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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n 08. 2024

동거 나흗날

콩이 쾌유 일지-아욱죽과 용변


콩이가 퇴원한 날부터 부쩍 무거운 걸 들자 사흘째 밤새 오른팔이 심하게 아팠다. 잠결에도 물파스를 발라야 하는데... 를 비몽사몽 되뇌었다. 때문인지 새벽에 깼으나 다시 잠들어 근래 드물게 7시 대에 일어났다.


08시 아침 가루약을 딸기잼에 섞어 습식 캔 칠면조와 생선에 묻혀 주었다. 몇 덩어리 먹더니 거부. 손으로 집어서 입에 대 주어도 도리도리.

소고기 넣고 미역국을 끓이면서 소고기를 몇 점 건져 물에 씻어 주었는데도 도리도리.

아주 배가 불렀구먼, 불렀어.


12시. 집주인 전화. 올라오시라고 했더니 스테인리스 면기 가득 된장 아욱죽을 쑤어 담아 오셨다.

집주인께 어제 콩이 용변 곤욕 치른 일을 말씀드렸더니 소변보게 해보시겠다고 한다. 나더러 얼른 식기 전에 죽을 먹으라고 하시고는 목줄 맨 콩이를 한 손으로 옆구리에 척 걸치신다. 평소에 무릎이 아프셔서 내가 안아다 드린다고 해도 마다하시고 저벅저벅 계단을 내려가신다. 그 모습이 여장부 같아 보였다. 아마 그 힘으로 평생 가정과 가업을 일구셨으리라.


몇십 년 만에 먹어보는 아욱죽. 내가 죽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엄마가 아욱죽을 해주셨기 때문이었을까. 진밥을 좋아하는 이유는 할머니가 늘 진밥을 지으셨기 때문이고. 얼마 만에 먹어보는 아욱죽인가. 좋아하지만 죽집에서도 팔지 않아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던 아욱죽. 그런데 죽 속에 굵직한 감자 두 조각도 있어 더 맛있다. 

사람마다 귀한 음식은 먹어본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내게도 그런 소울푸드가 몇 가지 있다. 그걸 해주셨던 분이 계시다. 그것만 생각하면 서운함이나 원망도 녹아버린다.  


잠시 후 주인이 콩이를 꿰차고 올라오셨다. 콩이가 오줌을 두 번이나 누었단다.

"우와~ 잘했어요. 잘했어."

콩이 다리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 발바닥을 닦아주었다.


온종일 콩이가 보이는 거실에서 세종보 르포를 썼다. 한두리교 밑 천막농성 41일째다. 막상 손대고 보니 자료가 여기저기 많다. 자료에 자료를 추적하여 조사하다 보니 새삼 내가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


17시. 주인이 다시 전화를 하셨다. 콩이 오줌 누이고 가시겠다고.

콩이에게 목줄을 매 안아 드렸더니 다시 옆구리에 끼고 내려가셨다. 숲 쪽으로 간 콩이가 다리 드는 게 보인다. 나는 그새 계단 창틀을 젖은 신문지로 닦고 과일 껍질을 텃밭 앞 구덩이에 버리고 왔다.

그런데 콩이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까지 데리고 가신 걸까? 아직 많이 걸으면 안 되는데......

잠시 후 전원주택 단지 쪽에서 콩이가 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집주인 옆에 맞은 편 집 여자도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제 콩이가 돌아왔다는 소문은 동네에 다 난 셈이다.


올라오신 주인이 콩이가 이번엔 소변에 대변 두 번까지 보았다고 하신다.

"어머, 큰일 하셨네요. (콩이) 잘했네. 잘했어."

세상에 어떤 동물이 똥오줌 쌌다고 이렇게 반김을 받을까?  


집주인이 가고 한 마디가 떠오른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우리는 콩이를 위해 한 마음 한 뜻이다.


18시. 칫솔 간식 주고 시원하게 물 마시게 하고 물그릇을 치워주었더니 모로 누워 잠을 잔다.

가로 35cm,  세로 55cm 캔넬은 콩이가 발 뻗고 누우면 딱 맞는다. 얼마나 답답할까? 그래도 완치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사람도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동안 갇힌 공간에서 훈련해야 하는 것처럼. 어쩌면 내게 이 두 달은 그런 기간이 아닐까.


18:30 또 웩 노란 위액을 토한다. 공복 토.

로열 캐닌을 반 컵 주었더니 먹지 않는다. 한 알을 집어 입어 넣어주어도 뱉는다. 하는 수없이 사료 반의 반 컵에 습식 캔 닭고기를 섞어 그릇에 주었더니 잠시 후 싹싹 핥아먹는다. 급식 성공!   


좀처럼 통화하지 않는 옛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콩이로 인해 발이 묶인 내 소식을 듣고 강아지 용품을 사보내주겠다고......

두 발 늦었지만 충분히 고마웠다.

참 인정 많은 사람이다.


19:30 까망치즈식빵 사이에 양배추, 당근, 양파 채 썬 것과 달걀물로 토스트를 만들어 저녁식사를 한다. 


21시. 딸기잼에 저녁 가루약을 섞어 손가락으로 주었더니 도리질하다가 핥아 먹는다. 손가락을 개 입에 넣다니 보통 믿는 사이가 아니다. 마무리로 깨끗한 물을 주었더니 벌컥벌컥. 오늘 임무 완수.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콩이 어떠냐고.

콩이는 복도 많다.

고마운만큼 열심히 원고 교정을 본다.


콩이는 옆으로 누워 드르렁 드르렁 꿀잠을 잔다.

 

2024년 6월 8일 토요일, 오늘은 밀양행정대집행 10년.

콩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밀양에 갔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갔을 그곳에.

비가 무지 왔다던데.......

예전에 서울에서 참석한 사진전시회 말고는, 이상하게 밀양과 인연이 닿질 않는다.

콩이 때문에 오늘도 그곳에 가지 못했다.

이틀 전 현충일에 청주~세종보 자전거 순례에도 가려고 했다가 못 간 똑같은 이유로.


언젠가 많은 사람이 오는 어떤 곳에 누군가 오지 못하더라도 오늘의 나처럼 못 갈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곳에 불참한 사람을 향해 마음이 없다고 섣부르게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오늘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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