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곱째별 May 10. 2024

금강 자전거 순례길 4

세종보~공주보 51.6km

  

8. 2024년 5월 9일 목요일 3.6*3.6=7.2km

<대체 왜 그러니?>


수업 후 학원에서 가서 브런치 전문가 자격증을 받고 자전거 뷔나를 구매한 대리점으로 갔다.

점검을 위해서였다.      


“앞바퀴에서 서억 서억 하는 소리가 들려요.”


첫 세차 후 주행 내내 소리가 들리다 말다 했다.      


“뭔지 알겠는데요. 머드가드가 닿는 거예요.”     


나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더니만 전문가라 다르긴 다르구나. 영산강 종주 둘째 날 종일 비 맞고 타면서 머드가드 덕을 톡톡히 보았다. 그 머드가드 위치가 가끔 움직이더니 바퀴에 닿은 거였다. 머드가드 위치를 조정하고 타이어를 체크해 보았다. 영산강과 아라한강을 300km 이상 타고 왔는데 타이어에 바람은 아직 가득했다. 그런데 체인이 늘어났다고 했다. 아직 1000km도 안 탄 듯한데 보통 2000km마다 교체한다는 체인이 늘어나 있었다. 그리 비싸지 않기에 교체했다. 은색으로 빛나는 새 체인을 건 뷔나를 얼른 타고 싶었다.     

 

“잘 타겠습니다~”     


경쾌하게 인사를 날리고 세종보로 갔다.

초록 리넨 체크 셔츠와 펄럭거리는 푸른 리넨 치마바지를 딱 붙는 자전거 옷으로 환복 하니,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선악과 관계없이 이중생활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오후 3시 30분.

출발하고 보니 바람막이 점퍼를 안 챙겼고 전조등도 없다. 공주보까지 17km라니 왕복 두 시간이면 되겠지 하고 그냥 달렸다.

8분 가니 →금강하구둑 112km 대청댐 32km↓표지판이 보였다. 그 앞 바닥에도 금강하구둑↱ 페인트 표시가 있어서 직진했다. 그런데 1.8km 앞에서 자전거길이 끝난다는 표지가 있다. 이상하다 싶어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니 건널목이 나와 건너서 갔다. 휴대폰 지도에는 계속 직전을 하라는데 산업도로 같은 길가를 갈 자신이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돌아가려는데


푸슉 퍽퍽     


뭐지? 하고 돌아봤더니 자물쇠가 짐받이에서 떨어져 머드가드에 닿아 있었다.      


“너였어?”     


자물쇠를 짐받이 위로 올려주고 다시 탔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계속 났다. 대체 뭘까?

내려서 봤더니 뒷바퀴가 찌그러져 있었다. 펑크였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새 체인과 다친 빌리


지도를 보니 출발점까지는 3.6km. 25분 동안 얼마나 헤맸는지 고 정도밖에 못 왔다.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바람 빠진 타이어에 휠까지 망가질까 봐 자전거를 끌고 걷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뙤약볕 아래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를 끌고 터덜터덜 가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선 뷔나를 살 때 원래 타이어가 아닌 노란 슈발베 빌리 봉커스로 타이어로 교체했었다.

뷔나를 처음 봤을 때 초록 몸통에 노란 타이어가 예뻐서 고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같은 타이어로 갈 형편이 아니니 원래 있던 검정 타이어로 끼워야 할 텐데 그럼 뷔나가 예전 같은 느낌일까, 그 고민이 처음이었다. 뷔나를 끌고 가며 빌리와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 하나는 왜 길이 아니라는 표시를 보고도 계속 가는가, 라는 근원적인 문제였다. 이 문제는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길치도 이만저만이지 5년째 이러는 건 심각한 문제이지 않은가. 아무리 태생적으로 반골 기질이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길 찾는 데 있어서 없다는 길을 왜 굳이 끝까지 가서 아님을 보고 마는가. 내 머릿속엔 추리나 효율이라곤 없는가?      


이 이상한 패턴은 인간관계에서도 드러났다. 남들이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는데 굳이 그 길로 가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질 않나. 그래서 얻고 싶은 걸 얻었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고. 고급 바퀴에 펑크 나듯 서울에서 곱게 살던 내가 왜 이렇게 시골에서 모르는 길을 헤집고 다니고 있는가.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 건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인가. 개선의 의지가 없다는 것인가. 이 무슨 질긴 뚝심인가. 너덜너덜해진 빌리가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30분쯤 뷔나를 모시고 오는데 강이 이상했다. 강에 흙을 붓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가 세종보지. 현수막엔 ‘세종보 가물막이 설치공사입니다’라고 쓰여있다. 그곳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맨눈으로 봐도 퇴적층이 수면 위로 군데 군데 올라와 푸릇푸릇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아름다운 지형이었다. 그곳에 굴삭기로 흙을 퍼 나르고 밀어 평평한 땅을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강에다 보 쌓은 것도 모자라 대체 무슨 짓을 또 하고 있는 걸까?

잠시 자아비판은 잊었다.      


세종보 가물막이 설치공사


40여 분을 걸어서 자동차에 뷔나를 싣고 다시 유성구로 갔다. 18km밖에 안 되는 그 길도 기억을 못 해 통행요금까지 내고도 4~50분 걸려서.      


오후 5시 30분쯤. 뷔나는 뒷타이어를 떼어내고 구멍 난 튜브를 빼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튜브만 새것으로 갈고 빌리는 다시 쓸 수 있었다. 빌리랑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자전거점 천장에 전등이 일곱 개


9. 2024년 5월 10일 금요일 세종보~공주보 왕복 44.4km    

<강물은 흘러야 한다>


수업이 끝나자 학교 근처 김밥집에서 제일 싼 김밥을 한 줄 샀다. 제일 싸서 그런지 물가가 올라 싸구려 쌀을 쓰는지, 원래 맛있었던 김밥이 오늘은 아주 맛이 없었다. 아침에 누룽지 끓여 먹고 첫 밥인데……. 김밥을 먹으면서 운전해서 세종보로 향했다.     


하얀 면 블라우스와 치렁치렁한 청치마를 어제 입었던 자전거복으로 갈아입고 헤어밴드와 모자와 헬멧과 고글과 마스크를 쓰면 나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       


오후 2:35

바람막이 점퍼와 500ml 물병을 스템백에 넣고 500ml물 담은 병을 자전거에 꽂고 출발했다.

어제 그 지점에서 화살표 방향으로 올라갔다. 백인 남녀가 내 리어페니어와 같은 종류 다른 색을 짐받이 양쪽에 매달았다. 남자 짐받이에는 텐트로 보이는 것도 묶여 있었다. 장거리 여행 중인가 보다. 외국인도 아는 길을 한국인인 내가 어제 그리 헤매다니…….


“안녕하세요.”


남자가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나도 인사를 했다.


한강 변을 달릴 때 내가 고개를 꾸벅 인사해도 아무도 답례하지 않았다. 영산강에선 서로 인사들을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한강에서 그렇게 인사하다간 종주 후에 고개가 부러질 지도 몰랐다. 그만큼 인파가 많았다.     


오르막은 다시 오르막으로 연결되었고 거대한 다리로 강을 건넜다. 다리 끝에서 내리막길로 가려고 코너를 도는 순간, 뱀이 있었다. 으악. 뱀과 나 중 누가 더 놀랐을까? 그래도 며칠 전 음식물쓰레기 버리려고 집 앞 구덩이 뚜껑 열었을 때 쥐를 봤을 때 보다는 덜 놀랐다.


다리에서 내려오자 비로소 자전거길이 앞에 쭉 펼쳐졌다. 거기서부터는 수월하게 탔다. 다리가 또 나오기 전까지는.

지도상 세종보에서 공주보까지는 17km밖에 안 되는데 다리를 세 번이나 건넌다. 그런데 왜 그렇게 설계했을까?


다리 위로 차가 막히는 것 보니 공주였다. 공주에 들어서자 강변이 아닌 차도 옆 인도에 자전거 길이 나 있고, 다리를 건너면서는 시내로 들어갔다. 강변을 달리자고 자전거 길을 가는 건데 공주만 공산성, 무령왕릉과 왕릉원, 황새 바위, 심지어 학생들 많은 중학교 앞까지 지나간다. 한옥마을 옆길은 매우 좁아서 위험하다. 아스팔트도 콘크리트도 아닌 보도블록 길도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길이 아니다. 신호등도 없는 건널목을 건너려고 자전거에서 내려 서 있으면 자동차가 계속 지나갔다.

강변을 따라 빙 돌아도 되는 길을 대체 왜 이렇게 차도 위험하고 사람도 위험하게 시내로 관통하게 했을까. 나는 전에 일부러 무령왕릉에 와봤지만, 자전거를 타다가 가 보고 싶진 않았다. 마지막 공주보 근처에선 표시도 제대로 없어서 두 번이나 가 본 곳이었으니 헤매지 않았지, 만약 초행길이었다면 거의 다 가서 또 헤맸을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 공주


4:22 공주보 인증센터 도착. 두 시간 가까이 걸리다니 너무했다. 어제처럼 세 시 반에 출발했다간 돌아갈 때 엄청 힘들었겠다. 자전거 수첩을 가지고 오지 않아 사이버인증을 했다. 물 몇 모금 마시고 바닥을 보니 세종보까지 22.2km였다. 얼른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세종보~공주보 22.2km (사람이 없어서 가로 질러 세웠습니다)


4시 30분 출발. 다시 시내로 들어서니 시외버스터미널이 보였다. 버스를 타고 세종으로 갈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현금도 카드도 없었다. 휴대폰 하나 달랑 들고 온 거였다. 정말 대책 없다. 계좌이체로 버스를 탈 순 없기도 하거니와 기다리느니 달리는 게 낫겠다 싶었고, 어차피 왕복으로 달릴 작정이었으니 속도를 올렸다.

마을로 진입하니 아까 봤던 외국인 한 쌍이 올라왔다. 반가워서 다시 인사를 했다. 내가 “Hi~” 하니 남자가 “안녕하세요?”하고 지나쳤다.      


공주 시내 자전거길에서 ‘자기애’란 단어가 떠올랐다. 자기애가 지독하기로 나 역시 빠지지 않는다. 그것에 질려 하는 사람을 본 적 있다. 그땐 그랬다. 자기를 억지로 봐달라고 하면 볼 것도 안 보게 된다.      


시내를 빠져나가자 돌아가는 길은 쾌적했다. 아는 길이라 속도가 올랐고, 갈 때보다 내리막길이 많은 듯도 했다. 갈 때 봐 두었던 가장 예쁜 모래톱에선 잠깐 내려서 사진도 찍었다.


저렇게 살아있어야 강이지


역시 갈 때 들르고 싶었던 공주 석장리 유적 박물관에는 매표소가 있었다. 시간도 5시 12분. 그냥 지나쳐야 했다.

갈 때 봤던 뱀보다 더 긴 뱀을 자전거 길에서 보았다. 두 번이나 놀라네.     


5:54 처음 건넜던 그 다리 위에 올라갔다. 어제 본 가물막이 공사를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가물막이 아래는 흙 때문에 수면이 얕아져 모래톱이 올라와 있고 그 옆으론 유속이 빨랐다. 올해 1월부터 공사를 해서 이번 달에 끝난다는데 대체 거기다 뭘 만드는 걸까?      


세종보 위 '강물은 흘러야 한다'


서울신문 기사를 보니 '세종보 재가동을 전제로 관광·레저·체험·휴식 공간을 조성하는 ‘비단강 금빛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시 관계자는 “세종보 재가동 이후 수상레저 등 즐길거리를 확충해 관광명소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라고 나온다.      

강을 메워 물을 막고 관광을 한다고? 그걸 누가 좋아하는데?


지도를 보니 두 번이나 건넌 그 거대한 다리가 학나래교였다. 학은커녕 오늘 세종보에서 공주보 사이 금강에선 새 한 마리를 못 보았다. 새가 오지 않는데 금강이라고 할 수 있나?           


6:05 탈핵브리드와 뷔나가 만났다. 세 시간 반에 44.4km. 저조했다.

그런데 뷔나에서 내리자마자 어떤 남자분이 관심이 보이셨다. 대뜸 자전거 브랜드와 가격을 물으셨다. 그리곤 와이프 사 줄 거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셨다. 와이프가 초록색을 좋아한다고 꼭 뷔나 같은 거면 좋겠다고 하셨다.

뷔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렸다. 설명하다 보니 원래 가격의 33%가 더 비쌌다. 뷔나는 타이어 빌리를 비롯해 짐받이, 지지대, 손잡이, 후미등 등 추가 비용이 많이 든 자전거였다. 그래도 비슷한 접이식 자전거 영국제 브롬톤에 비하면 서너 배는 저렴하다.

요즘 뷔나 인기가 많다. 서울 카메라 서비스센터에서도 어떤 남자분이 가격을 물으시고 내게 멋지다고 하셨다. 이번에 체인도 갈았으니 뷔나는 상태가 더 좋아졌다. 나는 마치 애국자처럼 국산인데 튼튼하고 좋다고 자신있게 권한다.


차에 올라 석양을 맞으며 집으로 향하는 길에 비로소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금강 자전거길 세종보에서 대청댐 한 구간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강 자전거 순례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