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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n 11. 2024

동거 이렛날

콩이 쾌유 일지-부고와 광고


새벽 여섯 시 반. 웬일로 콩이가 짖는다.

어제 오전 도서관 딜리버리 서비스로 방문객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도 잠잠하던 개가.

스트레칭도 못 하고 몸을 일으켜 안방을 나가서 베란다에 둔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동거가 시작되고 거의 같은 옷을 입는다.

개털 때문에 이 옷 저 옷 갈아입을 수가 없다.


06:33 캔넬 철문을 열어주었더니 콩이가 잽싸게 나온다. 행동이 빨라졌다. 회복이 느껴진다. 뒷발로 서서 앞발을 들길래 혼을 냈다. 착지할 때 충격으로 골절 부위에 충격이 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얌전히 앉아있는다. 목줄을 하고 안고 나갔다.

어제 세 번이나 산책했는데 오늘 소변 아침 여섯 번.

06:46 개집 옆 실리콘 그릇에 새 물을 담아주니 마신다.


06:53 안고 올라와 로열 캐닌 사료 100g을 그릇에 덜었다. 손바닥에 놓고 먹인다. 한 번 두 번.

정읍에서 요양보호사 할 때 시각장애인 할머니 숟가락 밥 위에 반찬을 한 번 두 번 놓아드릴 때가 떠오른다. 그 할머니는 잘 지내고 계신지... 다른 요양보호사가 잘 모시고 있는지... 구순이셨지만 정정하셔서 돌아가시려면 멀었는데 자식들이 산소 자리를 마련했다고, 나중에 당신 무덤에도 와 보길 바라셨는데......

늙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아파트에서 함께 살자는 자식들 신세 지지 않고 혼자 시골집에서 꿋꿋하게 사시던 멋진 분이셨다.


콩이는 사료를 다 먹지 않고 조금 남은 상태에서 도리질을 한다. 음식 남기지 않으려고 꾸역꾸역 먹거나 식탐에 과식하는 사람보다 낫다.

다 먹고 가만히 앉아 있는 걸 살짝 들어서 뒷발부터 캔넬 안에 넣는데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르적거리지 않고 얌전하다. 콩이는 적응이 빠르다. 앞 겨드랑이를 들어 뒤로 밀어주고 켄넬 문을 닫으면 끝.


07:00 아침 가루약을 딸기잼에 섞어 손가락에 찍어 철망 안으로 들이미니 고개를 돌린다. 문을 열고 입에 갖다 대니 싹 핥아먹는다.


작년 가을에 책이 나오고 선인세 잔금을 책으로 달라고 했다. 그렇게 받은 50권을 전부 발송했다. 휴대전화기 연락처가 100명뿐인 내게 고마운 분이 그렇게 많다니 감사하다. 그런데 일부 빠뜨린 사람이 생각났다. 그래서 지난주에 몇 권을 더 주문해서 2년 반 전 사진을 뒤져 악양에서 잠자리를 제공해 준 한 분에게 책을 부치고, 귀정사 먼방지기에게 문자를 보냈다. 기다려도 답문이 없길래 어제부터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좀처럼 누군가에게 그러지 않는데 계속 전화를 했다. 마침내 오늘 전화를 받았다.

"저 일곱째별인데요."

뚝 끊겼다. 병세가 심각한가 싶어 다시 걸었다.

"저 귀정사에 있던 일곱째별인데요."

또다시 뚝 끊겼다.

귀정사 쉼터지기님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가 가자마자 받으셨다. 먼방지기 소식을 아시느냐고 물었다.

누군가 아마 세상 뜬 것 같다고 하시더란다.


2년 전 9월, 마지막으로 귀정사에서 지낼 때 이다가 온 날이었다. 남원역 앞 추어탕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일찌감치 귀정사를 떠난 먼방지기 모자가 옆 테이블에 앉았다. 인연도 이런 인연이 다 있나 반가워했다. 우리가 먼저 왔는데 더 늦게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다. 계산을 하려는데 옆 테이블에서 하고 가셨다고 하는 거였다. 깜짝 놀라서 밖에 계신 두 분께로 갔다.


"아니 왜 계산을 하셨어요?"

"어머니가 해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아들의 암투병을 위해 절에서 밥을 해주시면서 함께 지내셨다. 불자시냐고 여쭈었더니 오래도록 개신교 신자셨다고 하셨다. 하지만 개신교에 대한 회의를 비치셨다. 표정만 봐도 선하신 분이셨다. 아들은 엄마를 닮아 있었다.

두 분은 내가 아마 오갈 데 없이 떠도는 작가인 줄 아시고 추어탕을 사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 막 출강을 시작했던 터였고 출간 계약 직후라 곧 책이 나올 거라고 했었다. 그리곤 책이 나오면 부쳐주겠다고 말했었다. 그땐 연말이면 책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여러 지원금 공모에서 밀리고 밀려 일 년이 넘어서야 작년 가을에 책이 나왔다.

왜 반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를 기억했을까? 자책을 하자 쉼터지기님은 아마 작년에 갔을 거라고, 그러니까 내 책이 나오기 전에 갔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로 말씀하셨다.


처음 귀정사에 갔던 2022년 3월, 소처럼 맑은 눈망울의 먼방지기에게 입주 인사로 자연드림 생수 1리터 한 팩을 주었다. 그는 이렇게 귀한 걸 주냐며 고마워했다. 알고 보니 귀정사에는 정수기가 없었고 모두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그냥 마시거나 끓여마셨다. 얼마 후 내가 귀정사에 온 이유가 그를 만나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코로나 19 백신을 맞은 후 폐암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그 이야기는 남도 순례길 11에 있다.

https://brunch.co.kr/@seventhstar/60

그 글 끝에 이런 글을 썼었다.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입보리행론


어디 사랑하는 사람뿐이랴. 스치는 인연들에도 고마움을 고마움으로 갚을 시간은 만나고 있는 그때뿐이다.

귀정사 중묵처사님이 명상 시간에 가르쳐 주신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생각난다.


13:30 콩이 물과 칫솔 간식

15:30 콩이 산책. 소변 네 번.


우체통에 녹색평론 186 2024년 여름호가 배송되었다.

맨 마지막 속지에 <일곱째별의 탈핵 순례> 광고가 나왔다.

바로 옆 김종철 생태사상론집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와 나란히.

 

19:50 콩이 산책. 소변 여섯 번.

20:00 들어와서 물 마시고 사료도 정량 다 먹고 약까지 모두 먹음.

오늘도 수월한 동거.

지금 여기 이 순간 내 곁에는 콩이가 있다. 그애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후회 없이 사는 길이다.


삼가 먼방지기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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