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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May 18. 2024

금강 자전거 순례길 5 완주

마침내 완주. 대청댐~세종보 왕복 37 ×2=74km

    

10. 2024년 5월 16일 목요일 대청댐~세종보 왕복 37 ×2=74km     


전날 자정 전에 잠들었는데 계속되는 거센 빗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 2시가 좀 넘어있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동이 터 올라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지는 새벽 5시 반쯤 한 시간이라도 더 자려고 눈을 붙였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햇빛이 찬란했다.


화창한 날씨에 어울리게 아이보리 바탕에 잔잔한 꽃무늬 블라우스에 처음으로 보라색 바탕에 분홍 꽃무늬 타이트스커트를 입었다. 처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햇빛처럼 반짝이는 아이샤도우를 눈두덩이 가에 칠했다. 그처럼 화창한 날씨는 사람을 들뜨게 만들었다.      


모처럼 집안을 깨끗하게 걸레질한 후 출근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혹시나 싶어 얼마 전 일구어놓은 텃밭을 보니 까만 멀칭 비닐 구멍마다 연둣빛 상추 모종이 심겨있다. 주인의 솜씨였다. 어제 심으신 걸까? 새벽에 심으신 걸까? 왜 어젠 못 봤을까? 언제였든 고마웠다.     


운전을 막 시작하다가 자동차 보닛 위에 원두커피를 담은 카키색 스테인리스 컵이 올려져 있는 걸 보았다. 정신머리 하고는. 그래도 속도를 올리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었다.

고속도로 진입하자 전화가 한 통 왔다. 동료 교수인데 점심식사를 하자고 했다. 잠시 머뭇거렸다. 처음이라서가 아니었다. 빨리 먹을 순 있다고 했다. 바빠도 밥은 먹어야 하니까.


오전부터 오후까지 세 시간 열강 하고, 오후 한 시부터 30분 만에 소시지 카레덮밥을 먹었다. 시간이 없었다.      

서둘렀지만 깍듯하게 헤어지자마자 어디로 갈까 고민했다. 대청이냐 세종이냐. 처음에는 세종으로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가다가 목적지를 변경했다. 조금 더 가깝고 지도상 막판에 오르막길이 있는 대청댐으로 향했다. 그런데 신탄진을 넘으면서 좁은 길이 시작되자 내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보아하니 돌아올 대중교통수단이 자주 다니지 않을 곳이기 때문이었다. 돌아올 걱정에 점점 가라앉는 기분으로 북쪽으로 올라갔다.      


드디어  금강 자전거길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거대한 대청댐을 보는 순간 섬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댐이 높으면 얼마나 많은 물을 가둘 수 있을까? 나중에 찾아보니 소양호, 충주호 다음으로 세 번째로 큰 호수가 대청호란다. 강을 인공적으로 물을 막아 가두고 호수라고 부르는 건 호수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뭐든 억지로 강제로 하는 건 자연스럽지가 않다. 그래도 거기서 발생하는 수력으로 전기를 발전시킨다면 핵발전소보다는 훨씬 건강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아래 강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낮의 대청댐


내비게이션에서 가리키는 길로 갔더니 물문화관에 바리케이드가 쳐 있다. 인터폰으로 물어보니 아래로 내려가란다. 주차장으로 가봤더니 편의점과 화장실뿐 인증센터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물문화관 쪽으로 가서 인터폰으로 물어봤더니 다시 내려가란다. 그때 자전거 탄 한 무리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오면서 여기 아니라고, 주차장으로 내려가서 계단을 올라가라고 했다. 다시 주차장으로 가서 주차하고 가파르고 긴 계단을 올라갔다. 광장 건너편에 빨간 인증센터 부스가 보였다. 그 옆 표지석은 승촌보와 인천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국토종주 4대강 자전거 노선 금강 자전거길 2012. 4. 22. 개통

아라자전거길과 같은 날짜다. 전국에서 동시에 자전거길을 개통한 것인가?

그랬다.


(나중에 2012년 4월 27일자 세계일보를 보니,

'22일 전국에서 일제히 개통된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이하 자전거길)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자전거길'은 인천 아라빛섬 광장에서 부산 을숙도에 이르는 국토종주 자전거길 633㎞를 포함, 총연장 1757㎞에 이른다. MB정부는 자전거국제대회 개최, 국토종주인증제 시행 등을 내세우며 자전거길을 글로벌관광명소로 키우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자전거길 개통이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온실가스 저감, 여가활용 등의 효과가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자전거길을 두고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자전거길 조성에만 2089억원이 투입된 대규모 사업인만큼 4대강 주변의 지자체들은 각종 개발사업을 통해 사업비를 회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략)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제기해온 4대강 공사 환경문제도 이번 자전거길 논란과 결합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4대강 유역에 건설된 16개의 보 가운데 일부는 부영양화로 인한 녹조류와 누수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물이 맑아지고 생태계가 복원된다던 정부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보 붕괴' 위험까지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22일 졸속으로 조성·개통된 자전거길까지 전형적인 ‘보여주기 행정'이라는 비난이 더해지는 상황이다.

24일 대전지역 시민단체로 구성된 ‘금강을 지키는 사람들'은 성명을 내고 자전거길에 대해 "멀쩡한 사람을 중태에 빠뜨려 놓고 화사한 환자복을 입혀 예쁘다고 하는 꼴"이라며 "정부는 4대강을 23조원 이상을 들여 파헤치고 대형보를 만들어 물을 썩게 해놓고 자전거길이 온실가스를 줄이고 녹색환경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이라고 떠벌리고 있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라고 나와 있다.      


영산강에 이어 금강 자전거길을 달려보지만, 자전거 한 번 타러 멀고 먼 댐이나 보까지 가려면 자동차를 타야 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대기 오염은 어쩔 것인가?)      


14시 30분. 먼저 스탬프를 찍고 화장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다시 길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자전거 뷔나를 폈다. 스템백에 캔커피와 단백질음료와 초코바와 카메라와 휴대폰을 넣은 후에야 물통을 가져오지 않았음을 알았다. 짐받이에 500ml 생수 두 통을 고무줄로 고정시켰다. 전조등도 달고 자전거 수첩도 등 주머니에 넣었다.   

   

맞은 편 산 중턱에 있는 건물이 운치 없는 보길도 동천석실 같아서


자잘한 준비가 끝나니 15시가 다 되었다. 뷔나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와 다시 인증센터 부스로 올라갔다. 단백질음료를 마시고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마침 서너 명의 무리가 앞에 가길래 부지런히 따라갔다. 이미 세 시가 넘었으므로 오늘은 헤매면 안 된다. 사실 세종보에서 대청댐까지는 자전거수첩 상 37km로 오후 늦게는 왕복할 수 없는 거리라 이틀에 나눠 타려고 했기에 급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헤매고 싶지는 않았다. 항상 혼자 다니다 길을 헤맸으니 이번만큼은 사람들을 가까이하자고 열심히 좇아갔다.


맞바람이 불었다. 내리막길인데도 앞사람들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저만치에서 그들이 첫 다리를 건넜다. 나도 건너보았는데 충북 청주 이정표가 보였다. 아닌 듯해 다시 다리를 건너왔다. 결국은 혼자 가야 하는구나 하며 차도 옆으로 가는데 ‘퍽’ 소리가 났다. 생수 팩 한 개가 아스팔트에 떨어졌다. 자전거를 세우고 생수 팩을 주워서 다시 짐받이 고무줄에 끼웠다. 시작부터 지쳤다.     

 

그러다 갑자기 굴다리를 지나 좌회전하니 신탄진 상가가 나오더니 건널목을 건너고 다리를 건너며 길이 꼬불꼬불 방향을 알 수 없었다. 7km쯤 왔을까? 또다시 ‘여기서부터는 충청북도 청주시입니다’ 표지판이 보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하던 차에 뒤에서 체인 감기는 소리가 촤르륵 들렸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어보았다.     


“이 길이 세종보 가는 길 맞나요?”

“네, 맞아요. 저 따라오세요.”     


내 옆으로 추월해 가는 뒷모습을 보니 뼈와 근육만 있는 듯한 깡마른 중년 남자였다. 자전거 탈 때는 고글을 쓰기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다. 다갈색 종아리 한쪽만 검은 양말을 신었다. 남자가 지나가면서 말했다.  


“하이바 예쁘네요.”

“감사합니다.”     


내 헬멧은 시티 바이크 용이라 로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쓰지 않는다. 헬멧을 하이바라고 부르는 걸로 보아 연세가 있는 분이셨다. 그때부터 나는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은 자전거길이 아닌 찻길로 가셨다. 그 길이 편하다고.

그분은 앞에서 가이드를 해주셨다. 그러다 점차 속도를 줄여 내 옆으로 오시더니 말을 걸기 시작하셨다.

뷔나가 접이식임을 알아보시고 이동할 때 편하겠다고, 가 시작이었다. 나는 자전거 문외한이라 뭐가 좋은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그분의 자전거가 좋아 보인다고 하자, 미국 브랜드인데 신제품에서 제일 좋은 거라고 하셨다. 가격은 물어보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으니까. 그분은 30년간 자전거를 타셨고 전엔 MTB를 타셨다고 했다.      


“산에 자전거가 막 다니면 산에 사는 동물들이 놀라겠네요.”

예상 못한 반응이었는지 그분이 웃으셨다.      

“임도로 다녀요.”

“아, 그러시구나. 전 자전거 탄 지 일 년 됐어요.”      


자전거 대회에도 출전하신다는 그분은 자전거 고수였다. 적당히 앞에 가면서 내가 잘 따라오는지 가끔 돌아보셨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 직후였다.      


“일 년 됐다면서 잘 타시네요.”

“이래 봬도 기어가 있답니다.”     


그 말이 재미있었는지, 그분이 다시 웃으셨다. 뷔나는 9단, 그분의 자전거는 12단이었다. 나는 무게가 궁금했다. 그분 자전거는 28인치인데 8kg, 뷔나는 20인치인데 12+옵션=13kg 정도. 작은 뷔나가 무겁긴 무겁구나. 한참을 달려 또 오르막이 나왔다.      


“힘들다고 할 줄 알았는데 잘 타시네요.”

“어차피 갈 거 힘들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요.”     


그분이 또 웃었다. 툭 튀어나온 그 답변은 어쩌면 평상시 생각이 저절로 나온 것이었으리라. 내가 힘들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곁에서 도닥도닥 위로하며 함께 있어 주기보다는 멀어졌다. 나는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기보다는 묵묵한 사람이 되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과거에 부담스러웠던 나를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었다면 지금쯤은 내가 그들을 도울 수 있었을 텐데……. 멀리 보지 못하는 근시안 때문에 그들은 나와 함께 누릴 수 있는 복을 차버렸다.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분은 청남대까지 갔다가 돌아오시는 길이라고 했다. 청남대란 말에 얼떨결에 나도 다음 주에 거기 가볼 예정이라고 했다.      


“그럼 저한테 연락 주실래요?”

“아마 연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거예요.”     


보자마자 이 무슨? 속으로 그분이 그만 제 속도로 가주셨으면 했다. 영산강 종주 이후로 올인원인 빕숏이 화장실에서 불편해 입지 않고, 자전거 속옷에 레그워머 스타킹을 착용하고 반바지를 입었다. 그런데 몇 번 신지도 않은 레그워머 오른쪽이 흘러내려 반바지 아래로 허벅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찬란한 햇빛에 반사되는 살갗은 더욱 하얗게 보였고 검정 레그워머와 대비돼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자전거를 멈추고 스타킹을 추켜 올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분은 내 왼쪽에 있었으니 옆으로 나를 돌아볼 때마다 새하얀 허벅지 안쪽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덜컹, 퍽 턱을 넘자마자 스템백 안에 있던 휴대폰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지난 세종보~공주보 주행 때 스템백 앞쪽 고무줄이 끊어져서 조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세우고 스타킹을 올리고 짐받이의 물도 마셨다. 그때 그분이 다가와 뷔나 스템백에 달린 몸자보를 들어 읽어보셨다. 순간 긴장했다. 고글을 썼으니 정확하진 않지만 추정되는 연세로 봐서 지청구를 들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 탈핵? 해야죠.”     


다행이었다. 다시 주행을 시작하고, 나는 중간에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분은 오늘 충분히 갔다가 되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종보 가는 길이 공사 중이라 초행이면 길을 찾기 어려울 거라고 우회도로를 알려주시겠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계속 그분과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길을 모르니까.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너고…… 정말 혼자 갔으면 헤매다 돌아갔을 길이었다.

그분은 자전거길 근처 동네에 사는 분이셨고 가는 길이니 나와 동행하신 거였다. 그런데 그 동네가 나왔는데도 집으로 가지 않으셨다. 다행스럽게도 그분은 내게 이것저것 묻지 않으셨다.  다만 예전엔 금계국 사이에 양귀비가 가득했는데 벌초를 하도 해서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셨다. 최근에 동네에서도 양귀비가 작년만 못해 서운해 ‘나중에 내 정원이 생기면 양귀비랑 데이지를 심어야지’ 하던 나는 그 말에 귀가 기울여졌다. 그분 자전거엔 앞뒤로 블랙박스가 달려있었고 그것엔 비디오뿐만 아니라 오디오도 기록된다고 하셨다. 뷔나 정가보다 더 비싼 블랙박스였다.      


마침내. 오후 5:15 두 시간 만에 40여 km 달려 자전거길에 있는 세종보 인증센터에 도착했다.(위 세종보사업소 앞에도 인증센터 부스가 있다.) 세 번째 온 세종보 인증센터에서 드디어 수첩을 가져와 첫 스탬프를 찍었다. 그리고 두 개 남은 캔커피 중 하나의 뚜껑을 열어 마셨다. 마침내 금강 자전거순례 완주 기념이었다. 일 년이 걸린 완주였다.      


금강 자전거길 완주 기념 커피


마침 남자 둘이 더 와서 스탬프를 찍었다. 그중 한 분이 물었다. 여기서 군산까지 가려는데 가능하냐고. 다른 남자가 지금 맞바람 불어서 힘들다고 했다. 한 분이 다음엔 동해안 길을 갈 거라고 했다. 나도 덩달아 갈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위쪽 고성에서부터 타야 돼요? 아래 울진에서부터 올라가야 돼요?”     


제각기 의견이 달랐다. 그러고 보니 한 까탈하는 내가 쫄쫄이 바지 입은 모르는 남자들과 말을 섞고 있었다. 단지 자전거를 탄다는 동질감만으로.

나는 거기서 버스를 타고 신탄진까지라도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스탬프도 찍지 않고 기다리던 그분이 입을 여셨다.      


“가시죠.”     


이미 힘들었다. 그런데 30km나 길 안내를 해주고 집도 지나쳐 일부러 종착지점까지 와주신 그분에게 미안해 울며 겨자 먹기로 되돌아가야 했다.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이 하필 그때 나온 것이다.

바람이 뒤에서 불어준다면 올 때처럼 힘들진 않겠지 생각하며 억지 출발을 했다. 돌아가는 길에 긴장과 경계가 좀 풀렸는지 이러저러한 대화를 했다. 그분은 60세에 은퇴하시고 비 오는 날만 빼면 매일 자전거를 탄다고 하셨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탈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찬성하셨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혹시 시간 많으시면 다음 주 화요일에 청주에 오시겠어요? 저녁이라 식사 시간이긴 한데 식사 대접은 못 해드려요.”      


갈 수 있다고 하셨다. 그제야 나는 작가고 그날 청주에서 북토크가 있는데 책을 읽고 와야 된다고 했다. 그분은 책을 사 보시겠다고 했다. 나는 월성원전인접지역에 방사능 피폭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 이주를 위해 올 8월 25일 10주년 기념으로 자전거를 타고 월성까지 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전에 동해안을 완주해야 한다고. 10주년 행사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주면 좋다고. 여느 때와 다르게 많은 정보를 흘렸다.      


갈 때와 다른 길로 돌아서 자전거를 달렸다. 자전거길이 아닌 마을을 통과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앞에 가는 그분을 믿었다. 길 찾는 데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분을 따라 페달만 밟으면 됐기에 무척 수월했다. 하지만 그 길엔 낭만의 ㄴ도 로맨스의 ㄹ도 없었다. 그저 달릴 뿐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도반이 별 건가. 이렇게 몇 시간 함께 길을 가면 그게 도반 아닌가? 평생 손잡고 산책하고 커플 자전거를 타고 싶은, 그 한 사람과만 나누고 싶은 ‘알콩달콩’이란 꿈만 포기하면 이렇게 얼마나 평탄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 한 가지만 포기하면 내 인생은 누가 봐도 멋졌다.      


사람이란 존재는 저마다의 주파수와 에너지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 생각을 할 때쯤 전혀 모르는 좁은 다리 위에 올랐다. 그때 그분이 말씀하셨다.      


“여기서 헤어져야겠네요.”     


휴대폰을 보니 벌써 오후 6시가 넘어있었다. 그런데 대청댐까지는 23km나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분으로선 집을 지나치고 다시 또 지나쳐서 더는 함께 가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급작스럽게 다시 길에 대한 불안이 몰려왔다.      


“여기서부턴 쭉 길 따라가시면 돼요.”

“다리 한 번 건너야 되죠?”

“네. 한 시간 반이면 갈 거예요.”     


그분은 내 책 제목과 다음 주 화요일에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묻고 폰에 메모하셨다. 책 제목과 주소를 몰라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꿈꾸는 책방이라고만 알려드렸다. 성함을 묻고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허락하셨다.      


“힘들겠죠?”

“네.”

“그래도 어쩌겠어요. 가야지.”     


그분은 어느새 내가 했던 말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연락처 교환도 없이 헤어졌다. 이 정도로 깔끔한 길 안내자라면 내 인생에 몇 시간쯤은 스쳐가도 괜찮겠다 싶었다. 만약 내가 세종보에서 출발했다면 그분을 못 만났을 테고 자전거길 공사 중이라니 길을 헤매다가 중도에 돌아갔을 게 분명했다. 대청댐에서 출발한 내 선택은 잘못되지 않았다.      


스치는 자전거 인연


혼자 거슬러 올라가는 길은 한 번 갔던 길인데도 생소했다. 하지만 불안한 만큼 경치 좋을 때 내려서 사진 찍을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물도 마실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속도는 더뎌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물 마실 때 머리 위 높이 멀리 반달이 떠있었다.


금강


금강 자전거 길은 세종과 대전과 청주를 넘나들었다.

10분 전 7시. 갈 때 눈여겨보았던 현도오토캠핑장에선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그분과 갔던 차도로 가지 않고 원래 자전거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분 말씀대로 차도가 길이 더 좋았다. 그래서 더욱 초행길 같았지만, 대청댐 7km 이정표가 보이는 그 이상한 갈래 길이 나오자, 그분과 만났던 곳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오후 7시 9분이었다. 넓다란 길로 나왔는데 어둑어둑해지는 자전거길 아래로 나란한 나무가 보였고 그 옆에 노부부로 보이는 두 분이 계셨다.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아직도 알콩달콩을 꿈꾸는가.      


내가 생각하는 알콩달콩


날은 확확 어두워져 후미등과 전조등을 켰다. 길은 점점 오르막으로 변하고 그날따라 안 하던 아이샤도우 가루가 들어와 눈은 뻑뻑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정이 있는 내 또래 여성들이 밥 차릴 시간에 나는 자전거를 타고 있지 않은가. 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띄엄띄엄 금계국이 핀 길에 가로등이 반짝 켜졌다. 마치 ‘그래, 네 말이 맞아.’라고 응원하는 듯.


금강 자전거길


가는 길에 식당을 유심히 보면서 지나갔다. 오늘만큼은 아끼지 말고 나를 위해 좋은 음식을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고 보니 갈 땐 누가 있어서, 올 땐 밥맛 좋으라고 허기져도 초코바를 먹지 않았다.      

오르막길이 힘들까 봐 대청댐에서 출발했는데 계획 없던 왕복 주행을 하는 바람에 결국은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다. 막판 스퍼트!


마침내 완주


저녁 7시 48분. 대청댐 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했다. 대청댐부터 세종보까지 이틀에 걸쳐 타려던 길을 37km 왕복으로 74km나 4시간 45분에 완주했다. 근육량 0에서 단단해진 허벅지 근육에 비례해 내 능력은 예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 체력만큼 자신감도 상승했다. 캔에 남겨둔 마지막 커피를 마시느라 고개를 뒤로 젖혔더니 검푸른 하늘에 하얀 반달이 ‘잘했어'라며 선명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고마워요, 반달


수고한 뷔나를 접어 탈핵브리드 트렁크에 넣고 차 안에서 식당을 찾아보았다. 올라올 때 봐두었던 곳이 별점 다섯 개였다. 1.8km였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가다 다리 위에 올랐다. 남은 거리가 금세 8km로 바뀌었다. 이미 8시가 넘었는데 9시면 문 닫는 가게였다. 차를 세우고 전화를 했다.      


“여기 대청댐인데요. 지금 가면 식사 가능할까요?”

“불 껐는데 옆문으로 들어오시면 드실 수 있게 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오늘 참 인복이 많다. 대청댐에는 파랗고 보라색인 조명이 화려하게 켜있어 낮의 공포심을 덮어버렸다.


밤의 대청댐


차를 돌려 컴컴한 식당 앞에 주차했다. 주인 남자가 나와 계셨다.      


“혼자 오셨어요?”     


일부러 가게 문 닫지 않고 기다렸는데 일행도 없이 혼자냐는 말이었을 텐데, 나는 눈치도 없이 밥 먹을 수 있다는 반가운 마음과 종주의 만족감에 신이 나서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네. 오늘 금강 자전거길 완주해서 파티해야 돼요.”     


옆문으로 들어가는데 고양이가 문턱 앞에서 밥을 먹으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녕? 맛있게 먹어.”     


자리에 앉자 나도 모르게 “아이고, 다리야”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잠시 후 정갈한 반찬과 함께 가느다란 산양삼이 나왔다.   


“꼭꼭 씹어 드세요. 그럼 다리 아픈 거 나아요.”     


산양삼보다 주인의 친절에 피로가 풀렸다. 주문한 삼계탕이 나왔다. 역시~ 만족스러웠다. 전국을 다니면서 발달한 감각 중 식당 고르는 것도 있다. 밥집이 없는 동네가 아니면 일부러 맛없는 집에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금강 자전거 순례길 완주 기념 만찬


“원래 산양삼 막걸리를 한 잔씩 드리는데 운전하시니까 못 드려요.”

“이따 사갈게요.”


술을 즐기지 않지만 감사의 표시 겸으로. 모든 그릇에 바닥이 보이고 뜨거운 삼계탕을 국물까지 싹 먹는데 30분 걸렸다. 아직 폐점하는 9시에서 10분 남아있었다.


영산강 종주 마지막 날 광주에서 건짬뽕밥을 맛있게 먹었는데 맞은편에 앉았던 분이 왜 그렇게 식사를 빨리 하냐고 하셨다. 3박 4일 여정에 피곤이 극도에 달하기도 했지만, 순간 서글퍼졌다.      


“여기엔 슬픈 사연이 있어요. 저는 원래 어디 가서든 제일 나중까지 먹었어요. 그래서 설거지할 수도 없었어요. 설거지 다 할 때까지도 먹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3년 동안 떠돌이 생활하면서 남 눈치를 하도 봐서 이렇게 됐어요.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면요.”     

위로를 바라던 내게 전문가의 답변이 돌아왔다.       

“빨리 먹으면 건강에 안 좋아요. 천천히 먹어요.”     


하지만 결국 또 이렇게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면 빨리 먹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고양이는 밥을 다 먹고도 여전히 통로 한가운데서 비키지 않았다. 적응은 본능을 바꿔 놓는다. 서열을 아는 동물이니 주인 믿고 손님은 자기 아래인 것이다. 녀석의 무시에도 나는 예의를 다했다.      


“안녕, 잘 있어.”     


산양삼 생막걸리 한 병을 사 들고 차에 올랐다. 달리는 차의 창밖은 먹물을 풀어놓은 듯 컴컴했다. 발터 벤야민은 ‘컴컴한 밤길을 끝없이 걸을 때 힘이 되어주는 것은 튼튼한 다리도 날개도 아니고 친구의 발걸음 소리’라고 했다. 그동안 도반이 되기도 연인이 되기도 할 친구를 애타게 찾고 기다렸다. 하지만 걸을 때가 아니라 운전하고 있어서였을까? 그 순간 나는 음악도 필요 없이 혼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자전거 수첩에 금강 자전거길은 대청댐~금강하굿둑 146km로 나와 있다. 길지 않은 이 금강 자전거길을 작년에 157.1km, 올해 152.2km, 두 배 넘는 도합 299.3km 타며 종주하는 데 일 년이나 걸렸다. 자전거 순례도 내 인생과 비슷하다. 빨리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돌고 돌아서 가는. 그러고보니 절반은 도반과 함께 절반은 혼자였다. 혼자 타기까지 절반이나 함께해준 도반에게 감사를.


작년에 받은 캔커피는 이제 하나 남았다. 그걸 어디에서 마실까 궁리하면서 이미 나는 행복하다.


나와 함께 달려줘서 고마워, 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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