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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동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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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n 05. 2024

동거 첫날

콩이 쾌유 일지-첫날밤


2024년

5월 27일 월 콩이 교상으로 인한 우측 요척골 분쇄 골절 사고, 입원

https://brunch.co.kr/@seventhstar/272

5월 28일 화 콩이 우측 요척골 분쇄 골절 교정 수술, 면회

5월 29일 수 면회 못함

5월 30일 목 면회

5월 31일 금 면회, 패드 100매와 간식 48개 배송.

6월 1일 토 면회, 켄넬 배송.

6월 2일 일 병원 전화. 새벽 4시 콩이 정상 대변 봄. 사료 잘 먹고 물 잘 마셔서 수액 끊음.

6월 3일 월 면회. 원터치 모기장 배송. 켄넬 조립.

6월 4일 화 면회. 로얄 캐닌 미니 인도어 어덜트 3kg 배송.

6월 5일 수 매일 칫솔용 간식 48개 배송, 오후 3시 병원. 퇴원. 동네 병원에서 소독과 동물등록. 모기장 환불.


사고 후 열흘.

지금 콩이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중문을 열어놓은 현관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도어 in door 생활을 해 보는 콩이. (오늘까지의 첫 병원 생활 말고)


올해 쓰지 않기로 작정한 신용카드를 콩이를 위해 과감히 긁었다.

병원 가는 길에 리현이 병원비 송금을 위해 전화했지만 주말도 없이 일하는 사람의 잔고를 몇 달이라도 비우는 건 미안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한 달이라도 통장 잔고가 그대로일 것이고 그럼 이자가 몇백 원이라도 붙을 터.

내 원칙만 철회하면 다른 사람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 정도 융통성은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2,850,000원. 지난번 것까지 도합 2,950,000원을 화끈하게 일시불로 결제했다.

월급의 두 배 반이다. 내가 봐도 난 정말 멋지다.


콩이를 위한 물품은 모두 후배가 쿠0으로 배송해 주었다.

열악한 배송기사 현실을 아는 그 사이트를 보고 있었으면 나는 고를 때부터 배송와서까지 스트레스 받을 게 뻔했다. 착한 후배가 콩이에게 선물 고르는 거 즐겁다며 직장 일하면서 몽땅 해결해 주었다.


이틀 전 손걸레로 세차해 둔 차에 후배가 사보내준 켄넬에 넣은 콩이를 조수석에 실었다.  

사고 다음 날, 수술한 콩이를 면회하고 돌아와 내비게이션에 이 집을 '콩이네'로 저장했다. 일 년 넘도록 주소를 찍어서 다녔다. 휴대폰에 찍힌 그 주소(주인 연락처)를 보고 수의사가 내게 특별 대우를 해주었다. 우리집이라고 하기에는 우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고 내 집도 아니니 우리집이 아니었다.


그 콩이네 이층에 콩이가 들어왔다.

처음이다.

목줄 없이 풀어주었을 때도 아래에서 이층을 쳐다만 볼 뿐. 계단엔 한 발짝도 올라오지 않던 이곳은 콩이에게 출입금지구역이었다. 사실 콩이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내 허락 없이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그런데 콩이는 지금 내 집 현관에 버젓이 엎드려 있다.

물론 켄넬 안이긴 하다.

하지만 헥헥거리는 숨소리 그리고 냄새가 집에 섞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무얼 해 줄 때 차라리 돈을 내는 것이 제일 깔끔하고 쉬운 방법이다.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함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말.


그렇게 큰일을 치르고 한숨 돌리고는, 코르크 마개를 못 열어 담양에서 보내준 모스카토를 못 마시고 대신 청주 북토크 때 받은 컨츄리 캠벨 드라이 와인을 한 잔 마셨다. 축배가 아니라 안정주였다. (이럴 때 차가운 맥주는 내 체질 상 별로 좋지 않다.) 평소에 술을 즐기지도 않지만 혼자서 술을 못 마시는 이유는 밤중에도 무슨일이 생기면 운전을 해서 나가야 할 텐데 도와줄 아무도 없으니 술을 마시지 못 한다. 하지만 오늘은 할 일을 다했고 더 일어날 일도 없을 듯했다.

눈꺼풀이 내려앉는데도 내가 안 보이면 콩이가 불안해 할까 봐 방에 못 들어가고 거실 미니 소파 위에서 읽던 책을 마저 다 읽었다. 딱 잠들면 좋을 이때 굳이 노트북을 켜고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는 이 예측할 수 없이 꼬여 들어 생경한 현실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오늘부로 콩이의 주인이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차차 설명할 날이 있으리라.

옷고름 자르듯 매정하게 인연을 끊고, 보지도 듣지도 못한 엉뚱한 지역 낯선 집에 와서 콩이를 만났다. 몇 달이 지나도 그대로 비어 있던 집에 넉 달 만에 들어와 일 년 넘게 매일 콩이를 산책시켰다. 따지고 보면 콩이 덕에 내가 산책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주인 없는 집에서 서로를 의지했다.

그러다 사고가 났고 하필 주인이 풀어줄 때가 아닌 내가 산책시킬 때였다. 무조건 살려야 하는 생명이기에 애걸복걸 살려냈다. 그리고 이것저것 처리하다 보니 서류가 필요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콩이의 서류상 주인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콩이가 다섯 살이 아니라 일곱 살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동거가 시작되었다. 바로 오늘부터.  


선하고 친절한 의사가 신신당부하셨다. 수술 후가 더 중요해서 두 달까지는 절대 안정 실내 사육이 필요하다고. 하는 수없이 콩이는 내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 텅 빈 공간에 개가 한 마리 들어오니 집은 여전히 큰데 하나 있던 공간에 둘이 있으니 꽉 찬다.

올라오자마자 오줌을 싸더니 잠시 후 나오려고 발버둥 치더니 대변을 두 번이나 보았다. 고무장갑을 끼고 똥을 집어냈다. 패드를 순식간에 세 개나 갈아치운다. 뭐든지 적고 간소하게 쓰던 생활이 갑자기 휘청댔다.


혼자 저녁밥 먹는 게 미안해 중문을 닫고 저녁밥을 먹었더니 비로소 엎드려 조용해졌다.

잠이 드니 코 고는 소리가 코옥코옥 들렸다. 처음 들어본다. 콩이의 코 고는 소리.


퇴원 전 날 유기농매장에 가서 한두 주치 장을 봐왔다. 한동안 집 안에서 웬만한 걸 해결할 수 있도록. 달걀, 두부, 콩나물, 파인애플, 참외, 완숙 토마토, 국거리와 양념 소고기, 호박, 양파, 당근. 오이, 부추, 대파, 우유. 이 정도면 든든하다. 50% 할인하는 양념 불고기를 뚝배기에 끓여 밥에 얹어 먹었다. 맛은 모르겠고 이렇게 에너지 소비가 많을 땐 단백질 섭취를 해야 한다는 공식이 작동했다. 아프면 콩이를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공식 국가자격증을 가진 요양보호사다. 시골 할머니 모시려고 취득했는데 엉뚱하게 개를 돌보게 되었다. 아무렴 어떤가. 성격 아홉 가지 유형 중 내게는 돌봄이 두 번째로 많은 걸 애니어그램 검사로 알고 있다. 누구를 돌봐도 잘 돌볼 자신 있다. 어떻게 보면 변덕이 죽 끓듯하는 유별난 할머니보다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한결같이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개가 더 나을 수도 있다.   


12시 간격으로 사료 먹는 걸 병원에서 익혔는지 밤 9시 반쯤 되니 콩이가 요동한다. 사료를 주니 게눈 감추듯 먹는다. 깜빡하고 약을 빼먹어 다시 사료 조금에다 약을 뿌려주지만 허기가 가신 콩이는 도리질을 한다. 하는 수없이 손바닥 위에 사료를 놓고 남은 먹인다.

 

콩이와 동거 첫날.

누군가와 다시 함께 살 수 있을까.

그 첫 시험의 날.

알 수 없이 얽혀 들어오는 인연의 실타래를 가늠할 수 없다.


사랑이 죄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이번에도 책임감을 들이대겠다.

그러나 법적으로 얽히는 건 예상도 못한 일이었다고.

그건 얼떨결에 결혼했는데 혼인신고까지 해 버리는 매우 중차대한 일이라고.  

그래서 지금 매우 복잡하다고.

그러나 이 또한 또 어떻게 되겠지 하며.

뻑뻑해서 아픈 눈을 껌뻑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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