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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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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n 03. 2024

thanks bolt&nut

나사에 감사합니다


새벽 세 시 반까지 프리뷰를 하고 잠깐 누워 허리만 편다는 게 깜빡 잠을 잤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과 점심까지 꼬박 구성안을 작성했습니다.

A4 62매를 42매로 만들고 나서야 송고할 수 있었습니다.


200cc 한 컵 쌀로 밥을 하면 두 끼 먹습니다.

밥을 하고 달걀을 삶아 먹었습니다.  

콩이 면회 가야 하니까요.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습니다.

커피믹스에 우유 타서 한 잔 마시고 싶은데 믹스커피가 없네요.

건너뜁니다.


두 시 반에 길을 나섰는데 도로 공사로 길은 막힙니다.

비몽사몽 병원에 도착해 콩이를 만났습니다.

어제 일하느라 못 봤더니 콩이 눈이 반짝반짝 절 보더니 아픈 다리로 겅중겅중 뛰려고 합니다.

매번 잠드는 걸 보고 오는데 오늘은 면회시간 20분이 다 되도록 잠 들려다 다시 깨고 맙니다.


다시 한 시간 걸려 집에 옵니다.

왕복 세 시간 걸리는 면회.

이제 이틀 후면 콩이는 퇴원합니다.  


후배가 보내준 켄넬을 조립했습니다.

은색 볼트 열 개를 구멍마다 넣고 아래에서 너트를 구멍에 맞춰 돌리고 위에서 조입니다.

하나씩 하나씩 나사를 맞춰서 조일 때마다 기분이 일 센티씩 내려앉습니다.


음악도 없이 고요한 중에 나사를 조이는데 마음은 조여지지 않습니다.

조립하는 거 좋아하는데 신이 나지 않습니다.

손으로 하는 일을 할 때면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나 봅니다.

짜잔~ 이거 봐라. 나 잘하지? 이렇게 으스대고 싶은데 보여줄 사람이 없습니다.


"콩이야, 이거 네 집이야, 잘 만들었지?"

이럴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래도 꽈악꽉 열 개를 조이고 또 조였습니다.

문을 달고 물통도 달고 깔판도 넣어 완성했습니다.

바퀴는 구멍이 막혀 못 달지만 바퀴까지 달면 무거워서 콩이 넣고는 들 수도 없을 터라 괜찮습니다.  


새 개집에 남의 개털이 묻어 있습니다.

하얀 단모입니다.

개를 키우는 누군가 캔넬을 샀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되판 듯합니다.

리퍼상품 좋아합니다.

사용하지 않은 거라면 소비하는 마음이 덜 무겁거든요.

이렇게 마음이 통하니 후배에게 용품을 부탁했겠지요.


콩이가 들어가는 순간 이 개집도 중고가 될 겁니다.

곧이어 북실북실한 콩이 털이 덕지덕지해지겠죠.

똥오줌 싸다 보면 냄새도 나겠지요.


이 좁은 켄넬 속에서 두 달간 지낼 콩이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가라앉나 봅니다.

더불어 두 달간 칩거할 제 생활도 그려집니다.

종강하자마자 떠나려던 계획은 모두 날아가버렸습니다.


나사를 조입니다.

아마 정비할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뜻하지 않은 시간이 가져다 줄 미지에 감사합니다.


나사를 조입니다.

개집 한 채 정도는 뚝딱 만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맞이하는 마음을 준비합니다.


나사를 조입니다.

마음을 조입니다.

생활을 조입니다.


나사는 미국항공우주국이 아니라

볼트와 너트입니다.

나사로 만든 집이 있으니 든든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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