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안녕, 안녕,
2024년 5월 24일 금요일 6km×2=12km
전날 종합감기약 두 알을 먹고 잤더니 중간에 깨지 않고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났다. 커튼을 젖혔더니 하늘이 뿌옇고 맞은편 산이 보이지 않았다. 미세먼지 같았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대전역에서 특강 강사님을 모시고 학교로 갔다. 특강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학생들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특강을 마치고 점심 식사 후 강사님을 다시 기차역까지 모셔드렸다. 그리고 유기농매장으로 갔다. 쌀이 떨어져서 2kg을 사고, 훈제오리와 햇반 같은 유기농 햇살밥 3개들이와 사르르 콘스낵과 조미김을 샀다. 조립식 의자를 잊은 걸 기억하곤 잠시 집에 들러 의자를 챙기고 짧지만 콩이 산책도 시켰다. 밤에 들어오지 않을 거였기 때문이었다. 달리는 길 너머 산의 날은 계속 뿌옜다.
첫 번째 목적지는 걸어가기도 자전거 타고 가기도 했던 익산 성당포구.
한참을 달려 오후 5시 10분, 자전거 인증센터를 찾아 스탬프를 찍었다. 그리고 은행나무를 찾아갔다. 꼬마 기차 맨 끝 칸에 어린아이와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타고 있다 내렸다. 느티나무와 함께 마을을 지키는 보호수인 은행나무는 여전히 우람했다. 사진을 찍고 돌아서 주차장으로 오니 빈 꼬마 기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바람개비가 거세게 돌았다.
다음은 웅포로 향했다.
거기서 밤을 지낼 작정이었다. 오후 5시 50분, 캠핑장 주차장에 주차하고 관리실에서 신분증으로 몇 주 전 예약한 자리를 확인했다. 리어카를 가져와 캠핑 박스와 텐트와 며칠 전 급하게 주문한 백패킹용 타프와 배낭과 의자와 이불과 공구 세트와 스테인리스 도시락 가방과 스틱과 백과 생수와 음식을 실었다. 예약한 자리는 맨 끝쯤이었다. 거쳐 가는 길이 길었다. 여러 캠퍼들이 이미 고기를 굽고 전화를 하고 사진을 찍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대부분 두 명 이상이었다. 찾아간 자리 바로 앞에 자전거길이 있었고 그 너머로 금강이 흐르지만, 나무들이 있어 금강이 바로 보이진 않았다.
새로 산 타프를 펼쳤다. 망치로 가느다란 팩을 박고 줄을 걸어보았다. 폴대가 넘어졌다. 팩은 계속 뽑혔다. 초보 티가 팍팍 나는 데다 퇴근 후 곧장 오는 바람에 펄럭이는 파란 원피스와 아이보리 티셔츠에 아이보리 스카프. 캠핑장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에 치마 입은 유일한 여자 혼자, 눈에 띌 게 틀림없었다. 창피하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센데 타프가 장착이 되지 않으니 난감했다. 하는 수없이 자그마한 텐트만 설치하기로 하고 텐트를 열었다. 이너 텐트를 바닥에 펼치고 폴대를 꺼냈다. 그런데 폴대가 부러져 있고 속의 고무줄은 늘어져 폴대 사이로 들어가질 않았다.
5월 24일은 뷔나 생일 전날이다.
작년 이맘때 뷔나를 맞이하고 맨 처음 왔던 웅포. 그곳에서 혼자 캠핑을 하며 신동엽 시 ‘금강’을 다 읽으려고 했다. 동쪽에 해가 뜨면 웅포에서 군산까지 왕복으로 뷔나를 타려고 했었다. 케이크는 못 사줘도 그렇게 뷔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했다. (간 김에 군산 복성루에서 짬뽕도 한그릇 먹고, 하제마을 팽나무에게도 가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타프는 못 치고 텐트는 망가졌다. 망했다. 관리사무실로 갔다. 이미 오후 6시 반이라 직원은 퇴근하고 경비 아저씨만 계셨다. 장비 점검을 하지 않고 와서 오늘 캠핑을 못 하겠다고 했다. 이미 관리자가 퇴근해 환불도 못 받았다. (예약 사이트 취소를 기한 후에야 알았다.) 풀지도 못한 짐을 리어카에 싣고 끌고 와 다시 차에 실었다.
나포로 향했다.
오후 7시. 뿌연 하늘에 하얀 해가 금강 위에 떠 있었다. 거기서 군산 금강하구둑 인증센터까지는 6km. 왕복 12km. 30분이면 해가 져도 어둡진 않을 것이다.
차 안에서 자전거 옷으로 갈아입었다. 딱 붙는 자전거 복을 입으니 잘 맞는 옷을 입은 듯 기분이 나아졌다. 5분 후 트렁크 안의 뷔나를 꺼내 강둑으로 올라갔다.
아…… 교회 의자가 사라졌다. 하지만 금계국은 그대로였다. 해는, 해는 종일 뿌옇던 하늘에서 갑자기 붉은빛으로 드러났다.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이쪽을 보았다
금강의 낙조(落照) 속에서
보았다.
(신동엽 시 금강 제9장 중)
죄는 김진사가 지었는데 왜 하늬 아내가 자살을 해야 하는가.
오후 7:10 출발.
역시 맞바람이었다. 출발하자마자 해는 차츰 구름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달리다 보니 고글을 쓰지 않았음을 알아챘다. 그럼 그렇지 뭐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면 내가 아니지. 고글은 햇빛뿐만 아니라 날벌레로부터 눈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 특히 이런 저녁에 더욱. 아니나 다를까 날벌레가 눈으로 들어와 한쪽 눈씩 못 뜰 지경이 되었다. 그래도 멈출 순 없다. 달려라 달려, 뷔나. 무거웠던 마음이 바람에 씻겨 날아가는 듯 점차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금세 남은 거리 4.5km, 3km…….
군산으로 가는 길은 예전처럼 깨진 표면에 거칠고 지저분하지만 눈에 익숙했다. 전에 갔던 곳이 자전거길의 마지막이 아니고 좀 더 가야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기에 이번에 확실히 금강 자전거 길을 완주하는 게 목표였다.
15분 만에 인증센터. 그런데 그곳은 자전거 대여소 바로 옆이었다. 대여소에 내게 달려왔던 고물 자전거는 사라지고 새 자전거가 비치돼 있었다. 그곳에 세 번이나 갔었다. 그런데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네 번째 인증센터를 찾아가서야 비로소 눈에 보이다니. 어쩌면 나도 찾는 걸 바로 지척에 두고 못 알아보고 있는 건 아닐까.
스탬프를 찍고 사이버 인증도 한 다음, 반원을 그려 다시 나포로 향했다. 전조등과 후미등을 다 켜고 어둑어둑해지는 자전거길을 혼자 달렸다. 물론 무섭지는 않았다. 가로등도 없는 자전거 길 옆으론 회색빛 너른 금강이 흐르고 길가엔 금계국이 짙노랗게 피어있었다. 아무도 없어도 금계국이 피어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내일 가려고 했던 길을 오늘이라도 가서 완주를 확인했으니 다행이었다. 뷔나도 좋아할 것이다. 뷔나가 함께 있어 좋다.
오후 7:45 다시 15분 만에 나포 도착. 잠시 강가에 섰다. 바람이 세다. 이젠 어둑어둑하다. 땅에 쓰러진 금계국 한 송이를 꺾었다.
‘미안하지만 나랑 가자. 너라도.’
내려와 뷔나를 싣고 마지막으로 강둑을 올려다보았다. 자전거 거치대와 CCTV와 그 사이의 사라진 의자. 그곳에서 내 결심을 보였다. 내 포기와 새로운 선택을 증명했었다. 생살을 도려내는 듯 아팠지만 선연하고 확고하게 다른 길을 택했었다. 뷔나의 이름을 정했고, 저만치에서 날 향해 오는 자전거를 만났었다. 그런데 의자와 함께 아니 의자처럼 다른 건 사라지고 뷔나만 내 곁에 남아있다.
밤 8시. 어둠이 뚝 떨어졌다. 다시 웅포로 향했다. 2년 전만 해도 어린이날까지 내복을 입었는데 올해는 3~4월에 내복을 벗었다. 그런데 아직도 잘 때는 한겨울 극세사 잠옷을 입고 있다. 왜 그럴까……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삼거리 아니 사거리였나. 신호가 없는 교차로에서 나는 차선을 따라 직진했다. 갑자기 세상이 밝아졌다.
‘와~ 환해서 좋다’
순간 기분이 환히 좋았는데 운전석 쪽으로 버스 한 대가 돌진했다. 나는 미끄러지듯 그대로 나아갔다. 스쳐 간 버스에서 클락션 소리가 미친 듯이 났다. 뭐지? 하는 순간 사고가 날 뻔했음을 직감했다. 놀란 버스가 서는지 마는지 나는 계속 달렸다.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발이 액셀레이터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웅포 초등학교 앞 편의점 앞에서야 정차했다. 스르르 차에서 내려 편의점에 들어가 먹지도 않을 팥빙수를 3천 원이나 주고 샀다. 웅포 초등학교는 개교한 지 110년이 되었다고 한다. 왜 학교 옆으로 길을 냈을까 위험하게. 그 학교 턱에 앉아 있을 수도 있잖아.
다시 출발했는데 그때부터 멍하니 강물 위를 나는 듯 감각이 없었다. 사고를 아슬아슬 피한 후 사후강직처럼 심리적 경직과 마비 상태가 계속되었다.
문득 ‘나는 참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참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미숙했고 결과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참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잠시 후 금강 변이 끝나고 우회전하자 빽빽한 가로수길이 시작되었다. 깜깜했다. 차는 천천히 달리고 나는 무섭지 않았다. 아니 아무 감각이 없었다.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참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내가 올인했던 것처럼 내게 올인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병아리색 극세사 잠옷을 벗지 못하는 이유가 추워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내온도 24도인 요즘은 잘 때 더웠다. 그런데 왜 그 잠옷을 벗지 못하는 걸까. 그때 알았다. 춘추용인 초록색 잠옷을 입고 싶지 않아서였음을. 밝은 회색과 초록색의 초록색. 슬퍼서 추운 초록색.
군산에서 나포도 웅포도 가까웠는데 집은 멀었다. 멀었다.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콩이는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데 네 번이나 짐을 날라 집에 들어왔다. 샤워하고 일껏 초록색 잠옷 바지를 입고 노랗고 갈색이 섞인 꽃무늬 앞치마를 둘렀다. 저녁밥 때는 지났지만 내가 무얼 먹어야 하는지 알았다. 아끼고 아끼던 아기 무로 만든 피클. 오늘은 그걸 다 먹어야 했다. 한 달에 한 개도 아닌데 아기 무 여섯 개를 먹는 데 반년이 넘게 걸렸다. 이만하면 됐다.
집에는 금강 대신 정밀아의 물결이 흐른다. 반복 재생으로.
아, 이제 5월 25일이 되었네.
뷔나야, 생일 축하해.
지금 금강 변은 아니지만 난 최선을 다했어. 네 이름을 지은 곳, 우리가 처음 함께했던 곳에 가서 생일 축하해 주려고. 내게 와줘서 고마워. 좋은 추억을 많이 가져다줘서 정말 고마워. 금강 나포 뷔나.
……
‘동학은
현실개조의 종교요.
자기혁명, 국가혁명, 인류혁명,
이게 바로 동학의
삼단계 혁명 아니오?’
(신동엽 금강 제16장 중에서)
사랑은 끝나도
연민은 남는다,
미움은 끝나도
연민은 남는다,
속리산 문장대 위 올라
은실 같은 낙동강 줄기 보았는가,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보았는가
노고단 상상봉에서 활개 펴고
그 꽃밭
그 하늘 보았는가
(같은 시 제18장 중)
……
두승산
계룡산
갑사
마곡사
공주 우금티
지리산
……
금강,
예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
(제23장 중)
한번 더 걷고 싶어요
강 언덕길, 손길
마주 잡고.
(제25장 중)
그럼
안녕,
안녕,
논길,
서해안으로 뻗는 저녁노을의
들길, 소담스럽게 결실한
붉은 수수밭 사잇길에서
우리의 입김은 혹
해후(邂逅)할지도
몰라.
(후화(後話) 2 중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