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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동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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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n 07. 2024

동거 사흗날

콩이 쾌유 일지-소변 시도와 공복 토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다섯 시 반 경에 눈을 떴다. 

덜거덕덜거덕 콩이가 켄넬 철망을 들이받는 소리 때문이었다. 

엊저녁에 화가 나서 잘 자라는 소리도 안 하고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가 잤는데, 밤새 어땠는지 걱정됐다. 

물그릇과 밥그릇을 케이지에서 빼놓았는데도 여전히 소변은 보지 않았다. 


약과 밥을 동시에 먹여야 하는데, 요 녀석이 사료에 약을 뿌려주면 사료 자체를 안 먹는다. 

제일 싸구려 사료와 동네에서 부어준 더러운 밥 찌꺼기를 먹던 주제에 로열캐닌을 주는데도 고대로 남긴다.  

엄지손톱만큼의 딸기잼에 아침 약을 섞었다. 손가락으로 떠서 철망 사이로 넣어주니 처음엔 냄새 맡다가 잼에 혀를 대보더니 할짝할짝 핥아서 다 먹었다. 1차 임무 완료.


다음은 켄넬에 딸린 플라스틱 물그릇과 도자기 접시에 새 사료를 채워 케이지 안에 넣어주었다. 입도 대지 않는다. 아침밥을 먹어야 하는데...... 엊저녁도 안 먹었는데......


출근 준비를 다 하고 초조하게 아침 9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병원 업무를 시작하는 9시. 

09:00 땡 하고 전화를 했다. 

이틀 전 퇴원하고 이동하면서 지린 것 말고는 콩이가 이틀째 소변을 보지 않는다고. 접수처에서 의사에게 연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더는 기다릴 없었다. 출근해야 하니까. 


운전을 하고 가는 도중 의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치의는 오후 한 시에 출근해서 다른 여자 의사였다. 

"보통 24시간 소변을 보지 않으면 소변독이 신장으로 침투해 위험해요. 방광을 살살 마사지해 주어서 소변을 보게 하셔야 해요. 밖에서 키우던 개는 케이지 안에서 소변을 보지 않을 거예요." 

콩이는 병원에서도 대변은 보는데 소변을 보지 않아 소변줄을 끼우고 있었다. 

"어젯밤 소변보게 하려고 데리고 나갔다가 도망가서 바로 데리고 들어왔어요."

"목줄을 해서 단단히 잡고 살살 산책을 시켜서 소변을 보게 하세요. 그래도 소변을 못 보면 병원에 데려와 소변줄을 끼워 보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산책시켜 보세요."


출근길에 암담했다. 까딱까딱 학교에 도착. 학생들 원고 봐줄 형광펜을 사서 스튜디오에 올라가니 강의 시작 후 몇 년 만에 최초로 2분 지각. 동거 후 생활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쉬지 않고 연강 세 시간 후 부리나케 집으로 왔다. 


14:10 목줄을 끼워 안고 내려갔다. 살살 산책을 시켜 보았다. 어떻게든 소변을 보게 해야지 안 그러면 다시 병원으로 데려가야 하니까. 평소에 꼭 마킹을 하는 우체통 아래 지나 골목으로 나가 앞집과 느티나무 사잇길 모래더미까지 가서 냄새를 맡아보고 다리를 들어보지만 오줌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안다. 나도 소변줄 끼고 전신마취 수술 후 다시 소변을 보기까지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니까. 요의가 느껴지고 방광이 빵빵해져서 화장실에서 물 틀어놓고 앉아있어도 나오지 않는 그 고통.  

콩이 역시 실패했다. 

또 병원에 가야 하나 하고 초조하게 다시 병원에 전화해 보았다. 이번엔 주치의와 연결이 되었다. 챠트를 보는 듯, 결석이 없다고 하더니 "산책을 좀 더 시켜볼까요?"라고 했다. 분명히 내가 했던 일을 다시 해보라는 건데 그 목소리만으로도 해결책을 얻은 듯 위안이 되었다.  


다시 안고 나가 땅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반대 방향 산 쪽으로 갔다. 뜨거운 대낮에 동네에는 아무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창문으로 바깥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손님들 다녀 간 것도 벌써  앞집 통해 주인 귀에 들어가서 추궁 아닌 확인을 받았다. 시골은 안 보는 듯 보면서 뒤에서 말이 많다. 

집주인은 동네 사람 알면 안 되니까 두 달 동안 콩이가 입원한 걸로 하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나다니면 소문이 날 게 뻔하다. 그러나 지금은 위급 상황. 소문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응급실에 가느냐 안 가느냐가 중요하다. 

 

콩이는 아픈 것도 잊고 빨빨거리고 가더니 마음에 드는 풀더미 옆에서 몇 번 다리를 들고 시도했다. 바보같이 철심 박은 다리를 지탱하고 멀쩡한 다리를 든다. 


오~ 마침내 콩이가 진한 노란빛 소변을 쪼끔 보았다. 얼마나 반갑던지... 콩이 신장에 이상이 생기지 않으니까. 한 시간 걸리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용을 쓰고는 간신히 집에 들어왔다. 

후배가 사 보내준 누빔매트가 도착해 켄넬 안에 깔고 그 위에 소변 패드를 깔고 콩이를 넣어주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40년 지기인데 브런치 제목만 보고 무슨 좋은 일 있느냐고. 

동거남은 아니고 수컷 동거견이라고 했더니 그 개가 내 임자가 아니냐고 한다. 무슨 그런 악담을. 그나저나 콩이는 나 만나서 좋겠다고 한다. 그러게. 콩이 평생에 모기 파리 없는 깨끗한 곳에서 지내는 건 처음일 테니까. 게다가 양질의 사료와 꿀맛 같은 간식을 따박 따박. 그래도 콩이는 바깥 생활이 좋으려나? 

친구는 콩이로 인해 남자가 연결되는 것 아니냐고 농담했다. 작가보다 더한 상상력이다. 현재 나는 남자에게 관심이 전혀 없다. 그래도 슥 기억을 훑어보니 스무 살은 어려 보이는 수의사는 아닐 테고. 잊고 있던 사람이 한 명 떠올랐다.   


콩이가 다친 장소에 다시 갔던 사고 다음 날. 현장엔 풀린 개들만 그대로 있고 "계세요? 계세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112에 신고를 했었다. 유기견 신고였다. 그런데 경찰과 부르지도 않은 119 소방차와 소방대원이 오고 나니 현장 사무실에서 사람이 나왔다. 그 개들은 유기견이 아니었다. 나는 그곳 직원이라는 사람에게 영수증을 주고 연락처를 알려주고 왔다. 


다음 날 당근에 자전거 리어패니어를 올려놓은 직후였다. 

사장인 가해견주 전화가 왔다. 자초지종을 묻길래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끝까지 다 들은 견주가 상상도 못한 말을 했다. 

그것이 며칠 전에 말했던 기적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할 때 일어났던 기적처럼. 

내가 가진 걸 털어 내놓자 가해견주 연락이 왔고 그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시행되려면 아직 넘고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다. 

일단은 퇴원도 내 돈으로 시켰고 통원치료도 내 돈으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물론 나는 그에게 일말의 개인적인 관심도 없다. 하지만 떠오른 김에 상황 보고는 해야만 했다. 


16시. 산책한 콩이에게 칫솔 간식 한 개 주고, 급한 일처리를 마친 나도 식빵 한 조각과 루이보스티 탄 우유 한 잔을 마시고 까무룩 미니 소파에 누워 잠들었다. 


잠시 후 웩웩 거리는 소리에 깼다. 

18:45 누빔매트에 콩이가 뭔가를 토하더니 금세 핥아먹었다. 뭔가 하고 쳐다보니 다시 웩웩 노란 위액을 토해냈다. 깜짝 놀라서 병원에 전화해 알렸다. 금방 주치의 전화가 왔다. 


"사료 언제 먹었어요?"

"아침에 약만 딸기잼 발라 먹이고 사료 케이지 안에 두고 갔는데 안 먹었어요. 어제도 남겼고요." 

"사료에 약이 들어갔는 줄 알고 안 먹는 거예요. 노란 위액이면 공복 토예요. 사료 안 먹으면 캔 먹여보셨어요? 캔 먹여보세요."

"저녁 아홉 시 (식사시간)에는요?"

"지금 반 먹이고 아홉 시에 반 먹이세요."


아~ 정말 수의사가 없다면 어떻게 개를 키울까?

습식 오리고기 캔을 열어서 주니 콩이가 거침없이 아주 잘 먹었다. 

19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콩이는 먹고 누워 자고 편안해 보인다.  


나는 21시가 넘어서야 저녁밥을 지어서 김치랑 먹었다. 


22시. 살금살금 밤 산책. 마침내 쏴아- 쏴아- 콩이가 두 차례나 시원스레 소변 줄기를 뽑아냈다. 

만세~. 

구토를 하면 외면하는 게 아니라 걱정부터 하고, 소변을 보면 속으로 만세를 외치고, 토사물에 젖은 매트를 맨손으로 세탁하는 나를 보면서 이것이 사랑이지 생각한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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