여놓았을까, 끌끌 혀를 차면서도 일단 내게 온 생명을 돌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농협 하나로 마트에 가서 찾아보았지만 작은 플라스틱 화분밖에 없어서 대신 마사토와 배양토와 식물영양제를 샀습니다. 그리고 이사 온 지 일 년 동안 빗자루도 없이 걸레질만 하고 살았는데 천연갈목빗자루가 눈에 띄어 샀습니다. 플라스틱이 싫어 여태 버텼는데 쓰레받이는 플라스틱뿐이라 아쉬운 대로 함께 샀습니다.

내비게이션에 화원을 쳐보았지만 몇 군데나 엉뚱한 곳이 나왔고 동네를 몇 바퀴 뱅뱅 돌고 나서 화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유 있게 적당한 크기는 없었지만 일단 급한 대로 하얀 도자기 화분을 샀습니다.

밤에는 식물도 잘 시간이라 다음날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스트레칭도 짧은 영상을 골라서 하고 아침식사도 꼬마 토마토 하나 삶아서 올리브유 뿌려먹고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도구가 없어 욕실에 화분을 들여놓았습니다.

맨 아래 구멍 뚫린 천을 깔고 마사토를 붓고 배양토를 붓고 수선화를 옮겨 담았습니다. 알뿌리가 워낙 커서 화분 위까지 찹니다. 배양토를 조금 덜어내고 다시 뿌리를 넣어보는데 맨 손으로 하니 보송보송한 흙이 줄줄 샙니다. 그대로 꼭꼭 담아주고 맨 위에 다시 마사토를 조금 뿌려 포실한 흙을 눌러주었습니다.

샤워기에 수압을 약하게 해서 꽃과 줄기엔 닿지 않게 흙에만 흠뻑 주었습니다.


쭉 뻗은 수선화가 활개를 폅니다.

비록 제주도에서 본 우리나라 토종 수선화는 아니라 봉오리가 크지만 그 자태가 우아합니다.

3년 전 사이버로 원예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도 땄지만, 꽃으로 심리치료가 저절로 되는 걸 실제로 만끽해 봅니다.


무심코 사온 수선화가 세어보니 일곱 송이입니다.

역시 우리는 운명이었던 걸까요?

척박한 상가 앞 형편없는 화분 속에 갇혀 있던 수선화 세 알뿌리가 내게로 와서 호강합니다.

좋습니다.

누구든 내게로 와 살아나고 아름다워지고 품위 있어지는 게 좋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될 겁니다.

누구든 내게 오면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이십 대 초반에 자연스럽게 들던 그 생각이 이제 현실에서 가능하도록 점점 더 그렇게 살 겁니다.

그걸 알려준 일곱 송이 수선화에게 오늘 아침 고맙습니다.


일곱 송이 수선화


The Brothers Four - Seven Daffodils


I may not have a mansion I haven't any land

나는 멋진 집도 없고,  그런 집을 지을 만한 땅도 없습니다.


Not even a paper dollar to crinkle in my hands

내 손에 쥔 지폐 한 장 조차도 없습니다.


But I can show you morning on a thousand hills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넓은 언덕 위로 밝아오는 아침을 보여 줄 수 있고


And kiss you and give you seven daffodils

사랑의 입맞춤과 일곱 송이의 수선화를 줄 수 있습니다


I do not have a fortune to buy you pretty things  

나는 당신에게 예쁜 것을 사줄만한 재산은 없습니다.


But I can weave you moon beams for necklaces and rings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달빛을 엮어서 목걸이와 반지를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And I can show you morning on a thousand hills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넓은 언덕위로 밝아오는 아침을 보여 줄 수 있고


And kiss you and give you seven daffodils  

사랑의 입맞춤과 일곱 송이의 수선화를 줄 수 있습니다


Oh, Seven golden daffodils are shining in the sun  

오, 일곱 송이 황금빛 수선화는 햇빛 속에서 빛나다가


To light away to evening when our days is done  

우리의 하루가 다 지나 저녁이 되면 그 빛은 사라질 겁니다.  


And I will give you music and a crust of bread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 아름다운 음악과 한 조각의 빵,


A pillow of piney boughs to rest your head  

그리고 당신 머리를 쉬게 할 커다란 소나무 가지로 만든 베개를 주겠습니다



~ 이런 노래 불러 줄 사람이면 되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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