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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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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Mar 20. 2024

thanks for making me princess

공주 놀이 감사합니다


사실은 말이죠.

저는 공주가 되고 싶었습니다.  

복수도 못 하고 물방울이 되어 허망하게 사라지는 인어공주보다는 숲 속의 잠자는 공주를 선망했답니다.

아리따운 모습으로 잠만 자고 있으면 멋진 왕자가 와서 입 맞춰 깨워주고 왕궁으로 데려가 결혼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그런데 눈을 떴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왕자가 서있다면 어떡하죠? 싫다고 다시 잠에 빠져들 수도 없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스스로 공주가 되기로 했습니다.

(입 맞추고 싶은 왕자는 나타나든 말든.)


먼저, 공주가 신는 구두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거든요. 그러니 거꾸로 신발부터 패션을 만들어가 보려고요.

(작년에 초록색 운동화에 맞춰 초록색 바지, 초록색 셔츠와 초록색 무늬 블라우스와 초록색 머리핀까지 구비했던 것처럼.)

그런데 그걸 도와주는 요정이 있었습니다.

그 요정의 이름은 리리리리리혀언


제가 고르고, 요정님이 사서 보내주신 공주 신발이 도착했습니다.

오~ 예쁜 상자에 한 짝씩 포장되어 차곡차곡 담긴 바닐라색 구두.

신겨주는 시종은 없었지만 조심스레 한 발씩 넣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발딱 일어서서 한 발 한 발 걸어보았습니다.


억- 인어공주도 아닌데 복숭아뼈 아래가 아픕니다.

보기보다 뻣뻣한 신발을 신기에 제 발목은 무척 약합니다.


흑~ 환불해야겠습니다.

공주 되기 힘드네요.


그래도 공주 놀이를 도와준 요정에게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내 편은 내가 엉뚱한 짓을 한다고 해도 남에게 해 되지 않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래, 그래, 내가 도와줄게. 맘껏 해 봐."

이렇게 밀어주는 사람입니다.


리리리리리혀언 요정님~

제 철딱서니 없는 공주짓에 맞장구 쳐줘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2월 윤달 때문에 하루 앞당겨진 입춘.

봄이 들어오는 날입니다.

이주 1주년을 기념하기에 공주 신발로 충분합니다.

비록 신고 다니지 못해도 잠시 잠깐 저는 공주가 되었습니다.

쌩쌩 바람 부는 봄밤 위를 살포시 날아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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