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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Jun 15. 2024

동거 열하룻날

콩이 쾌유 일지-콩이 돌봄과 내 마음


오전 6:50 콩이 소변을 위한 짧은 산책.

연둣빛 모를 막 심은 물 얕은 논에 백로 세 마리가 있다. 농약 쓰지 않은 깨끗한 논이라는 증거. 새벽의 평화.  


저만치 갔다가 집을 지나 산 쪽으로 가는데 옆집 부부가 철제 울타리를 손수 제작한다. 인사를 하고 지나갔더니 받아주신다. 이사 온 지 일 년 3개월 만에 처음이다.

실은 어제저녁 8시에 산책하는데 어떤 남자가 택시에서 내리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와 "콩이, 콩이"불렀다.


"콩이를 아세요?"

"옆집 사는데요?"

"네? 저기 옆집이요?"

"네."

"아... 처음 뵙겠습니다."  

"난 봤는데..."

그는 나를 보았을지 몰라도 나는 그를 처음 본다.


"콩이가 다리를 다쳤어요."

"그러게요. 얼마나 놀랐겠어요? 병원엔 가봤어요?"

어감이 콩이를 가리키는 게 아니었다.


"저요?"

"네. 병원에 가야지. 치료를 받아야지."


처음이었다. 보통은 사고 소식을 들으면 콩이 걱정을 하지, 내 걱정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얼마나 놀랐겠어~" 정도가 다였다.

그런데 그 아저씨는 내 걱정을 먼저 해주었다.


나는 평소 늘 갇혀있는 그 집 개가 걱정이었다.

"개가 있는 것 같던데 산책은 해요?"

매일 새벽에 산책시켜 주신다고 했다. 괜한 걱정을 했다.

제 걱정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했어야 했는데.......


그리고 오늘 아침 처음으로 인사한 그 집 아주머니도 "얼마나 놀랐을까?"가 첫인사였다. 부부가 콩이 걱정보다 내 걱정을 먼저 해주었다. 옆집 사람들은 무슨 이유인지 이 동네 다른 집과 왕래하지 않는다. 우리 집주인과도 맞은편 집과도. 그런데 오늘 나와 대화를 했다. 콩이 덕분에. 그리고 내 걱정을 들었다.  


사고 20일째.

항상 콩이가 우선이라 뒷전에 밀렸던 내 마음의 상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얼마나 놀랐던가. 그리고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던가.


평화로운 저녁 산책길에서 콩이가 갑작스레 달겨든 동네 개들한테 물렸다. 동물병원 문 닫은 저녁에 사고가 났기에 다른 도시에 있는 24시간 병원에 갔다. 항생제 처방 받아 데려오라는 주인 말에 의사의 양심으로 X-ray를 찍어 분쇄 골절임을 알게 되었고, 내가 병원비를 다 대겠다고 사정사정해서 수술 받기로 하고 콩이를 입원 시켰다.

자정이 넘은 심야에 통화 가능한 최측근과 통화했고, 먼저 병원비를 빌려주겠다고 해서 일단 큰 짐을 덜었지만,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어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누기 힘든 슬픔과 무섭게 몰아 닥쳐오는 스트레스.

콩이의 고통과 수술과 수술비에 대한 걱정만으로도 힘겨운데 주인과의 갈등은 너무 가혹했다.

그런데 입원과 수술을 시키기까지도, 다음날 아침부터도 그것을 감당해야 했다.


콩이는 다리뼈가 부러졌지만 내 마음도 찢기고 피가 나는 상태였다. 누구라도 소독약을 발라주고 깨끗한 붕대로 감아주고 따뜻하게 꼭 안아주고 안심시켜주어야 했던 상황이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누구라도 그 말을 먼저 해주었어야 했다.

"넌 정말 최선을 다해서 콩이를 구해주었어. 넌 정말 사랑이 많은 사람이야. 네가 콩이를 구한 거야. 잘했어. 정말 잘했어."

그런 말을 충분히 해주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개가 단지 대물 처리되고 치료비가 복구 비용이 되는 현실에서 이성과 사실은 감정과 이해보다 늘 앞선다. 내가 늘 그런 식이었지만 막상 그런 현실에서 나는 이해와 배려를 바랐다. 늘 개를 풀어주던 주인은 막상 사고가 나자 내가 돈을 다 댄다고 해서 수술 합의해 놓고도 왜 남의 개를 마음대로 입원시키냐고 나무랐다. 매일 산책시켜 줘서 고맙다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었다. 만약 내 개였다면 적어도 그런 스트레스만이라도 없었을 것이다. 가끔 오는 주인 대신 일 년 넘게 남의 개를 산책시켜 주고 빗질해 주고 먹여주고 목욕시켜 주고도, 산책로에서 다른 개에게 물리는 사고 한 번으로 욕을 먹고 사과에 사과를 거듭해야 했다.

내가 개에게 물리라고 그쪽으로 가자고 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평소에도 늘 가던 산책로였고, 간혹 보던 그 개들이 그렇게 갑자기 뛰쳐나와 미친 듯이 물 줄 누가 알았겠나. 하지만 멀쩡하던 개가 다쳐 속상했을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내 감정은, 내 정신은?  


다음 날, 현장에 갔다가 불러도 사람이 없어 가해견들이 유기견인 줄 알고 신고를 했다.

정신줄 놓치기 직전이던 그때 후배가 전화로 위로와 격려를 해 주고 실질적인 도움을 자처했다. 도움은 믿고 의지하던 쪽이 아니라 예상도 기대도 하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왔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다. 


잠시 후 조용한 시골에 경찰차와 소방차가 오면서 판이 커졌고, 그 모든 일을 내가 다 책임지고 나서자 주인의 태도가 누그러졌다. 맞은편 집 사람이 얼마나 놀랐겠냐고 운을 떼자, 그제야 집주인은 바깥분이 나 물리지 않았느냐고 했다며 나 물리지 않았으면 다행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날 밤 세종보에서 사고 이야기를 들은 청명이 우황청심환 먹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했었다. 약국 문을 닫은 저녁이었다. 그때 나는 내 걱정을 해 주는 청명이 의아했다. 당시 내 걱정 따위 할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는 남의 개 데리고 나가서 사고 나게 한, 가해자 아닌 가해자로 죄책감과 절망뿐이었다. 그 정신에도 세종보 야간 지킴이를 했다. 약속은 지켜야 했으니까.



그다음 날, 하늘이 도와 가해 견주와 연락이 닿았고 내가 한 신고가 신의 한수였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치료 종료일까지 발생하는 모든 경제적, 물리적인 것을 내가 감당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 후배의 세심한 퇴원 준비가 나를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도와주었다. 간간이 도움 주겠다고 연락해 오는 친구들도 위로가 되었다.


거의 매일 왕복 세 시간씩 콩이 면회를 가면서 수업을 했고 과제 피드백을 해주었고, 세종보 미사에 갔고, 마지막 편집구성안도 썼다.


콩이가 퇴원하면서는 올해 쓰지 않기로 다짐한 신용카드로 병원비를 결제했고, 법적 주인까지 되어야 했다. 이것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막심했다. 사랑과 책임의 무게는 정말 다르니까. 하지만 어찌 보면 내가 이사 온 날부터 나는 콩이의 실제 주인과 다름 없었다. 내가 제일 많이 보았고 가장 많이 산책시키고 밥을 주었으니까. 그게 서류로 작성되었을 뿐이었다. 평소에 쓰지 않는 사이트에 접속해 의사와 병원 칭찬 리뷰도 썼다. 나는 콩이를 위해서 그리고 콩이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을 위해서 내 원칙과 다짐을 파기했다.

그러한 과도한 스트레스 상태에서 중대한 결정을 했고, 예전 약속이었던 남의 책 교정도 봐야 했고, 세종보 르포도 완성해야 했다.


콩이 발사(실 뽑기)하는 날에는 밤에 할 일이 예정돼 있었는데도 긴급 도움 요청으로 박사논문 교정을 봐주었고, 그러면서 파인컷팅 용 편집구성안도 썼고, 화상으로 파이널 컷팅도 했다. 새벽까지 정말 초인적인 에너지를 썼다.


그리곤 잠도 몇 시간 못 자고 다음날 새벽에 김밥을 쌌고 목요일 수업 종강을 했다. 금요일에도 새벽부터 축약 구성안을 손봤고, 샌드위치를 쌌고, 아침 8시 반부터 출근해 온종일 라디오 방송 실습을 하고 저녁 8시에 들어왔다. 그 와중에 큰 계약을 했다.


그렇게 퇴원 후 두 달 간 콩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매일 두세 번씩 배변을 위한 산책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오늘 집주인 내외가 오신 소리가 들려도 콩이는 현관에 엎드려 있는다.

내가 꼼짝 않고 집에 있으니 나갈 엄두를 못 내는 건지, 이젠 나만 있으면 충분한 건지. 하긴 콩이는 이 집에 내가 온 이후로 주인과 이웃이 와도 2층 쪽만 바라보고 앉아있었다고 한다. 온종일 내가 내려오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게지.

그러지 말길. 사랑은 하지만 독점할 생각 없으니.

가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곁에 있던 사람이 기겁을 하는 경우가 있다. 뺏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거다. 내 인류애를 모르고 하는 작태다. 하긴 그들이 어찌 내 사랑의 차원을 가늠이나 할까.

됐다고. 줘도 안 갖는다고.  


18시. 소변을 위한 가까운 산책


맞은편 집 비닐하우스에 총동원된 그 집 식구들과 우리 집주인 내외가 감자를 캐신다.

나도 캐보고 싶다. 하지만 콩이 배변을 시켜야 한다.


맞은편 집 어귀에 자귀나무 꽃이 피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 그 나무를 키우고 싶었다.


저만치 갔다가 또 이만치 가는데 비닐하우스 쪽에서 사람 큰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콩이를 물었던 시커먼 개와 그만한 크기의 백구가 앞뒤로 겅중겅중 걸어갔다.

깜짝 놀라 콩이를 안아 들었다.

 

이른 아침에 옆집 여자가 보았다는 그 허연 개였다. 둘이 짝짓기를 했다던데 어디서 암캐가 동네에 들어온 거였다. 토요일이니 119도 쉬어야 할 듯해 신고하지 않았다. 그리고 콩이를 안고 있으니 전화할 손도 없었다.

다정하게 멀어져 가는 두 마리 유기견도 잠시 부러웠다면 내 마음에 이상이 있는 걸까?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집주인 가까이에 콩이를 데려가니 콩이는 주인에게 몸을 기댄다.

주인은 내게 시원한 베지밀 한 팩 먹으라신다.

맨발에 슬리퍼 신고 감자 캐는 칠십 대 할머니. 그 건강함이 좋아 보인다.  

그러게. 이렇게 공동으로 하는 사랑, 얼마나 좋은가.


콩이를 안고 올라와 물과 사료와 캔과 약을 다 먹였다.

19시 임무 완료.


몇 달 동안 목욕 한 번 안 한 콩이를 안고 들고 나면서 더럽다는 생각은 어느덧 사라졌다.

사료는 손으로, 캔 닭고기는 스푼으로 먹여주는 나. 고급 사료를 조금 먹다가 뱉어내는 콩이.

콩이는 내가 돌보는데 나는 누가 돌봐주나.


옆집 사람들 덕분에 오늘은 내 마음을 내가 챙겨보았다.

이것이 위로가 될까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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