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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May 13. 2024

백악산 순례길

창의문~백악산~창의문


어느 날 불쑥 전화해서 오늘 시간 있으시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하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불현듯 만나서 크레마노 한 잔을 호로록 마시며 한두 시간 대화하고

기약 없이 헤어져도 잔잔합니다.  


아무 버스나 타고 가다 덜컥 내립니다.

창의문이 보이길래 무작정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예전에 신분증 검사하던 곳은 닫혔습니다.

까마득한 성곽이 하늘까지 닿아있는 듯 가파릅니다.

치덕치덕한 치마바지 자락을 거머쥐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갑니다.


紫北正道자북정도

자줏빛 북녘의 바른 길이라.......


돌고래쉼터를 지나니

오후 네 시에서 다섯 시로 넘어가는 바람이 서늘합니다.

인도의 향기 숄을 걸칩니다.

오월의 산보다 제 어깨가 더 싱그럽습니다.


백악쉼터를 지나

342m 백악마루에 올랐습니다.


북악산의 원래 이름 백악산.


바위 옆 남서쪽 조금 뚫린 곳으로 보이는 도시는 뿌옇습니다.

소나무에 가려 다른 산아래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내려옵니다.

까마득한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서.

숙정문으로 가는 내리막길이 오른쪽으로 보입니다.

반대쪽으로 내려갑니다.


그러고 보니

그 동네에서 십 년 이상 살았었는데 숙정문으로 두 번.

백악마루에는 처음 올라보는군요.


창의문은 갈 때마다 공사 중이거나 닫혀있습니다.

추억은 불에 타 부질없는 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부부가 자전거 여행을 갔는지 묘한빵집은 문을 닫았고

새콤한 숙주나물 풍성하던 사이치킨은 사라졌습니다.


세탁소 뒤 골목 끝 인왕산 기차바위는 여전히 늠름하고

스코프에는 얼그레이케이크가 새로 나왔습니다.


선명한 북한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내려오니

샛노란 가게 북쪽면으로 꽃집이 생겼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직면이 두려워 백악마루까지 올라갔다 왔음을.


갈 때도 올 때도

제 걸음은 한참을 돕니다.


사뭇 멀리  

짐짓 멀리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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