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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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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May 28. 2024

thanks for my love in action

사랑의 실천에 감사합니다


태풍이 불기 직전에는 바다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합니다.

전날 보낸 이메일에 새벽녘 놀랍고 감사한 답장이 도착했다. 

오후가 되기 조금 전에 집을 나서 탈핵신문을 읽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금계국 가득한 길을 산책했습니다. 

하루를 잘 보내고 집에 돌아와 마무리로 콩이랑 산책을 했습니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와서 쓰레기 수거일이라 한 달에 한두 번 버리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300미터 앞 쓰레기장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남은 동네를 돌아 집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뒤에 오던 콩이가 울타리 너머 동네 개들한테 관심을 보였습니다.  

갑자기 들개 같은 세 마리가 달려들더니 콩이를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 개들을 쫓아냈습니다.

두 마리는 도망갔고 제가 가도 한 마리는 콩이를 계속 물어뜯었습니다.

소리를 질러 개를 쫓아내고 간신히 콩이를 진정시켰습니다.

그런데 콩이가 오른쪽 앞다리를 땅에 딛지 못합니다.

하는 수없이 콩이를 안고 집까지 왔습니다.


처음입니다. 콩이를 안아본 건.

콩이는 밖에서 사는 개라 목욕을 자주 못 해 더럽거든요.

어제 빗질을 싹 해줬지만 냄새는 어쩌지 못합니다.

콩이는 처음 안겨보는 제 팔에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우측 앞다리에 손을 대면 파르르 떠는 게 많이 아픈 듯했습니다.


콩이를 차에 싣고 동네 동물병원을 검색했습니다.

오후 7시가 넘어 전부 진료마감이었습니다.

한 군데 전화를 하니 원장에게 착신이 되어 통화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대전에 24시간 진료하는 동물병원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길로 달려갔습니다.

가면서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잠시 후 주인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병원 가면 이것저것 검사하고 돈이 많이 드니, 주인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항생제만 처방받아 오라고, 운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콩이는 늘 자동차를 타던 강아지처럼 우아하게 조수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픈 발은 계속 들고 있는 상태로요.


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 여 달려 도착한 동물병원에선 강아지가 들개 세 마리에게 물렸다는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다른 병원에 가라고 합니다.

다른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밤 8:35.


콩이는 아마 태어나서 동물 병원에 처음 와 봤을 겁니다.  

콩이가 다섯 살 포메라니안 수컷 6.3kg이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밤에 갔는데도 30분을 기다렸습니다.

무릎에 올려놓고 안은 콩이는 새근새근 얌전하게 가만히 있었습니다.

제 따뜻한 체온에 안심하는 듯했습니다.

처음으로 아파야 안길 수 있다는 걸 알았을까요?


마침내 의사를 만났습니다.

당연히 털을 깎고 X-Ray를 찍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포메라니안은 털을 깎으면 안 자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주인과 통화를 했습니다.

저는 콩이의 주인이 아니라 결정권이 없으니까요.

주인은 털 깎으면 안 자라서 밉다고 그냥 항생제만 처방해 달라고 하십니다.


상황을 파악한 의사가 다행히도 그냥 X-Ray를 찍어보겠다고 했습니다.


결과는

골절.

그것도 분쇄골절.

뼈가 조각조각 났습니다.

당장 입원시키고 수술해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수술을 안 하면 통증으로 쇼크사할 수도 있고 썩어 들어가는 괴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수술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수술비는 320만 원.

의사가 동네 근처 병원을 알아봐 주었는데 그런 (큰) 수술 못한답니다.


주인에게 전화했더니 그냥 데리고 오랍니다.

제가 문 개 주인에게 찾아가 치료비를 달라고 하겠다고 했습니다. 서울이면 모를까 사실 시골에서는 승산 없는 다짐이죠.

그래도 항생제 먹여서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어떻게 뼈가 부러진 다리를 치료도 안 하고 그냥 데려갑니까?

밤새 아파하는 콩이를 어떻게 봅니까?


주인에게 다시 전화했습니다.

이대로 데려갈 수는 없다고. 제가 수술비를 보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냥 데려오랍니다.

울면서 말했습니다. 제가 전액 다 대겠다고.

그러자 그럼 하는 수 없지라고 하십니다.

3만 원 주고 사온 강아지에게 300만 원 들일 시골 노인은 안 계실 겁니다. 그리고 제가 데리고 나가 일어난 사고니 제가 책임져야죠.


제 모습을 보던 의사가 하도 딱했는지 그 동네에서 3년이나 군생활을 했다고 지인 할인 10%를 해주겠다고 합니다.


눈물이 글썽해서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잘한 거죠?"

"그럼요. 좋은 일 선한 일 하신 건 반드시 어딘가에서 돌려받으실 겁니다."


콩이는 혈액(혈구, 혈청, 가스) 검사를 하고, 진통제와 소염제 특수주사를 맞았고, IV정맥 카테터를 장착했습니다. 다행히도 수술 받을 정도로 몸 상태가 건강했습니다. 하지만 하얀 털이 북실거려 몰랐는데 다리털을 밀어보니 물려서 피 난 자국이 역력합니다. 수술 확인서 보호자 사인을 하고 주의사항을 들었습니다. 수술 후가 더 중요하다고. 두 달은 실내에서 생활해야 한다고....... 콩이는 태어나서 한 번도 실내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개입니다. 누가 콩이를.......


밤 11시 10분. 내일 오전에 수술하기 위해 보호 케이지 안에서 다리에 붕대를 감고 수액 맞고 있는 콩이를 면회했습니다.

콩이는 절뚝절뚝 제게 다가왔습니다.

제 눈에선 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콩아, 수술 잘 받아. 내일 또 올게. 미안해. 그 개들 더 빨리 쫓아내주지 못해서."


청구서에는 2,889,000원이 찍혀 있습니다.

동물병원에선 원래는 선납을 해야 수술을 해주는데, 의사의 선처로 일단 가진 돈만큼 내고 가고 퇴원할 때 완납하라고 해 주었습니다. 카운터에서도 제가 주인이 아니라 세입자임을 압니다. 가진 돈 10만 원을 내고 퇴원할 때까지 돈을 마련해 오겠다고 했습니다. 일주일 안에 그 거액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든 해야죠.


돌아오는 길에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랑은 아픈 상대를 모른 척 하거나 그냥 두지 않습니다.

아플 때 더 안아주고 잘해줍니다.

사랑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 책임지는 겁니다.

사랑은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랑이었다고 생각했던 지난 일들이 간단 명료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저는 콩이의 주인은 아닙니다.

하지만 콩이는 저를 사랑합니다. 저는 그 사랑에 반응할 뿐입니다.

오늘 사랑의 실천을 하게 해 준 콩이에게 고맙습니다.


자정이 넘어 집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사 준 목줄이 땅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목줄 끝에서 제가 왔다고 팔짝팔짝 뛰던 콩이는 지금 없습니다.

콩이 없는 집은 적막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 어린 것이 그동안 절 지켜주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지켜줄 차례입니다.

콩이가 수술 잘 받고 다시 건강해져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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