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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n 09. 2024

동거 닷샛날

콩이 쾌유 일지-새벽과 초저녁 소변


덜컹덜컹 콩이가 켄넬에 부딪힌다. 

"나갈게....... 안녕, 잘 잤어?"


06:50~57 캔넬 문을 열고 콩이를 나오게 한 후 목줄을 한 다음 오른쪽 옆구리에 안고 계단을 내려간다. 느티나무 앞 모래더미까지 가니 소변을 본다. 다리 옆에도 한 번, 이웃집 밭 배추에도 한 번, 다시 내려오면서 이웃집 화단에도 한 번. 도합 네 번의 소변을 보았다. 수고했어요. 오늘도. 


들어와 을 마시게 하고, 소독약으로 상처 부위를 찍어주었다. 


거실에 요가 매트를 깔고 아침 스트레칭을 했다. 콩이는 내 일상을 샅샅이 보고 있다. 


08:00 딸기잼에 아침 가루약 섞어서 손가락에 묻혀 주니 핥아먹는다.  

08: 07 닭고기 반 캔과 로열캐닌 사료 조금을 섞어주었다. 보는 눈빛이 떨떠름하다.  

 

09:40 자전거를 꺼내 타고 사고 현장을 지나가 보았다. 공터에 없던 울타리가 높이 쳐있다. 아마도 가해견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펜스를 아닐까. 어슬렁 거리던 개들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가보지는 않았지만 모두 묶여있거나 케이지 안에 있을 것이다. 


가해견주와 처음 통화했을 때 부탁했었다. 

직원이 개들을 구타하는 것 같던데 개들이 문 건 잘못했지만 때리지는 마시라고. 그리고 목줄이 너무 짧으니 좀 긴 걸로 늘여주시라고. 


콩이가 물리는 순간 그것들이 나를 물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는 꼬리를 감추었다. 

사고 직후에 나는 다친 콩이를 안고 그 개들을 향해 눈에 불을 켠 채 큰소리로 엄포를 놓았었다. 

"너희들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정말 나는 그 개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유기견인 줄 알고 요청한 경찰이 왔고 소방대원도 왔다. 직원은 개들에게 목줄을 묶었고 안 보이는 데서 빗자루로 팼다. 여태 그 집 마당과 옆 건물 공터에서 자유롭게 놀던 개들은 콩이를 문 대가로 묶여야 했고 두들겨 맞기도 했다. 그 정도면 벌로 충분했다. 그 개들도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 


10:00 인근 대전교구 성당 주보를 보았더니 맨 앞 면 그림이 독뫼공소(산막골, 작은 재 줄무덤성지)였다. 그 근처에 집을 얻고 그 성당에 다니려고 했었다. 그런데 운명은 나를 이 동네로 오게 했고, 생각지도 못한 성당에 발을 들였다. 


다행히 비슷한 시기에 오신 신부님은 온화하시면서도 실천적이셨다. 이중 스테인리스 컵을 비치하면서 종이컵을 줄이고자 하셨고, 휴지를 만들 테니 우유팩을 씻어서 가져오라고 하시고, 노인을 위해 엘리베이터 옆에 의자를 짜 맞춰 놓는 분이셨다. 제3세계를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으신다. 지은 책을 읽어보니 사제로서 배울 점이 아주 많은 분이셨다. 


"손 좀 잡아 줘."

강론 시간 첫마디, 죽기 직전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 손 좀 잡을 사람을 찾다가 아무도 없는 이 낯선 곳까지 왔다. 

죽기 전에 손 잡을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훑어보던 주보 3면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난이 있었다.  


[피조물 보호를 위한 50가지 손쉬운 방법] 

16. 기후위기 대응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기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이미 1.5도 상승했다는 관측 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기상기구는 아시아 온난화 속도가 세계 평균보다 빠르고 해수면 온도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기후는 모든 이의, 모든 이를 위한 공공재"(찬미받으소서 23항)이기에 가톨릭교회의 구성원들은 정의와 평화, 창조질서 보존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가장 앞장서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매주 각 교구별로 석탄화력발전소가 들어서는 삼척의 맹방해변을 방문하여 연대활동을 하고, 대전교구는 오는 6월 12일 수요일 방문 예정입니다. 대전교구 생태완경위원회는 보문산 난개발과 새만금 신공항 건설, 세종보 재가동을 막기 위해 거리 미사로 함께합니다. 현장을 방문하지 못해도 우리는 가까운 가족, 친구들에게 오늘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응방안을 모색할 있습니다. 참여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아낌없이 내어 주라고 권유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힘과 빛을 주십니다."(찬미받으소서 245항)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 생태환경위원회 


어찌나 반가운지. 개신교 모태신앙으로 살면서 예배와 기도와 헌금 외에는 가족 이기주의와 개교회 공동체를 위한 사랑만 들어보다가 비로소 생명사랑의 실천 방안을 천주교에서 직접적으로 제시받다니, 그것이 현재 내 삶의 행태와 딱 들어맞다니. 이것이 종교가 인간에게 주어야 할 비전 아니겠는가. 


12시. 아직도 사료와 캔을 먹지 않아 손으로 닭고기 통조림 조각을 입에 댄다. 처음엔 도리질하더니 나중엔 먹는다. 가끔 붙어있는 로열캐닌 알갱이는 뱉으면서. 아주 어이가 없구먼. 


14시. 콩이는 코를 골며 잔다. 드르렁드르렁. 만약 어떤 남자가 저만치에서 코를 골고 자고 있어도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까? 개라서 받는 혜택이 참 많다. 


16:10 목이 말라 보여 새 물을 받아 턱 앞에 대주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나도 모르게 세고 있었다. 서른여섯 번 혓바닥을 날름거려 물을 마셨다. 


20:00 짧은 산책 중 소변 다섯 번.

20:10 물 마시고 로열캐닌 먹고 딸기잼에 저녁가루약 먹음. 

         잘했어요. 참 잘했어요.~~ 


거실에서 자정까지 글을 쓰니 콩이가 힘들어하는 듯하다. 

그때 깨달았다. 

바깥은 밤 8시면 어둡고 깜깜해진다. 

콩이는 그때부터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어둠 속에 있던 개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전깃불.

나는 노트북을 작은방으로 옮기고 거실 형광등을 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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