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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n 06. 2024

동거 이튿날

콩이 쾌유 일지-리뷰와 소변 사태


새벽 다섯 시 반쯤 밖에서 버르적거리는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다.

커튼을 젖히고 중문을 여니 콩이가 움직거린다.

소변이 마려워 그러나 싶어 켄넬 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무게가 10kg이 넘으니 너무 무거워 허리가 나갈 듯하다.

켄넬 밖으로 나온 콩이는 변은 보지 않고 두리번거리고 종종 걷는다.

켄넬 안에는 시커먼 똥 두 덩이가 있었다. 변기에 그것들을 버리고 패드를 갈아주고 콩이를 다시 집어넣었다.


아침 일곱 시 넘어 집주인댁 차소리가 들렸다. 콩이가 알아듣고 흥분했다.

하지만 아홉 시는 넘어야 서로 방문할 만하다.


오전 9시. 면회 전에 밥과 약을 먹이려고 사료에 오리고기 통조림을 조금 섞어 약을 비볐다.

콩이가 조금 먹더니 거부한다. 약 냄새가 싫은 것이다.


아홉 시가 넘어 일층으로 내려갔다.

작년 말에 주신 김장김치 통을 반 년 만에 다 비워 그 안에 '이것이 라면' 번들을 넣어서 드렸다. 유기농 밀가루인 걸 아실까 싶지만 젠 체하는 듯해 설명해 드리진 않았다.

이층으로 올라오신 여주인은 콩이를 켄넬에서 능숙하게 꺼내 앞다리를 들고 대화를 하셨다. 아니 일방적 말씀이셨지만 내가 보기엔 콩이도 또랑또랑 듣는 듯했다.

그동안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또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세입자가 매일 개를 산책시켜줄 땐 고마우셨겠지만 막상 사고가 나면 일부러 낸 게 아닐지라도 원망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인간관계란 그렇다.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는 욕을 먹어야 하는 그런 공식이 저절로 성립된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고 내 개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콩이를 보살피는 나를 보고 마음이 많이 풀리신 듯하다. 나더러 고생한다고 여러 번 말씀하신다.


고생은요, 제가 뿌린 것 제가 거두는 겁니다.  


주인이 콩이를 꺼낸 김에 욕실에 넣어서 소변을 보게 해 보았다. 소변 볼 기미는 없고 욕실에 털이 날렸는지 내 목구멍만 칼칼하다. 이 증세는 양치를 해도 온종일 계속되었다.


주인댁이 내려가시고 나는 오늘 할 일 중 제일 먼저 할 일을 했다.

전날 퇴원하면서 주치의에게 감사인사를 하며 말했다. 실은 내가 작가인데 언젠가 선생님의 선행을 알려도 괜찮겠느냐고. 실명을 공개해도 되느냐고.


지난번 세종보에 들렀다 면회 갔던 토요일, 선생님이 물으셨다.

"00에서 오시는 길이세요?"

"00에서 세종보 들렀다 오는 길이에요."

"거긴 왜요?"

"흰목물떼새 알 지키려고(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다시 커져서) 동물보호하러요."

"아~ 좋은 일 많이 하시는 분이시구나."


그 좋은 일 많이 하시는 분이 사실은 작가였다. 정 많은 작가.

선생님은 내게 더 고맙다고 하시곤 이용후기를 써주시면 원장님이 좋아하신다고 하셨다.

그 사이트는 세월호 참사 이후 쓰지 않던 곳이었지만 특별히 후기를 쓰겠다고 했다. 내 필력을 다해서.

이번 시즌은 내 원칙 깨기가 미션인가 보다.

이 시기가 지나면 나는 얼마나 융통성 있고 폭 넓은 인간이 되어 있을까?


***

하루를 마무리하는 오붓한 저녁 산책 중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동네 개들의 습격으로 저희 강아지 오른쪽 다리가 분쇄 골절되었습니다.


대부분 병원이 영업마감해 절박했던 그 밤에 00 동물메디컬센터가 처참하게 다친 강아지를 받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멋진 천사를 만났습니다.


제가 본 수의사 중 가장 친절하고 유능하고 핸섬한 차00 내과과장님 덕분에 저희 강아지가 입원해서 수술도 잘 받고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차00 선생님 아니었으면 저희 강아지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빠른 사태 파악 및 판단과 정확한 진료와 다른 과 연계 치료 그리고 무엇보다 보호자를 따뜻하게 안심시키고 강아지에게 최상의 치료를 이끌어내신 차00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아울러 친절하고 밝은 접수처 담당자님들과 차 과장님 휴가 때 상세하게 설명과 조언해 주신 여 선생님 및 입원실에서 열흘 간 저희 강아지를 돌보아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고마운 마음에 평생 처음으로 이렇게 긴 후기를 써봅니다.


참고로 저는 서울에서 방송 출연하는 매우 유명한 동물병원 고객이었습니다. 이번 사고로 대전에 이렇게 좋은 동물병원이 있음에 놀랐습니다.

내내 번영하기를 기원합니다.)

- 두 사이트에 썼는데 글자수 제한이 있어 (   ) 가감이 있음.

***

 

할 일을 마친 후 기운이 없어 잠깐 누웠다. 거실에서. 콩이가 불안할까 봐 방에도 못 들어간다.

잠시 후 콩이 버르적거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뜨고 욕실로 옮겨보지만 소변은 보지 않았다.

정오였다. 


김치가 떨어져 사 둔 오이 다섯 개로 오이소박이를 담갔다. 한식조리기능사 실기 교재에는 오이 한 개 소박이 완성에 20분인데 다섯 개라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시험 치르듯 진지한 작업 소리가 전달되었는지 내가 보이지 않아도 콩이는 낑낑대지 않았다.

잠시 후 아래층에서 전화가 왔다. 내려갔더니 주인이 물김치와 햇김치를 담가주셨다. 콩이 간식도 함께.

먹을 게 오간다면 이제 두 층 사이는 회복되었다고 본다.


15시. 콩이 칫솔 간식 한 개와 먹다 남은 사료 티스푼으로 떠먹임(가루약이 남아있어서 꼭 먹어야 함).  칭찬으로 캔 오리고기 두 스푼 먹임.  


18시. 버르적거리기에 소변이 마려운가 하고 꺼내서 화장실에 넣어 주었으나 방실방실 웃으며 쓰다듬으라고만 한다. 쓰다듬어 주다가 빗질을 해주었다. 사고 전날 빗질하고 처음이니 한 열흘만이다. 시원한지 가만히 있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줌은 누지 않기에 다용도실로 옮겨져 보았으나 역시 누지 않고 쓰다듬으라고만 한다.  


21시. 남은 오리고기 통조림 반 캔에 약을 비벼 먹였다. 잘 먹지 않아서 티스푼으로 한 스푼씩 떠 먹이니 먹는다. 아기가 다 됐다. 약과 오리고기를 다 먹은 후 물도 마시게 한 다음 로열 캐닌 사료를 주니 먹지 않는다. 내 실수.


30분 후 오줌 누게 하려고 욕실에 내놓아도 영 기미가 없다. 온종일 한 번도 소변을 보지 않았다. 병원에서 내내 소변줄 끼고 있었는데 원래 방광염 기운이 있어서 투여하는 항생제로 나아간다고 했었다. 다시 소변보는 게 쉽지 않은 듯했다. 이러다 다시 방광염이 도질까 봐 안고 몰래 일층으로 내려가 정원에 살포시 내려주었다. 평소에 영역 표시하느라 우체통 밑에 항상 오줌을 누었는데 냄새만 맡고 내뺀다. 미친... 몇 걸음 못 가 붙잡았다. 아무리 개라도 자기 상태를 그렇게 모를까? 너무 속상해서 안고 올라와 캔넬에 넣고 중문을 닫고 커튼을 쳐 버렸다.


벌써 밤 열 시.

손목이 시큰거리고 아프다. 가뜩이나 가느다란 손목이 콩이 돌봄 하루 반 만에 나가버린 듯하다.

목은 계속 칼칼하고, 산책만 하고 와도 베란다에 벗어놓던 내 옷엔 개털 투성이다.

아~ 동거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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