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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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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May 29. 2024

thanks for the miracle

기적에 감사합니다


'어떡하지요? 순간 아주 큰 새로 보였습니다.

앗~ 펭귄으로 보이기도...ㅋ'


모르는 어떤 분이 위 사진을 보고 댓글을 다셨답니다.

네, 접니다.

어제 세종보 위 한두리교 천막농성장에 도착하자마자 아픈 콩이 걱정과 막힐지도 모를 금강 생각에 범벅인 마음을 달래려 흐르는 물을 바라보던 제 모습을 누군가 찍었습니다.

아마 나귀도훈이었겠지요.


일주일 전에 신청한 밤 시간 지킴이라 그 사이 많은 일이 벌어졌지만 가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일거리를 한가득 가져갔지만, 어제 감사 일기를 쓰고는 피곤해서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밤새 새소리와 차 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금강 순례 르포 <세종보> 편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오늘의 감사 일기를 써보겠습니다.


밤새 추웠습니다.

윗 옷을 네 겹이나 껴입었고 라이너와 침낭 안에 들어갔지만 강바람은 차가웠습니다.

뒤척이다 눈을 뜨자 이상한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낯선 텐트 안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새벽 6시 반. 차곡차곡 침구를 정리했습니다. 갑자기 음악이 듣고 싶었습니다.

팬텀싱어의 <Il Canto>와 <Il libro de'llamore>를 휴대폰으로 작게 틀고 침구를 차곡차곡 정리했습니다.  

라이너, 침낭, 에어매트, 베개를 꼭꼭 누르고 말아 케이스에 착착 넣어서 배낭에 꼭꼭 넣었습니다.

청명 것까지 두 개씩. 하나둘 사모은 제 캠핑용품은 어느덧 2인용이 되었군요.

그러고 보니 아침잠 없는 청명은 침구 정리를 싹 하고 벌써 나갔네요.


텐트를 열고 바깥 천막 지퍼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우와~~ 햇빛 받아 찰랑거리는 금강이 어제보다 더욱 빛나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노숙이 체질에 맞나 봅니다.

콩이가 물리던 그 순간부터 이틀간 악몽 같던 기분이 차분해졌습니다.


강변으로 나아가보니 청명은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고 나귀도훈은 그 옆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강정 100배 명상 소리에 따라 저도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합장을 하고 뒤돌아 세종보를 향해 섰습니다.

눈을 감고 합장을 하고 그렇게 20배부터 100배까지 절 대신 호흡 명상을 했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흘러라 강물아 흘러라 계속 그렇게


2024. 5. 29.


7년 전 산티아고 순례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었던 자줏빛 방수점퍼를 청명에게 주고 검정색 점퍼를 입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오늘도 하나 비웠습니다.

집주인이 콩이 오면 깔아주라고 하신 헌 이불과 콩이가 매일 엎드려있던 보금자리를 손빨래해서 빨랫줄에 널었습니다.



콩이가 돌아오면 제가 돌볼 겁니다. 두 달간. 콩이가 걸을 때까지.

주인이 계단 위 제 현관 앞에 콩이를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콩이가 퇴원할 때까지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도와줄 사람이 생겼습니다.

콩이를 한 번 안아본 사람입니다.

그 촉감을 잊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이는 슬픔과 절망과 자책에 빠져 허우적대던 제 글을 읽고는 어제 전화 한 통으로 건져내 주었습니다.

격려해 주고 지지해 주고 돕고 싶다고 했습니다.

계좌번호 알려달라는 걸 곰곰이 하룻밤 생각해 그 마음을 받기로 했습니다.

강아지 용품으로.


제가 종종 뭔가 선물 받는 걸 이곳에 감사일기로 쓰지만, 사실 저는 아무한테서나 무얼 받지 않습니다.

누구한테 뭘 받을 때는 갚을 걱정 없는, 좋아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외에는 거의 독립적으로 해결하는 편입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며칠 전 뜬금없이 다시 비움 실천 3을 쓰면서 그동안 좋아하지 않던 당근에 가입했습니다.

저는 독특한 골동품이 아닌 이상, 남이 쓰던 물건을 쓰는 것도 내 물건을 누가 쓰는 것도 싫어합니다. 물건을 공유할 때는 그만큼 친밀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제가 당근에 가입해서 다시 비우기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골에는 헌 옷 수거함이 없어서 옷을 일반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려야 하기 때문에 재활용을 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그렇게 마침 며칠 전에 가입한 당근에 돈이 될만한 물건을 팔려고 찾아보았습니다. 리현이 콩이 병원비를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힘 닿는 데까지 제 힘으로 해보려고요. 리현은 지난 번에도 잔고가 0이라는 글을 읽자마자 곧바로 조심스럽게 선물해도 되냐고 묻고는 돈을 부쳐주었습니다. 어쩐지 도움의 방향이 거꾸로 되었습니다.


마침내 찾았습니다.

한 달여 전에 산 오르트립 자전거 리어패니어 백롤러 클래식 선옐로우를 올려놓았습니다.

딱 한 번 그것도 주차장에서 차로 이동할 때 사용한 거의 새 제품을 20% 할인 가격에 내놓았습니다.


* 강아지 수술비 마련을 위해 급매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기적처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건 아직 비밀입니다.

결과가 확실히 나올 때까지 신중 또 신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득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가 떠올랐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렸을 때 하나님은 미리 준비한 양을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가진 물건 중 값나가는 자전거 가방을, 그러니까 내 소중한 걸 바치겠다고 내어놓으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모든 일에 감사합니다.

제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가 닿았습니다.

모두의 염려가 이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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