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자전거 순례길에서 만난 세종보
작년 5월부터 일 년에 걸쳐 군산 하굿둑에서부터 대전 대청댐까지 금강 자전거 순례를 완주했다. 그중 2024년 6월 현재 6년 동안 열어두었던 수문을 다시 닫겠다는 세종보에 관한 이야기다.
2024년 5월 9일 목요일
<펑크가 알려준 사실>
세종보에서 출발하자마자 길을 헤맸다. 자전거길을 벗어난 3.6km 지점에서 뒷바퀴가 펑크 났다. 자전거를 끌고 30분쯤 오는데 강이 이상했다. 강에 흙을 붓고 있었다.
현수막엔 ‘세종보 가(임시)물막이 설치공사입니다’라고 쓰여있었다. 그곳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맨눈으로 봐도 퇴적층이 수면 위로 군데군데 올라와 푸릇푸릇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아름다운 지형이었다. 그곳에 굴착기로 흙을 퍼 나르고 밀어 평평한 땅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강에다 보 쌓은 것도 모자라 대체 무슨 짓을 또 하는 걸까? 궁금증이 생겼다.
2024년 5월 10일 금요일 세종보~공주보 왕복 44.4km
<강물은 흘러야 한다>
다음 날 세종보에서 공주보까지 왕복으로 재도전했다. 오는 길에 처음 건넜던 그 다리 위에 올라갔다. 어제 본 가물막이 공사를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가물막이 아래는 흙 때문에 수면이 얕아져 모래톱이 올라와 있고 그 옆으론 유속이 빨랐다. 올해 1월부터 공사를 해서 이번 달에 끝난다는데 대체 거기다 뭘 만드는 걸까?
서울신문 기사와 뉴스타파를 찾아보니 최민호 세종시장은 ‘비단강 금빛 프로젝트’로 세종보를 재가동하면 수변공간으로 관광자원을 들일 수 있는 시설이 될 거라고 하고, 김동길 세종시 물관리정책과장은 대관람차나 스카이워크 등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세종보를 재가동해 물을 채우고 강을 메워 강변에 관광·레저·체험·휴식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것이었다.
2024년 5월 16일 목요일 대청댐~세종보 왕복 37×2=74km
<금강 자전거 순례길 완주>
금강 자전거길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거대한 대청댐을 보는 순간 섬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댐이 그렇게 높으면 얼마나 많은 물을 가둘 수 있을까? 나중에 찾아보니 소양호, 충주호 다음으로 세 번째로 큰 호수가 대청호란다. 강을 인공적으로 물을 막아 가두고 호수라고 부르는 건 호수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뭐든 억지로 강제로 하는 건 자연스럽지가 않다. 그래도 거기서 발생하는 수력으로 전기를 발전시킨다면 핵발전소보다는 훨씬 건강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아래 강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대청댐을 처음 본 그날 2023년 5월 26일 강경포구~웅포 야영장 왕복 47km를 시작으로 군산 하굿둑부터 대청댐까지 금강 자전거 순례길 146km를 열 번에 걸쳐 300여km 타고 완주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내가 순례한 영산강의 승촌보, 아라 서해갑문, 금강 대청댐에는 똑같은 표지석이 있었다.
국토 종주 4대강 자전거 노선 금강 자전거길
2012. 4. 22. 개통
대통령 이명박
MB정권에서 23조 원을 들여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을 파헤쳐 16개 보를 쌓은 4대강 사업. 거기에 2089억 원 들여 전국에서 일시에 개통한 4대강 국토 종주 자전거길. 그중 지난 4월에 영산강과 5월에 금강 자전거길을 종주하면서 죽산보와 세종보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2024년 5월 22일 수요일 세종보 천막농성 투쟁 24일 차
보도기사로만 본 세종보 농성천막에 처음 간 날은 2024년 5월 21일 청주 충북환경운동연합 소모임 꿈꾸는 책방 주관 <일곱째별의 탈핵 순례> 북 콘서트 다음 날 아침이었다. 청명과 함께 세종보 한두리교 아래 천막 농성장을 찾아갔다.
농성 천막은 말 그대로 찾아야 했다. 찾아오라는 한두리교 아래 금강 스포츠공원에는 인라인스케이트장만 보인다. 한 칸 아래로 내려가면 요즘 유행인 파크골프장이 있다. 골프장 끝까지 가서 30cm쯤 되는 연두색 나일론 울타리를 건너면 급격한 흙 경사가 있고, 그 경사를 내려가면 교각 옆에 천막이 두 동 있다.
초록 천막 앞에 전날 만났던 청주 충북환경운동연합 활동가 풀빛과 이성우 사무처장, 세종시민과 박은영 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이하 바위)과 눈에 익은 사람 한 사람이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대전충남녹색연합 임도훈 자연생태팀장(이하 나귀도훈)이었다.
지난 4월 29일부터 세종보 공주보 재가동 중단과 물정책 정상화를 촉구하면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24일째.
바위와 나귀도훈은 2023년 12월 7일 금강·낙동강·영산강 유역 87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발족한‘보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간사였다.
‘보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은 공주보 개방과 세종보 담수 계획 철회, 낙동강·한강 보 개방과 녹조 대책 마련,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변경 철회와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 이행 등을 정부에 요구하며 4대강 16개 보를 철거하고 우리 강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결성한 시민단체였다.
2021년 1월 18일, 4대강 재자연화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 국가물관리위원회가 1년 반 동안 보 개방 모니터링과 경제 타당성 분석, 국민 의견 수렴을 거친 논의 끝에 금강 영산강 6개 보 철거를 결정했다. 그런데 결정만 하고 임기 내에 16개 보 중 단 한 개 보도 철거하지 않았다.
다음 정권인 윤석열 정부가 2023년 7월 감사원 결과 발표 하루 만에 보 처리 방안 재심의를 요청하고, 2기 국가물관리위원회는 15일 만인 8월에 환경부 주문에 따라 심도 있는 검토 없이 ‘가뭄, 홍수, 수질 문제 등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며 보 해체를 취소했다.
2012년 4대강 사업 16개 보 공사 중 최초로 만들어진 세종보는 규모가 작아 가뭄 대책에는 큰 실효성이 없다. 홍수가 나도 구조물 때문에 수위가 상승한다. 이렇게 별 쓸모없는 세종보는 준공 5개월 만에 유압실린더 고장 이후 매년 고장으로 인한 유지관리 비용으로 예산을 잡아먹어 ‘좀비 보’로 소문이 났다.
뉴스타파 ‘윤석열의 금강파괴 막아라' 최전선의 천막농성에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
https://youtu.be/IyIoAKsMVc8?feature=shared)
2024년 6월 6일 자 한겨레 신문(최예린 기자) ‘세종보 막고 찰랑찰랑 금강에 요트를? 못 띄웁니다 [뉴스AS]’기사를 보았더니, 2012년 완공 뒤 7년 동안 세종보에 유지에 들어간 비용(인건비·보수비)은 116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유압 전도식 가동보 특성상 장비에 토사가 끼는 등 고장이 잦았기 때문이란다. 보에서 소수력발전을 하지만, 연간 9300㎿h(약 7천 명 사용분)로 미미한 수준이고. 이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 시절 환경부 4대강조사·평가기획위원회는 세종보를 유지하는 것보다 해체하는 것의 비용편익(B/C)이 2.92로 3배 가까이 경제적이라고 분석했다고 한다.
2023년 11월 29일 환경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금강 세종보 정상화 사업 본격 착수를 알렸다.
보도자료를 보니 가뭄이나 홍수 이야기는 없고 연간 약 7,700명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약 9,300MWh)인 소수력발전소와 2026년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가 주목적이었다. 순천만 국가정원과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이 돈 좀 번다니 세종시에서도 정원도시 박람회를 하려는 모양인데 손대지 않아도 이미 아름다운 자갈과 모래밭에 산란한 흰목물떼새 알을 수장하면서, 6년 동안 그곳에 서식하던 동식물의 서식처를 몰수하면서.
애써 보도자료까지 밝히는 이유는 하필 내가 그곳에 간 첫날 환경부에서 물정책총괄과장 외 6명 총 7명이 우르르 방문했기 때문이다. 예고 없이 갑작스레 들이닥친 그들 중 가장 불쾌했던 건 동의 없이 휴대전화로 채증하고 있던 검은 옷 여성이었다. 아무도 그이를 제지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 대응하여 집중적으로 그이를 촬영했다. 빠르게 인원수를 세보니 직전에 합류한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과 자전거 복장이 멋진 분 포함 8명으로 시민 쪽이 한 명 더 많았다.
환경부 직원들은 별 준비 없이 위협적으로 들이닥쳐 홍수 등이 나면 위험하니까 나가라고 했다. 나귀도훈이 분명하게 요구사항을 확인해 주었다.
“세종보·공주보 재가동 중단하고 보처리방안 취소 국가물관리위원회 기본계획 변경에 대해서 최소한 조사과정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가 절차상 뭐가 좀 부족했다, 아니면 뭘 좀 놓쳤다, 아니면 감사원에서 주문했던 사안은 보처리 방안이 일부 적합한 과학적 데이터를 마련해라,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라였는데, 환경부가 이의 신청도 안 하고 하루 만에 취소 요청해서 꼭두각시 국가물관리위원회 2기는 취소 결정을 15일 만에 하고, 그 이후 30일 만에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은 변경하고, 활동가들 연행하고……. 내용을 아는 분들이 오셔서 책임질 수 있는 답변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환경부 직원은 탄력운영 하겠다고 했다. 생태에 단기간 탄력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물이 차면 계고장도 못 받은 새들은 알과 서식지를 순식간에 잃고 말 것이다.
“왜 자연을 가지고 모험을 하려고 그러세요? 왜 이걸 테스트해 봐야 되나요? 다시 (보를) 닫아서 망가지고 회복되는 것 봐야 되나요? 그래서 어떤 애는 살 수 있고 어떤 애는 죽는지 봐야 돼요? 그리고 가뭄 때 금강 물 쓴 적 있나요?”
그랬다. 세종보를 막았을 때 가뭄이 해결되기는커녕 소수력발전으로 인한 소음과 막혀서 썩은 악취로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쇄도했었다고 한다. 수위가 높아져 보기에 좋다고 해서 강물의 상태도 좋아지는 건 아니다. 흐르지 못하는 물이 깨끗할 수 없다는 건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이다.
환경일보에 따르면 환경부(장관 한화진)는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공동위원장 한덕수 국무총리, 배덕효 세종대 총장)가 2023년 8월 4일 의결한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 취소 결정의 후속 조치로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2021~2030)을 변경해 9월25일에 공고한다고 밝혔다. 변경된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은 국가물관리위원회의 서면 심의(9월 18~20일)를 거쳐 확정됐으며 보 해체, 상시 개방 등 4대강 보 처리방안 관련 과제를 삭제했고, 법정용어 적용 등 일부 문구와 용어를 명확히 했다.
환경부 직원은 급기야 안전사고를 언급했다.
“물이 찰 때 사고가 나거든요.”
가만히 듣고 있던 바위가 급기야 나섰다.
“저 공주보 있을 때 사람 있는데 수문 닫아서 수장시키려고 한 거. 저희 잠길 뻔하다가 나왔어요. 대통령 3일 뒤에 온다고.”
2023년 9월 5일 서울 스페이스쉐어 중부센터 루비홀에서 제1차 국가물관리 기본계획 변경 공청회가 열렸다. 이때 보철거를 외치던 바위를 비롯한 다섯 명이 연행됐었다.
며칠 후 환경부는 백제문화제를 위해 금강 공주보에 임시로 물을 채우겠다고 했다. 환경단체는 공주보 위 고마나루에 천막을 쳤고 3일 농성을 했다. 공주시에서 100여 명이 나와 천막을 찢고 활동가들을 끌어냈다. 끝까지 활동가들이 남아 있었지만, 수문은 닫혔다. 물이 차오르고 활동가들은 가슴까지 차오르던 강물에 저체온증으로 나와야 했다. 그리고는 백제문화제 개막식에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했다. 시 공무원들이 강바닥에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절실하게 물을 채워야 했던 이유가 거기 있었다.
나주 영산강 황토 돛배 선착장에서도 아래로는 영산강 하굿둑을 막고 위에는 죽산보를 막아 배를 띄웠다. 강을 막아 수면을 높이고 흐르지 못해 더러워진 강물 위에 배를 띄우는 이 인위적인 뱃놀이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즐거울까? 그렇게 벌어들이는 관광 수익으로 지자체 예산을 얼마나 채울 수 있는가?
아, 그런데 그 백제문화제는 작년에 내가 가르치던 대학생들이 전국 대학생 미디어 공모전 출품을 위해 촬영하러 갔던 곳이었다. 개막식 야간 행사로 물이 가득한 금강에 조명 가득한 배를 띄우는 순서가 있었다. 그때 이 사실을 알았더라도 내가 그 기획안을 수용했을까.
공주보 수중 투쟁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번에 정부가 다시 세종보도 막으면 나도 그 물에 들어가야 하나 걱정을 시작했다. 물속의 알 수 없는 성분에 닿으면 두드러기가 날 수도 있는데 잠수복을 준비해야 하나, 그런 자잘한 염려를 하고 앉아 있는 나를 보며 터전이 송두리째 물에 잠길 흰목물떼새에게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그 강가에 자그마한 돌탑을 쌓았다. 물이 차면 돌탑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교각 구멍으로 들락날락하는 박새만이 강물이 차올라도 살 수 있을까.
한차례 환경부 직원들과 대치가 끝나고 갈 사람 가고 난 후 나귀도훈은 다리 밑에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Man of La Mancha>에 나오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열창했다. 교각에 부딪혀 공명한 노랫소리가 다리와 강물 위로 퍼져나갔다. 밴드 <프리버드> 보컬인 나귀도훈의 <이룰 수 없는 꿈>은 근사했지만, 우리의 꿈은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강물은, 금강은 흘러야 하고 세종보는 철거해야만 한다. 그날 청명과 나는 5월 28일 밤에 천막을 지키겠다고 기재하고 자리를 떴다.
나귀도훈은 첫눈에 눈에 익은 사람이었다. 아마 올 3월 16일 서울 을지로 입구 후쿠시마 13주년 에너지전환대회에서 본 분이 아닌가 했다. 그런데 기억해보니 그는 이번 학기에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이 제23회 국제 지구사랑 작품공모전에 출품하기 위해 촬영해 온 출연자였다.
“환경(環境)이라는 말 자체가 인간을 중심에 두고 하는 말이잖아요. 저는 자연 또는 생명이라는 말이 먼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지킬 때 우리 아이들 또 우리 후대 미래세대에 좋은 자연이 물려 질 거다. ”
임도훈 생태팀장의 인터뷰를 보면서 학생들에게 환경의 정의를 설명했었다.
2024년 5월 28일 화요일~ 29일 수요일 농성장 밤샘 지킴
다시 간 금강 변에 내가 쌓아 놓았던 돌탑은 사라졌다. 그새 큰비가 와서 강물이 넘쳤다고 했다. 수위에 따라 잠길 수도 있는 농성장에는 나귀도훈과 은실과 봄봄이 있었다. 은실은 지난 공주보 천막투쟁 때 끝까지 천막을 지켰던 활동가이고, 제주 거쳐 고양시에서 대중교통수단으로 그곳까지 왔다는 봄봄은 서울 거쳐 떡볶이와 어묵 등을 사 와 우리의 저녁 식사를 해결해 주었다. 밤이 되자 봄봄은 먼 집으로 갔다. 언제든 다시 올 기세였다. 그날 컴컴한 텐트 안에서 휴대전화기로 한 자 한 자 쓴 기록이다.
‘세종보 300m 위 한두리교 아래 농성 천막에서 금강을 지킵니다.
다리 위 굉음과 이 밤에 짜랑짜랑 울리는 새소리의 조합이 묘합니다.
금강을 사랑하게 될까 봐 겁이 납니다. 또 물불 안 가리고 금강을 지키려고 뛰어들까 봐.
어쩜 이미 금강을 사랑하는 건 아닐까요?
이 다리 밑에서 사람이 자는 한 세종보를 막진 못할 겁니다. 사람을 수장시키지는 못할 테니까요.
어쩌면 인간보다 배신하지 않는 동물과 강물을 사랑하는 게 더 현명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랑 타령을 떠나 강은 흘러야 합니다. 이곳에 산란한 흰목물떼새 알을 지켜야 하니까요. 이 밤도 살아있는 생명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차가운 강바람에 떨며 뒤척이다 잠든 다음 날 아침 7시, 텐트 밖에는 청명이 땅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제주 강정마을 100배 명상을 하고 있고 그 옆엔 나귀도훈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도 그 옆에 가서 해를 바라보며 양팔을 벌린 후 합장하고 뒤 돌아 세종보를 향해 20에서 100배까지 호흡 명상을 했다.
‘네 곁에서 하룻밤 자니 너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어.
금강아~ 우리 계속 흐르자 흘러~’
명상이 끝나고 우리는 공용 텐트 청소를 했다.
아침 9시 되니 바위가 도시락을 싸 왔다. 방울토마토, 완숙 토마토, 땅콩 잼 바른 통밀빵, 그리고 햇살 담은 달걀(‘햇 삶아 온’을 ‘햇살 담은’으로 들음)과 내가 좋아하는 홍삼 스틱까지. 바위는 일회용품 사용에 민감해서 커피를 사 오는 것도 반기지 않고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가져와 일회용 커피를 타 마시고, 쇠젓가락도 비치해 두는 준비성을 가졌다. 누군가 가져다 둔 2022년 10월 평택 공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한 계열사 빵도 있었지만, 그 회사 제품은 차마 먹을 수 없었다. 그래도 오순도순 조반을 나누는 천막 앞 아침 풍경은 매우 평화롭고 명랑했다.
이틀 후인 2024년 5월 31일 환경부(설명)에 따르면 공주보는 계획대로 탄력 운영 중에 있었다. 그간 방치되어 온 공주보, 세종보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시설 정비를 차질 없이 추진해 왔고, 소수력 발전설비 정비가 완료된 후 발전기의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2024년 4월 말부터 점진적으로 수위를 상승 조정하였고, 현재는 흰목물떼새 번식 등 생태 영향 및 홍수기 사전 대비 필요성을 고려하여 수위를 6m 수준에서 탄력운영 중이라고 했다. 가뭄, 홍수, 수질, 수생태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여 보 수문을 조절하고, 댐, 하굿둑과 연계하여 탄력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며, 수량, 수질, 수생태 등도 계속 모니터링해 나가겠다고 했다.
핵발전소 세계최고밀집도인 대한민국에서 강마다 다닥다닥 보를 세워 강물을 막아놓고 거기서도 전기를 발전시키면 그 전기를 다 어디에 쓸까? 이게 수치상 맞는 논리일까?
2024년 6월 1일 일요일 미사
오전 11시, 천주교 대전교구 생태위원회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위한 거리 미사가 있었다. 30여 명이 자갈밭 위에 서서 미사를 드렸다. 모두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모두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빈다. 봉헌 시간에 가진 돈의 절반을 드렸다. 돈을 내고 그렇게 기쁠 때가 또 있을까?
미사 후 발언 시간이 있었다. 먼저 나귀도훈이 마이크를 잡았다.
“세종보는 2012년 4대강 사업 16개 보 중 가장 먼저 완성되었습니다. 당시 유속이 느려지고 녹조 창궐, 악취 심각, 2017년 11월에 개방을 시작했습니다. 개방하자마자 강의 형태가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악취와 녹조가 사라지자 떠나갔던 야생동물들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멸종위기 1급 어류들인 미호종개와 흰수마자가 돌아오고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 흰목물떼새가 수문을 개방하자마자 모래밭, 하중도 등 수변공간이 회복되면서 아이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작년 11월부터 4년간 논의 걸쳐 확정된 보처리방안을 취소하고 재자연화 정책을 폐기했어요. 댐을 추가로 건설하고 하천을 준설하겠다. 물정책기본기조로 삼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2023년 11월, 세종보 재가동하겠다 발표하고 30억 들여 공사를 시작해서 마친 상황입니다.
원래 재자연화 추진정책에 따라 일정이 진행되었다면 오늘부터 세종보는 철거 착공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모든 발표를 뒤집었어요. 오늘 6월 1일이 재가동을 하기로 했던 날입니다. 사실 5월 1일부터였는데 저희가 4월 29일부터 천막을 치고 너희들이 문을 닫으면 이곳이 물에 잠긴다. 그래서 이곳을 지키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저희가 34일 동안 세종보 담수를 막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제 6월 3일이 되면 정부가 천막을 철거하러 오겠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여기서 34일 동안 있으면서 박새가 알을 낳고 부화하고 그 아기새가 자라서 비행 연습하는 걸 목격했어요. 그리고 흰목물떼새가 저기 건너편 자갈밭에 알을 낳고 품는 것을 눈으로 봤어요. 그리고 고라니, 오소리, 너구리, 수달이 이곳에 살고 있다.
원래 세종시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여기서 살았을 거예요. 아파트가 지어지고 난 이후에 수변공간으로 들어왔어요. 그런데 여기를 수몰시키면 아이들은 집을 잃고 쫓겨나게 되겠죠. 그럼 아파트에서 고라니가 나타날 것이고, 그럼 유해동물이 나타났으니 사살할 것이고 쫓고 쫓기는 전쟁을 반복하게 될 겁니다. 이곳 공간이 개방되고 나서 천막을 지었더니 시민이 찾아오세요. 물수제비를 던지고 돌탑을 쌓고 새를 보러 들어오십니다. 세종보 이후 접근할 수 없었던 강에서 이제 살아있는 강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근데 정부는 아무런 근거나 연구용역 논의 없이 세종보를 다시 닫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속이 빠르고 수위가 올라온 이유가 대청댐에서 평소보다 4배 이상 방류를 하고 있거든요. 나가라고 협박을 하는 것 같습니다. 세종시에서 어제 전화가 왔는데 6월 3일이면 1차 계고, 자진 철거해라, 여기가 비가 오면 위험하기 때문에 긴급집행하러 올 것이고 불응 시 경찰에 고발하겠다. 경찰을 퇴거 명령을 할 것이고 저희는 나가지 않겠죠. 왜냐하면 저희가 나가면 문을 닫아 버릴 거기 때문에.
저희는 버틸 겁니다. 여기 있는 생명체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할 거고 지금 살아있는 이 강이 다시 죽음의 강이 되지 않도록 이 자리를 지킬 겁니다. 여러분 기도해 주십시오. 여기서 어떤 생명도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그리고 증인이 돼 주십시오.”
며칠 전 금강 자전거 순례 완주하던 날 처음 본, 기괴할 정도로 거대한 대청댐이 떠올랐다.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그 면적에 가둬놓은 강물을 방류하면 어마어마한 속도가 나는 게 당연했다.
그곳에는 <불나비>로 유명한 최도은 민중가수가 참석해 있었다.
“세종보를 닫지 마세요. 세종보를 지켜주세요.
사람의 생명이 쉬어가는 세종보를 닫지 마세요.
산새와 물새가 쉬어가며 평화의 노랠 부르리.
우리의 소중한 세종보. 닫지 마세요.
세종보를 닫지 마세요.
생명이 쉬어갑니다.
산새와 물새가 쉬어가는 세종보를 닫지 마세요.
세종보를 닫지 마세요.”
마이크가 필요 없는 그이의 우렁찬 노래는 즉석에서 부른‘세종보를 닫지 마세요’에 이어 ‘불나비’로 금강 위를 위용 있게 흘렀다. ‘지구별에 잠깐 살다 간다’라는 그이는 본인보다 싸우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인천 계양산 나무 위에 155일 동안 천막 짓고 살면서 계양산을 골프장 건설 개발로부터 지켜낸 윤인중 평화교회 목사님께 마이크를 양보했다. 자신보다 더 귀한 분이라고. 그 목사님은 교인의 친구들이 이곳에서 싸운다고 해서 참석했다고 하셨다.
한 사람의 가열 찬 희생으로 산 하나가 토지건설의 삽날을 피했다. 그렇다면 거기 모인 서른 명의 뜨거운 진심으로 금강 하나 못 지키겠는가. 세종보 하나 못 무너뜨리겠는가. 나는 자전거 순례 포함 지금까지 세종보에 여섯 번 갔다. 여리고 성처럼 세종보를 일곱 바퀴 돌라면 못 돌겠나.
봉헌금을 투쟁기금으로 받은 바위의 발언은 눈물에 막혀 점점이 흘렀다.
“여러분이 있고 또 신부님도 계시고 동료들도 있고 물떼새들도 있고 흰수마자도 있고 미호종개도 있고 자연이 함께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니까 우리가 기운이 더 세다고 믿고 개발이라든지 권력이라든지 이기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다함께 모여 사진을 찍었다.
“금강아 흘러라~
낙동강아 흘러라~
영산강아 흘러라~
섬진강도 흘러라~
한강도 흘러라~
강물아 흘러라”
모든 순서가 끝나고 혼자 자전거를 타고 한두리교에서 합강까지 9km, 왕복 18km를 다녀왔다. 샛노란 금계국이 길 양옆으로 가득했다. 알고 보니 금계국은 국립생태원이 생태 유해성 2등급으로 지정한 식물이었다. 여러해살이 식물로 한 번 자리 잡으면 강하게 번식해 다른 식물들이 자리 잡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다른 종이 살지 못하게 하는 이유로 유해성이 있다면 대대로 국회와 환경부에는 정말 유해한 이들이 많은 듯하다. 지어서는 안 되는 4대강 보를 틀어막더니 철거가 코앞이었는데 재가동하는 정부. 그들은 녹조라테 한 잔씩 마셔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아무리 먹이사슬 맨 꼭대기에 앉았다고 다른 생명체 목숨을 우습게 아는 인간이라도 하룻밤만 한두리교 아래에서 자보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밤새 지치지 않고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 생명의 소리를. 금강이 막히고 물이 차오르면 그 소리는 사라질 것이다. 새끼 잃은 새들은 다시 금강을 찾지 않을 것이고 둥지가 잠긴 동물들은 물 밖으로 도망쳐 갈 곳을 잃을 것이다. 살아있는 동식물을 죽이고 몰아내고 그곳에 대관람차와 스카이워크를 짓고 인공 정원을 꾸민다니. 생명을 파괴하고 관광, 레저, 휴식을 한다니. 죽음의 침묵 뒤에 남은 기계 속 인간이 공포를 느낄 날이 반드시 있으리라. 그러니 파괴하기 전에 돌이키라.
살아있는 강 그대로 흐르게 하라.
담수가 웬 말이냐 세종보를 철거하라!
세종보 가동 중단을 위한 천막농성 지원 신청
https://forms.gle/oRTXvNRUot8fVXwx6
노래 흘러라 강물아
https://cdnf.ohmynews.com/TV/17/000107717.mp4
엄보컬 / 김선수 곡 / 노래 임도훈
굽이 굽이 굽이 굽이
흘러야 강이 되지
여울과 풀과 모래가
어우러야 살 수 있지
종다리 높이 오른 낙동강 동녘 하늘
사래긴 밭 매는 농부는
어데로 어데로 어데로 가야하나
영산강 황금물결 억새 바다
천년에 한 번 오시는 님은
이대로 이대로 이대로 못 오시나
비단결 넘실대는 금강변 모래톱에
님 잃고 애달픈 고마는
어데서 어데서 어데서 눈물 짓나
흘러라 흘러라 강물아
퍼져라 생명의 물결로
힘내라 힘내라 강물아
흘러라 생명의 바다로
글·사진 일곱째별
원문은 길목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